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다시 맞붙은 공명과 중달

오토산 2022. 4. 16. 07:51

삼국지(三國志) .. (388)
다시 맞붙은 공명과 중달

한중으로 돌아온 공명이 장군들을 불러 모아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려고 할 때였다.
공명 앞으로 급보가 날아들었다. 병석에 누워 있던 관흥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이럴 수가 있나...!
그 충의로운 사람에게 하늘은 모질기도 하시지...
관흥에게 목숨을 길게 주지 않으셨구나...!"

공명은 한(漢)의 부흥을 위해 함께 애썼던 관운장의 아들 관흥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크게 슬퍼하였다.
공명이 관흥을 잃은 슬픔을 간신히 수습하고 출정길에 올랐다.
공명은 모두 삼십사만의 군사를 다섯 길로 나누어 기산으로 진군하도록 하였다.

 

선봉은 강유와 위연으로, 그 둘은 바로 기산으로 향했고,

이회는 군량을 가지고 사곡(斜谷)으로 가는 길 어귀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공명이 다시 기산으로 향한다는 소식은 위주(魏主: 조예)에게도 알려졌다.
소식을 듣자마자 조예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사마의를 불렀다.

 

"얼마간 잠잠하더니 제갈양이 다시 기산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오.
어찌하면 좋겠소?"
걱정스러운 조예의 물음에

사마의는,

 

"폐하,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신이 지난 밤 천문을 보았더니,

중원에는 왕성한 기운이 가득하고 규성(奎星)이 태백(太白)을 범했으니,

이는 서천(西川)에는 불리하다는 뜻이옵니다.

 

그런데 제갈양은 건방지게도 제 재주만 믿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려 하고 있으니 스스로 패망의 길로 들어선 것이지요.
신이 폐하의 큰 복을 등에 업고 제갈양을 물리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하고,
자신만만하게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한다.

"좋소.

그대가 제갈양을 상대해 보시오."
조예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마의는,

 

"제가 데리고 가고 싶은 사람 넷이 있습니다."하고,

조예에게 청을 한다.

 

"그들이 누구요?"

 

"죽은 하후연(夏侯淵)의 네 아들입니다.

맏아들은 패(覇), 둘째아들은 위(威), 셋째아들은 혜(惠), 넷째아들은 화(和)입니다.

첫째 하후패와 둘째 하후위는 활쏘기와 말타기에 솜씨가 빼어나고,
셋째 하후혜와 넷째 하후화는 병법에 조예가 깊습니다.

 

이들은

부친이 한중에서 촉병에게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촉에 원한이 깊습니다.
제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틀림없이 이를 악물고 싸울 것입니다.
하후패와 하후위를 선봉으로 삼고, 하후혜와 하후화를

행군사마(行軍司馬)로 삼았으면 합니다."

 

사마의의 말에

조예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사마의에게 묻는다.

 

"지난날 하후무(夏侯楙)가

군사전략을 잘못 써서 인마(人馬)만 허다하게 잃고,
그 자신은 면목이 없어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하후 가문 사람들을 믿어도 되는 것이오?"

 

"제가 말씀드린 네 사람은

하후무와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사마의는 빙그레 웃으며 여유있는 태도로 조예를 안심시킨다.

 

"알겠소.

내 그대를 대도독으로 삼고 모든 장수들의 임명권을 줄테니 잘 싸워 보시오.
내 경을 깊이 믿고 있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사마의가 출정하는 날이 되었다.
조예는 사마의에게 손수 조서를 내려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경이 위수(渭水)에 이르거든
성벽을 높이 쌓은 후 굳게 지키기만 하고 함부로 나서서 싸우지 말라.
촉군은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거짓으로 물러나는 체하며 우리 군을 유인하려 할 것이니,

그대는 신중히 생각하고 함부로 뒤쫓지 않길 바란다.

 

그들의 양식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이 물러가려 할 때

그 틈을 노려 공격하면 큰 어려움 없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 군마(軍馬)도 피로가 덜할테니 이보다 좋은 계책은 없을 것이다.

사마의는 위와 같은 조예의 조서를 받고 그날로 낙양을 떠났다.
장안에 이르러 각처의 군사를 불러 모으니 사십만 대군이었다.
사마의는 이들을 데리고 위수에 당도하여 영채를 세웠다. 

