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드디어 도착한 천동마을(하)

오토산 2022. 2. 1. 16:04

김삿갓 76 -
[드디어 도착한 천동마을(하)]

​김삿갓은 대갈이의 몸짓과 표정이

하도 우스워 아까부터 배를 움켜잡고 웃으며

"가루지기 타령에 나오는 사설을

곧이 곧대로 옮기는 재주와 기억력이 대단하구나!" 하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연극은 계속 되었다.
​변강쇠가 옹녀의 옥문관을 들여다 보며 한바탕 잡소리를 늘어 놓고나자,

이번에는 옹녀가 변강쇠의 사타구니를 유심히 들여다 보는 척하다가

사뭇 감격스러운 듯 노래조로 이렇게 뇌까리는 것이었다.

​"낭군님의 물건은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히도 생겼네.

전배(前陪)사령을 서려는지 쌍걸랑을 늦게 차고,

五軍門 軍奴런가 목떠기를 붉게 쓰고,
냇물가의 물방안가 떨구덕 떨구덕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철고비를 둘렀구나.
감기에 들었는가 맑은 코는 무슨 일고

​性情도 혹독하다 화가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이런가 젖은 어찌 게워내며

​제사에 쓴 숭어인가 꼬장이 궁기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머리 둥글구나.
​소년 인사 배웠는가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덴가 검붉기는 무슨 일고.
​칠팔 월 알밤인가 두 쪽이 한테 붙어 있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비 걸낭동물
세간살이 걱정없네!"

​합죽이가 대갈이의 사타구니를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마치 진짜 물건을 바라 보기나 하듯,
​일장 얄궂은 소리를 재미있게 늘어 놓자,
방안은 또다시 떠나갈 듯한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야 ! 옹녀야,

그런 귀물을 변강쇠만 가지고 있는줄 아느냐?

우리들도 가지고 있단다."

​"진짜 귀물은 변강쇠 물건이 아니고,

네가 가지고 있는 조개 이니라."

여럿이 제 마다 한 마디씩 놀려대어,

대갈이와 합죽이는 더 이상 연극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옆방으로 도망가듯 달아나 버리는 바람에 연극이 끝나버리게 되었고,

재미있게 지켜 본 방안의 관객들은 우뢰 같은 박수를 보냈다.

​"자!

우리는 술이나 마시세."

 

누구가가 주전자를 집어 들며 그렇게 말하니,

술은 다시 시작되었고
김삿갓은 술을 마셔가며, 새삼스럽게 감탄을 마지 않았다.

​"이 깊은 산중에서

자네들이 인생을 이처럼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네.

오늘 밤의 감격을 나는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걸세."
​제제가 술잔을 내밀며 말한다.

"우리가 오늘 밤 이렇게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자네가 삼십 년 만에 찾아와 준 덕택일세.

자네도 우리들의 우정을 기쁘게 받아 들이는 뜻에서 노래 한 곡조 들려주게나."

​제제의 입에서 그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동은 "와아!"하고 함성을 울리며 박수를 보낸다.
​노래가 서투른 김삿갓은 어안이 벙벙해 왔다.

김삿갓은 시에는 자신이 있어도 노래에는 자신이 없었다.

"​자네들의 우정에 보답하기 위해

나도 한 마디 부르기는 해야 할텐데,

노래에는 자신이 없으니 어떡하지..."

​김삿갓이 머리를 긁으며 난처해 하자,
일동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뭐든지 좋으니 한 곡조 뽑으라고 난리였다.

 

​김삿갓은 선비들이 즐겨 부르는

漁夫辭나 處士歌가 어떨까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런 노래는 아무래도 이 자리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김삿갓은  무엇이 생각 되었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노래가 하나 있네.

자네들이 '가루지기 타령'을 멋진 연극으로 보여 주었으니

나는 그 연극에 어울리는 '변강쇠 타령'을 불러보면 어떻겠나?"
​일동은 그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뭐야...?

변강쇠 타령이라는 노래도 있던가?"

​"있지, 있구 말고! 

옛날에 어떤 선비가 가루지기 타령이라는 소설을 읽고,
변강쇠의 못된 성품을 비꼬아 준 일이 있는데,

그 노래가 바로 변강쇠 타령일세."

​일동은 그 말을 듣고, 변강쇠 타령을 꼭 들려 달라고 성화같이 재촉한다.
​김삿갓은 무릎을 두두려가며 변강쇠 타령을 익살맞게 부르기 시작 했다.

​[천하 잡놈은 변강쇠]
천하의 잡놈은 변강쇠라
자라는 호박에 말뚝박기

우물가에 똥누기

아이 밴 여자 발길로 차기
지어 놓은 밥에 돌 퍼붓기
불붙은 집에 키질하기

정절 과부 호려내기
물에 빠진 사람 덜미 누르기
활 쏘는 양반 줌팔치기
어화둥둥 내 사랑아 !

​강쇠의 행실을 볼 지경이면
엄동 설한에 땔감 없어 나무를 하러 나갈 적에

낫은 갈아 지게에 꽂고 도끼는 갈아 옆에다 끼고
납짝 지게를 걸머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원근 산천에 당도하니
봄 들었구나 봄 들었구나 원근 산천에 봄이 들어 나무는 할 것이 없어
길가에 서 있는 장승을 패니 장승이 괴탄하며 하는 말이

​"이 몹쓸 변강쇠놈아!

네 어찌 나를 아궁이 귀신 만드느냐"

 

어화둥둥 내 사랑아.....
​김삿갓이 변강쇠 타령을 한바탕 흥겹게 엮어나가는 중에

옆방으로 달아났던 대갈이와 합죽이가 다시 나타나

가락에 맞춰 춤을 덩실덩실 추어대는지라,
방안의 흥취는 절정에 치다른다.

​실로 호화로기 짝없는 김삿갓, 환영연이었던 것이다.
이런 환영연은 먼동이 터올 무렵에야 파장이 되었다.

​모두들 대취하여 뿔뿔이 돌아가려고 일어서는데,

계장 제제가 김삿갓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한다

​"내일 아침에 내가 데리러 올 테니,

조반은 우리 집에서 먹세."

"고맙네."

​친구들이 모두 가버리자,

김삿갓은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지나치게 흥분했던 탓인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삼십년 전에 벌거숭이로 뛰놀던 친구들을 다시 만난 게 꿈만 같았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