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오돌이

오토산 2022. 2. 14. 02:41

사랑방이야기(332)

오돌이



함경북도 청진 바닷가 주막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오월이는 박박 얽은 곰보다.
안방에서 주모와 함께 자는데 주모가 샛서방을 물어들이는 날은 빈방으로 쫓겨나든가 마루에서 자야 한다.
하루 일을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녹초가 되어 빈 객방에서 자는데 취객이 들어와 집적거

리는 게 귀찮아서
발로 밀치고 잤더니 이럴 수가!
서너달이 지나니 헛구역질이 나는 것이다.
달이 차자 아들을 낳았다.


주막에 들락날락거리는 땡추 노스님이 ‘오돌(吳乭)’이라 이름 지었다.
오돌이는 고샅의 개똥처럼 이리 차이고 저리 구르며 한살 두살 먹더니 여섯살이 되자 엿장수가 되었다.
청진 바닷가에서 열살 아래 오돌이하고 맞짱 떠 코피 터지지 않은 아이가 없었다.
열대여섯 살 나는 저잣거리 왈패도 오돌이 깨엿을 먹고 외상값을 떼먹을 순 없는 일이다.
악착같이 받아냈다.
오돌이 열여덟 살이 되더니 황포돛대 선주가 되었다.
제 어미한테 돈을 얻고 스님한테 돈을 빌리고 주모한테도 빌려 배를 산 것이다.
그 당시 청진은 청어 집산지였다.


청어는 가시가 많아서 그렇지 맛있는 생선이다.
청어는 우리나라 바다에서 잡히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근년에 황해에서 청어가 사라지더니 남해에서도 안 잡히고
이제는 동해에서도 북쪽에서만 잡혀 청진 쪽 배들은 청어를 잡아 싣고 쏜살같이 남쪽으로 내려갔다.
오돌이도 청어를 잡는 족족 갑판 아래 수조에 넣어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경북 영덕에서 팔든가 경북 포항까지 내려가 팔았다.
청어란 놈들은 원체 성질이 급하고 동작이 민첩해 영덕쯤 가면 거의 다 죽어 흰 배때기를 위로 보이며 둥둥 떠버린다.
반값도 채 못 받는다.


어느 날 수조 속의 청어떼를 넋을 놓고 내려다보고 있는데 땡추 노스님이
“청어는 안 잡고 뭘 하고 있는 게야?” 물어
“스님, 이놈들을 살려서 기장까지 가져가면 대박을 터뜨릴 건데 성질이 급해서 거의 다 죽어요”라고 한탄했다.
스님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무릎을 쳤다.
“오돌이 네가 엿장수 할 적에 가장 겁내던 사람들이 누구였지?”
“저잣거리 왈패 형들이었어요.”
“바로 그거야!
그 왈패들 때문에 너가 살아난 거야.”


오돌이가 무슨 말인지 몰라 입만 벌리고 있는데 “청어가 가장 겁내는 게 뭣이여?” 하고 물었다.
“바다메기예요!”
“청어를 싣고 내려갈 때 수조 속에 바다메기 한 마리를 넣는 거야!”
그 전날 낚시로 잡아놓았던 바다메기 한 마리를 넣었더니 청어들이 바다메기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하고 쏠려 다녀 기장까지 가는데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바다메기가 잡아먹은 청어는 딱 한 마리였다.


이튿날부터 오돌이는 청어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지 않고 어부들이 잡아온 청어를 매집했다.
바다메기 낚시만 하다가 살아 펄떡이는 청어를 한수조 사서 바다메기 한 마리씩 집어넣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소문이 날까봐 시침 뚝 떼고 석빙고에서 비싼 얼음덩이를 사다가 청어 수조에 넣었다.
오돌이는 돈을 많이 벌어 배 살 때 빌렸던 돈을 다 갚고 아담한 기와집을 사서 어머니를 집에 앉혔다.
모자간에 날만 새면 싸웠다.
어머니는 며느리 봐서 손자를 안아보겠다 하고 오돌이는 아버지를 찾겠다고 단봇짐을 쌌다.
오돌이가 제 어미 오월이에게 잉태한 날 밤 무슨 낌새를 못 느꼈느냐고 집요하게 물었더니 참기름 냄새가 났다고 실토했다.


오돌이는 이십여년 전 떠돌이 외장(外場)꾼들을 찾아다녔다.
현직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죽거나 은퇴하고 소일거리로 텃밭농사나 지었다.
삼십리 밖 막실에 살고 있는 새우젓장수 하던 영감님으로부터 이십여년 전 참기름 외장꾼 신상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팔십여리 떨어진 그 동네에 갔더니 칠십여리 떨어진 곳으로 옛적에 이사 갔다 해서 또다시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갔다.


오돌이가 집 떠난 지 거의 반년 만에 전직 참기름 외장꾼이며 성폭행범이자 아버지인 오 생원을 찾아 집으로 모셔왔다.
외삼촌한테 맡겨놓았던 청어잡이 황포돛배는 아직도 사업기밀을 유지한 채 독점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오 생원을 알아보는 걸 보니 그때 생짜로 성폭행당한 건 아닌 것 같다.
아버지 오 생원은 마흔하나, 어머니 오월이는 서른아홉이다.
조촐한 혼례식을 올리고 어머니는 가마를 타고 아버지는 당나귀를 타고 평양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효자 오돌이, 아버지에게 부지런히 보약을 지어드린 효험일까.
혼례식을 올린 지 서너 달 만에 오돌이 어미가 헛구역질을 했다.
이듬해 참한 색시가 나타나 오돌이가 장가를 갔다.
오돌이 어미가 손자를 안아보고 싶다더니 아들을 먼저 안고 열 달 후에 손자를 안았다.


청진 앞바다엔 청어떼가 펄쩍펄쩍 뛰고,
마당엔 숙질간에 손잡고 아장아장 걷고,
오돌이는 도대체 걱정거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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