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드디어 도착한 천동마을. "중편"

오토산 2022. 1. 31. 07:48

김삿갓 75 -
[드디어 도착한 천동마을. "중편"]

까불이가 박수소리에 맟춰 어깨춤을 엉거주춤 찌긋찌긋 추어가며

나무 이름을 거침없이 엮어 나가자
좌중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김삿갓은 허리를 움켜잡고 웃다가

술잔을 내밀어 주며 덕담을 했다.

 

"이 사람아 !

병신 육갑한다더니 , 자네 꼴이 영락없네.

까불이 자네는 어디를 가더라도 밥을 굶진 않겠네."

"예끼 이 친구야,

삼십 년 만에 만난 처지에 나를 보고 각설이 패가 되란 말인가 ?"

이렇게 까불이가 익살을 부리는 바람에 좌중에는 또다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또다시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친다.

"이번에는 "장타령"을 한번 듣자 !

뭐 하냐 ? 땅꼬마 ! "

 

그러자 땅꼬마로 불린 친구가 쭈뼛쭈뼛
빗발치는 독촉에 마지못해 일어서며 말한다.

"밤나무집 둘째, 듣거라.

삼십 년전 불알 친구가 먼길 마다 않고 찾아와 너무도 반가워

장타령을 한 곡조 부를터이니 잘 들어 보거라."

땅꼬마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머리에는 각설이 패나 쓸 법한 낡은 초립을 쓰고,

손에는 두렁박과 지팡이까지 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좌중이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자,

땅꼬마는두렁박을 지팡이로 퉁퉁 두드려 가며 장타령을 구성지게 뽑아 나갔다.

얼~~~럴 ~~널이 ~~~
각설이패가 왔구나
각설이라 역설이
동지섣달 대목장에
각설이가 왔구나
팔도 강산 돌다 보니
장거리가 내집일쎄
이 술 잡수 안주장
술맛 좋다 청주장
초상났다 상주장
능수버들 천안장
신라 통일 경주장
명태 옆에 대구장

얼 ~~~럴~~널이 ~~~
함평도로 넘어간다
기생 좋은 평양장
미인 많은 강계장
해주 해주 해주장
박아라 박아 박천장
안고 춤추는 안악장
초당 짓고 배운 소리
실수도 없이 잘한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환하게도 잘한다
뱃가죽이 두꺼운가
거침없이 잘한다
대목장에 목쉬겠다
청산 유수로 잘한다
박수소리와 환호성에 방안이 들썩였다.

몇 몇이 장타령 신바람에 일어나 덩실거리며 춤을 추었고
땅꼬마는 더욱 신이나 첫 소절 부터 한바퀴 더 돌려 장타령을 뽑았다.
장타령이 끝나자 좌중에는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일동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워낙 요란스럽게 떠들어 대다가 별안간 조용히 술만 마시려니

좌중에 분위기는 갑자기 따분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 집에 초상났나 ?

갑자기 왜 이렇게 조용한고 ! "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조조가 한마디 하거라 !"하며

부추긴다.

조조는 손을 설레설레 내저으며 대답한다.

"나는 워낙 명창이라, 이런 시시한 자리에서는 죽어도 못한다"

"허긴,

조조가 한 곡조 하는 날이면
밤나무집 둘째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고 말게다."

제제가 이렇게 말을하자,

조조가 음치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친구들이 두 손을 마주치며,

"맞다, 맞아 ! " 하며

깔깔 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제제가 말하는데,

"이렇게 자진해서 노래를 불러줄 사람이 없어서야 흥이 나겠나 ?
그렇다면 대갈 장군과 합죽이가 함께 나와,

"변강쇠와 옹녀" 연극이나 한 판 벌려 보면 어떻겠나 ? "

제제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좌중은 별안간 쌍수를 들며 "와아!"하는 함성에 덮혔다.

김삿갓은 변강쇠와 옹녀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산골에서 땅이나 파먹고 사는 옛 친구들이 설마하니

'가루지기' 타령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자네들이

가루지기 타령이라는 책을 읽은 일이 있었던가?"

"아따 이 사람아!

자네는 우리들을 뭘로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가?
지난번 추석 명절때 대갈이와 합죽이가 변강쇠와 옹녀 분장을 해가지고

가루지기 타령을 연극으로 했던 일도 있다네.

그 연극이 얼마나 인기가 좋았던지 소문을 듣고 곡산 읍내에서

구경꾼이 백여명 몰려온 일도 있다네.
그러니 오늘 밤에도 대갈이와 합죽이가 멋지게 연극해 보일테니, 한번 구경하게."
제제는 거기까지 말하고 대갈이와 합죽이를 다그친다.

"뭐하냐,

어서 옷을 갈아 입고 나오지 않고?"

대갈이와 합죽이는 옆방으로 달려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키가 크고 몸집이 큰 대갈이는 변강쇠로 분장하고,

키가 작고 몸매가 여자 처럼 애리애리한 합죽이는 분홍 저고리에 남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수건을 돌려 쓰고 나와 영락없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그럴듯한 남녀로 분장을 하고 나오자,

방안에서는 또다시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야아, 고놈의 계집년,

너무도 예뻐 사람 미치겠구나."