 

그리고 사십만 대군 중 오만의 군사를 공병대(工兵隊)로 삼아

그들로 하여금 위수 상류에 아홉 개의 부교(浮橋)를 놓도록 하였다. 
그런 뒤 선봉장 하후패와 하후위에게 강을 건너가 서쪽 강안에 영채를 짓고 진을 치게 하였다. 
게다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하여 후방에는 성을 새로 쌓아 올렸다.
방어에 치중했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공명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기산에 다섯 개의 진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사곡(斜谷)과 검각(劍閣) 사이에 열네 개의 진영을 구축하고

그곳에 군마를 주둔하게 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였다.
어느날 정탐을 나갔던 병사가 돌아와 급하게 알린다.

 

"손례와 곽회가 농서(隴西)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북원(北原)에 영채를 차렸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명은 재빨리 전략을 떠올린다.

그리고 장수들을 모두 소집하여 계획을 상세히 설명한다.

 

"위군이 북원에 진을 쳤다고 한다.
우리에게 농도(隴道)를 끊길까 봐 두려운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잘 된 일이다.
우리는 북원을 칠 것처럼 행동하면 된다.

우리가 공격하는 곳은 본진인 위수가 될 것이다.
먼저 뗏목 백여 채를 만들어 그것들을 엮고 그 위에 건초를 얹어라.

 

내가 한밤중에 북원을 공격하면

사마의는 위수를 비우고 북원을 구하러 나올 것이다.

저들이 물러나는 기미가 보이면 후군이 먼저 강을 건너고

뗏목을 풀어서 강물에 흘러가게 하고 뗏목 위 건초에 불을 놓아라.
강위에 놓은 위군의 부교가 모두 탈 것이다.

그런 뒤에 후군은 당황하고 있는 위병의 뒤를 치면 된다.
우리가 이렇게 하여 위수 남쪽을 얻고나면 앞으로 진군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공명의 계획대로 촉의 장수들은 일을 시작했다.
정탐병은 촉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촉병들이 뗏목을 만들고 부지런히 싸우러 갈 채비를 하는 것을

위의 정탐병이 유심히 보고 그대로 사마의에게 알렸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마의는

선봉장 하후패, 하후위 형제를 불러 비밀스럽게 명을 내린다.
하후패와 하후위가 명을 받고 물러가자

다음에는 곽회, 손례, 악침, 장호를 불러 그들에게도

비밀스러운 명령을 내린다.

이날,

본진을 떠난 촉군은 위수를 건너 천천히 진군하고 있었다.
위연과 마대가 북원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황혼 무렵이었다.
위연과 마대가 나타나자 북원에 영채를 차리고 있던 손례는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영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전쟁에 잔뼈가 굵은 위연은 손례에게

뭔가 계략이 있음을 금방 눈치챘다. 

'이것은 함정이다!

돌아가야 한다!'
위연이 급히 돌아가기 위해 말머리를 돌리는 순간,

왼쪽에서는 사마의의 군사가, 오른쪽에서는 곽회의 군사가 쏟아져 나온다.

위연과 마대의 군사는 죽을 힘을 다해 맞선다.

하지만 적의 위력은 너무나 강하다.
위병이 휘두른 창에 찔린 촉병의 비명 소리가 가득했다.
맞서는 것보다 얼른 그곳을 벗어나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위연과 마대는 겨우겨우 살아나왔다.

 

함께 갔던 군사들은 대부분이 창에 찔려 죽거나

물에 빠져 죽고 살아남은 자는 절반도 못 되었다.

오의와 오반은 건초를 실은 뗏목을 이끌고 위수로 내려오고 있었다.
건초에 불을 질러서 위가 애써 구축해놓은 부교를 없애버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뗏목이 부교에 미처 도달하기도 전에 악침과 장호가

 강을 가로질러 매어 놓은 동아줄에 뗏목이 한데 묶여 버렸다.

 

촉병이 뗏목의 흐름이 멈춘 것에 당황하는 사이, 

강기슭에 숨어 있던 악침과 장호의 궁노수들이 속속 등장하여

화살을 빗발처럼 퍼부었다.

 

뗏목은 그저 부교에 불을 지를 용도였기 때문에 아무런 방어 장치가 없었다.
뗏목을 끌던 촉병들은 화살을 맞고 죽거나 물에 빠져 죽는 자가 태반이었다.
그 와중에 병사들을 이끌던 오반이 화살을 맞고 강물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화살이 날아오기 전에 강으로 몸을 던져 헤엄쳐 나온 병사 몇 만이 살아남았다.
촉이 끌고 갔던 뗏목은 고스란히 위병의 차지가 되었다.

