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령을 넘어오는 봄나들이를
이틀간 봄비가 미세먼지를 씻어 내어
모처럼의 화창한 봄 하늘을 볼 수있는 3월 27일
영덕~구주령(울진)~영양을 돌아오는 나들이를 하였다.
동안동IC에서 영덕IC를 거쳐 푸른바다 해안로를 따라서
창포말등대가 서 있는 해맞이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하다가
풍력발전단지를 올라서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
바람개비 돌아가는 소리가 '철거덕철거덕' 거린다.
풍력단지에서 시월한 바닷바람을 쏘이며
정월대보름, 이월보름, 팔월한가위 등 보름명절에 행하여 졌던
영덕의 민속놀이 '월월이청청'의 유래도 알아보고
비행기 체험을 하며 풍력단지를 구경하다가 다시 북쪽으로 달렸다.
도로변에는 오징어, 도다리 등 생선을 말리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경정1리에는 미역을 손질하여 말리는 아낙네들도 볼 수 있었으며
대게원조마을에 도착하니 어구를 손질하는 어부들도 볼 수 있었다.
대게원조마을(경정2리)은
1345년(충목왕 2) 초대 정방필(鄭邦弼) 영해부사가 부임하여
부사일행이 대게마을을 수레를 타고 고개를 넘었다고 하여
차유(車踰)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우리는 유래비를 구경하고 돌산횟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미역과 묵은지와 함께 생선회를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 축산항 신기마을로 가서
축산항 서편언덕에 자리잡은
영양남씨와 영양김씨의 유적지를 구경하였다.
영양남씨 시조 영의공 '南敏(金忠)선생'은
712년 10월 1일 중국 하남성 여남에서 출생하여 史部尙書에 이르렀고
755년(신라 경덕왕 14) 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귀환 중에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축산항에 기착하여
경덕왕이 이 사실을 당나라에 알리자
천자는 金充父子의 뜻을 들어 신라에 살게 하였고
경덕왕은 汝南에서 왔다하여 '南'으로 사성하고 '敏'으로 개명한 다음
영양을 식읍으로 살게하고 英毅公에 봉하였고
배행하였던 장자 僕射公(錫中)에게는
관향을 영양김씨로 하게 하여 영양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유허비와
유적지를 돌아보았고 유허비 주변에는 개나리가 만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도해단에 도착을 하였다.
도해단(蹈海壇)은 영양 출신의 碧山 金道鉉 선생이 일본의 만행에
비분강개하여 1914년 11월 7일 산수암에서 도해순국하신 곳으로
양양군과 영덕군에서 매년 이 곳에서 추도행사를 하고 있다.
도해단을 지나서 우리는 백암온천을 지나며
그 옛날 백암온천에 얽힌 추억담을 나누며 구주령에 올랐다.
구주령(九珠嶺)은
울진과 영양의 경계를 이루는 백암산(1004)에 위치한 고개로
옥녀의 전설이 전하여 오고 이홉개의 구슬을 꿰어 놓은 형상이라 하며
구주령에서 구주령을 찾은 여행객과 자전거 트래킹객과 만날수 있었고
휴게소에는 난로가 피워져 있었으나 양지쪽에는 새순이 움트고 있었다.
우리는 구주령휴게소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영양군 죽파리로 향했다.
조선시대 보부상이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는 죽파리는
원래 대두들이었는데 언덕에 대나무가 많아 竹坡里로 불렀다고 하며
1993년 남부산림청에서 30.6㏊의 면적에 자작나무 숲을 조성하여
최근 자작나무숲을 찾는 탐방객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자작나무숲을 구경하려 하였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서
자작나무는 다음기회에 만나기로 하고 얼음이 쌓인 계곡만 구경하고
안동으로 돌아와서 맛의 달인이라는 '미달이' 식당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헤어졌다.
오늘도 장거리 운전을 하신 박선생님, 점심 식대를 지불하신 권선생님,
동행하며 많은 조언을 하여주신 정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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