"정말로 계집년인가,

사타구니를 한번 만져보자."

제각기 난잡스러운 실랑이를 한마디씩 떠벌이는 바람에,

방안은 잠시 난장판이 되었다.

김삿갓도 그들의 능숙한 분장술에 박수를 보내며 한마디 찬사를 보냈다.

"야아,

옹녀의 분장은 정말 기가 막히네.
자네들은 농사는 짓지 않고 연극만 하는 모양일세 그려."
제제가 얼른 대답을 가로막고 나선다.

"이 사람아!

그런 재미도 없으면 이런 산 속에서 기나긴 겨울을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나?

제법 재미가 있을 것이니 두고 보게. 어서들 연극을 시작하거라."

방안에는 기대와 환희의 빛이 가득 넘쳤다.

일동은 연극을 구경하기 위하여 술상을 옆으로 밀어 놓고,

모두들 아랫목으로 몰렸다.

이렇게 웃목은 자연히 무대가 된 셈이었다.
옹녀로 분장한 합죽이가 변강쇠로 분장한 대갈이에게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며 고혹적인 미소를 보내자

엉큼한 얼굴의 변강쇠는 옹녀의 얼굴을 한동안 그윽히 바라 보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싱긋 회심의 미소를 짓고 너울어울 춤을 추기 시작하며,
옹녀에게 사랑 노래를 부른다.

"사랑 사랑 사랑이여!

이리 보아도 내사랑, 저리 보아도 내사랑!
내 비록 가진 것은 없어도 너에게 무엇을 주랴?
용왕님이 가져가신 여의주를 네게주랴?"

변강쇠가 옹녀를 감싸고 돌아가며 입담 좋은 수작으로 얼러 대자,
옹녀는 봄바람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난 듯 방긋 웃어 보이며

사랑 노래를 받아 넘긴다.

사랑 사랑 사랑이여 !
태산같이 높은 사랑, 하해같이 깊은 사랑
남창 북창 노적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하수에 직녀같이, 울울이 맺힌 사랑
옹녀가 낭랑하게 노래를 뇌까리며
나비처럼 나풀나풀 춤을 추고 변강쇠를 빙빙 돌아가니,
얼이 빠진 변강쇠가 입을 헬렐레 벌리고 옹녀를 이리저리 쫒아 다니다가
마침내 옹녀의 두 손을 와락 움켜잡으며 애타게 호소한다.

"너와 나는 천정 배필,

이 밤에 동방 화촉을 밝혀 봄이 어떠할꼬?"

변강쇠의 말이 떨어지자 옹녀가 불현듯 그자리에 누워,
다리를 끌어 모아 무릅을 세워서는 변강쇠에게
어서 오라는 듯이 양 다리를 너풀너풀 해보인다.
순간, 방안에서는 다시 "와하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천생 양골天生陽骨 변강쇠가
옹녀의 사타구니를 헤집고 들여다 보며 한 바탕 수작을 부린다.

"여기가 어떤 골짜기냐?"
​그러자 옹녀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여기는 옥문관玉門關이 아니오니까."

"옥문관이라...?
세상에 관문이 많터라만 옥문관이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로구나!
나는 이제부터 옥문관을 쳐들어가야 할 판이다.
만의 하나라도 실수가 있어서는 아니 되겠으니,
옥문관의 산세山勢가 어떻고 수세水勢는 어떠한지

자세히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변강쇠는 옥문관을 유심히 들여다 보는 척하다가,
매우 감격스러운 어조로 천천히 잡설을 늘어놓는다.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히도 생겼네.
옥문관은 늙은 중의 입이런가,

입술은 있어도 이가 없구나!
소나기를 맞았나 언덕지게 패였네.
콩밭 팥밭을 지났나 돔부꽃이 웬 말이냐.
도끼날을 박았나, 금 바르게 터져있네.
생수처生水處 온담溫潭인가 물이 항상 괴어 있네.
무슨 짓을 하려고 움질움질 하는고?
천리 행정 내려오다 주먹바위가 신통쿠나!
만경 창파에 조개인가 혀는 왜 빼물었으며,
임실任實 곶감을 먹었나 곶감 씨가 물려있고,
만첩 산중 울음인지 문이 절로 열려있네.
연계탕을 먹었는가, 닭의 벼슬이 웬 말인고?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가, 더운 기운이 절로 난다.

곶감 있고, 울음 있고, 조개 있고, 연계 있어,
어~헛 ! ...제삿상은 걱정이 없네!"

변강쇠로 분장한 대갈이가 옹녀로 분장한 합죽이 사타구니를 들여다 보며
잡스런 말을 넉살좋게 늘어놓자 이를 지켜보던 누구인가 크게 소리친다.

"이놈아!

지금 네가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은
옹녀의 옥문관이 아니고 합죽이의 사타구니로다.
죽을때 죽더라도 정신만은 똑똑히 차리고 보아라!"

이렇게 너스레를 떠는 바람에 좌중에는 또다시 폭소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