그 무렵 왕평과 장의는

북원의 소식을 모른 채 위의 본진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위군의 영채가 바로 코앞인데 어째 위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적진이 고요한 것이 이상하다 하며 왕평이 장의에게,

 

"우리 군의 소식을 알 수가 없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이곳이 이렇게 조용한 것은...

사마의가 미리 알고 대비해 놓은 것이 아닌가 싶소.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작전을 망칠 수도 있으니

부교에 불이 붙는 것이 보이거든 그때 적진에 들이닥칩시다."하고,

말하였다.

왕평과 장의가 군사들의 진군을 멈추고

대기하는데 급사 하나가 멀리서부터 달려왔다.

 

"승상께서 급히 회군하라 전하셨습니다!"

 

"회군?"
갑작스러운 소식에 왕평과 장의는 입을 모아 까닭을 물었다.

 

"북원에 갔던 군사와 뗏목을 몰고 갔던 군사

모두 위군에게 대패했다고 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긴급한 사태에

왕평과 장의는 군사를 급히 돌리려고 하였다.
그때 갑자기 지금까지 갈대가 바람에 서로 부딪는 소리만 가득하던 갈밭에서

위군들이 튀어나와 일제히 촉군에게 덤벼들었다.

위군이 놓은 불길은 하늘을 찌를 듯하고

위군의 기세는 그 불길보다 더 거셌다.

 

왕평과 장의는 군사들을 이끌어 한바탕 싸움을 벌였지만

위군의 기세에 눌린 촉병들은 위군의 창에 스러져갔다.
두 장수가 간신히 적들의 포위를 벗어났을 때에는

이미 촉병의 반 이상이 부상을 입거나 죽음을 면치 못한 상태였다.

공명은 기산으로 돌아와 살아남은 군사들을 수습했다.
헤아려보니 이번 싸움에서 잃은 군사는 일만이 넘었다.
공명에게 이렇게도 비참한 패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생애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여섯 번째 기산 출정을 나섰던 것이기에

마음의 괴로움은 계속해서 커져서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큰 패배 이후 공명은 군사들을 다독이며 군사들의 시름 뿐만 아니라

본인의 시름 또한 걷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어느날,

양의(楊儀)가 공명을 찾아왔다.

양의는 공명의 기분이 어떤지 살피고,
듣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한 번 돌아보고는 조용히 말을 꺼낸다.

 

"승상,
요 근래에 위연이

승상의 뒷공론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냥 두어서는 안 될 일 같아 말씀드립니다."
공명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음...

나도 알고 있다.
위연의 불평은 근간(近間)의 일이 아니지."하고,

말한다.

 

"그걸 알고 계시면서 왜 가만히 두십니까?

승상께서는 군율에 엄격하지 않으십니까."

 

공명은 뒷짐을 지고 먼 곳을 응시하며 서성이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고,

 

"인재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지.
위연만큼 용감하고 쓸만한 장수가 없어.

위연의 태도와 행실을 알면서도

내가 그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지."하고,

한탄하듯 말한다.

 

"......"

 

공명의 말에 공감하는 양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실로 상황이 그랬다.
수십 년 간 역적 토벌을 위해 촉이 위와 싸우는 동안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바탕에 두고 용맹하게 싸우던 많은 장수들은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나이를 먹어 노환으로 세상을 뜨기도 했고,

전장에서 싸우다 적에게 희생되기도 했다.

이제 공명의 수하에 남은 용장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위연이 그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용장이다

 

보니,

공명은 위연이 군기를 문란하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인재 기근이 중원 정벌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공명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가운데

성도로부터 비위가 찾아왔다.
마침 중요한 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공명은

그 일을 해줄 만한 사람이 나타나자 반가이 맞이한다.

 

비위와 인사를 하자마자

공명은,

 

"그대에게 부탁이 있소.
동오의 손권에게 서신을 한 통 보내고 싶은데

동오로 가서 서신을 전달해 줄 수 있겠소?"하고,

묻는다.

 

후주의 명령으로 기산의 분위기를 살피러 왔던 비위는

동오에 서신을 전달하고자하는 공명의 의중을 금방 파악하고,

 

"승상의 명을

제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한다. 
공명은 동오에 전달할 서신을 써서 비위에게 건낸다.

 

"이 편지로 손권의 마음이 움직였으면 좋겠군.

그대가 노력해주길 바라오."

공명이 쓴 서신을 들고 비위는 동오로 떠났다.
공명은 서신을 들고 동오로 향하는 비위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사마의에게 모든 것을 간파(看破) 당했던 직전의 전투를 꼽씹었다.
그리고 부디 자신과 손권의 뜻이 같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389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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