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87)
공명의 여섯 번째 기산 출정
공명은 목문도에서의 승리를 뒤로하고,
이엄(李嚴)이 보낸 편지 내용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한중(漢中)으로 철수하였다.
위나라와 오나라가 동맹을 맺으려 한다는 이엄의 말의 사실이라면,
공명의 계획에 큰 수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공명이 여기 저기에서 정보를 모으려는 그때,
성도(成都)에서 상서 비위(尙書 費褘)가 공명을 찾아왔다.
공명이 기산으로 출정하면서 궁중의 일을 맡겼던 비위가 갑자기 찾아오자
공명은 자신이 위오동맹의 진상을 미처 알아보기도 전에
무슨 급박한 일이 생겼나 싶어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대가 무슨 일로 찾아왔소?"
공명이 묻자,
비위는,
"폐하께서 저를 승상께 보내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승상이 군사를 한중으로 돌리신 연유를
궁금해하고 계십니다."하고,
한중을 찾은 목적을 말한다.
공명은
'아직 폐하께 위오동맹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군...'하고
생각하며,
"요 근래 들어 군량 보급이 신통치 않을 뿐더러,
형주 태수 이엄의 말에 의하면 우리와 동맹을 맺었던 오가
위와 비밀리에 동맹을 맺었다는 소문이 돈다기에 사실을 알아보려고
기산에서 철수했소.
오가 위와 동맹을 맺었다면
틀림없이 우리의 국경을 침범할 기회를 노릴 것 아니오?"하고,
말하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공명의 말을 듣고 비위는
어리둥절함에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이상한 일입니다.
얼마 전 이엄이 폐하께 자기는 기산으로 군량을 보내려고 모두 준비해 놓았는데
승상이 아무 이유도 없이 회군을 하셔서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보고를 올렸는데...
폐하께서는 이 보고를 들으시고는 승상께 저를 보내신 것입니다."
비위의 말에 공명 또한 의아했다.
"뭐?
이엄이 폐하께 그리 보고했단 말이오?
위오동맹을 나에게 말해 준 것이 바로 이엄인데...
진상을 알아봐야겠소."
"추측하건데...
이엄이 군량 마련이 여의치 않자
그 책임을 승상께 전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명의 말을 듣자마자
비위는 공명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설마...
그랬을리가 있겠소?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고 국가의 대사를 그르친다는 것이......
아닐 것이오..."
공명은 이엄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속히 사실 관계를 알아보아야겠다 싶어,
성도로 돌아와 급히 이엄을 불렀다.
"지금 상황이 어찌 된 것이오?
설명해보시오."
공명은 진상을 알지 못하면서
사람을 의심부터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엄에게 차분하게 묻는다.
이엄은 공명의 물음에 재빨리 대답하지 못하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겨우 입을 떼서 말하기를,
"저...
군량을 제 때 마련하지 못하여
승상과 폐하께 거짓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공명은
설마했던 생각이 진실로 확인 되자 크게 노한다.
"이 놈이!
네 놈이 네 한 몸 살자고 나랏일을 망쳤다!
감히 위오동맹을 거들먹거려?
당장 이 놈을 데려가 목을 베라!"
공명의 지시를 옆에서 듣고 있던
비위가,
"승상,
이엄은 선제(先帝: 유비)가 탁고(託孤)하신 분이잖습니까.
선제를 생각하시어 너그러이 용서하심이 어떠시겠습니까?"하고,
공명에게 말한다.
선제의 부탁이었다는 비위의 말에
공명은 순간 움찔한다.
생각해보니 그러하였다.
나라의 흥망과 관련이 있는 것이기에
이엄의 죄가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을만큼 큰 것이었지만
공명은 차마 제 명으로 이엄을 처형할 수는 없었다.
"흠...
그렇다면 이엄에 관한 문제는 그대에게 부탁하겠소."
결국 공명은 고민 끝에 비위에게 일처리를 맡겼다.
공명이 한중으로 돌아온 까닭을 알게 되었으니
비위는 그동안의 사정을 표문으로 적어 후주에게 올렸다.
비위의 표문을 읽은 후주 또한 공명과 마찬가지로 화가 나서는,
"이엄 그 자를 당장 끌어다 머리를 베어라!"하고,
명을 내린다.
후주 곁에 있던 참군 장완(參軍 蔣琬)이
비위가 공명에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후주에게 한다.
"폐하,
이엄은 선제께서 뒷일을 부탁하셨던 신하입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옵소서."
후주도 아버지의 유언이라는 장완의 말에
이엄의 목을 벨 수는 없었다.
선황제의 유언 덕분에 이엄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후주는 큰 아량을 베풀어 이엄의 목을 베는 대신 관직을 삭탈하여 서인으로 삼고,
재동군(梓潼郡)으로 귀양을 보냈다.
이엄이 큰 죄를 지었으나 귀양을 갔다는 이엄의 소식을 듣고
공명은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결국 선제의 뜻을 생각하며
이엄의 아들 이풍(李寷)을 장사(長史)로 앉혀서 제 아비가 하던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이엄의 거짓 제보로 기산에서 철수하여
성도에 머물렀던 공명은 그 이후로도 3년을 더 성도에서 지냈다.
촉국의 여러 아쉬운 상황들 중 하나가
공명 외에는 이렇다 할 명신(名臣)이 없다는 것과,
후주 유선이 영명하지 못하여 사리판단(事理判斷)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공명이 중원 진출을 위하여 성도를 비운 사이에
내정(內政)이 극심히 문란해져 있었고,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위(魏)와의 싸움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말먹이와 군량, 무기를 마련하고 군사를 훈련시켰다.
공명이 성도에 머무는 동안 공명이 장수와 군사, 백성을 가릴 것 없이
두루 보살피니 모두가 공명의 은덕을 칭송하였다.
공명은 지금이야 말로 때가 되었다는 판단을 했다.
공명은 비장한 각오로 후주 앞에 선다.
"폐하,
신이 군사를 보살핀지 어느덧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장군들과 군사들이 저를 믿고 잘 따라준 덕에 마초(馬草)와 군량이 풍족해졌고,
무기도 완비되었으며, 인마(人馬)가 웅장해졌습니다.
이 정도 준비라면 가히 위(魏)를 정벌할 수 있겠기에
이번에 다시 기산으로 나아가 간사한 역적을 없애고
중원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다시는 폐하를 뵙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있습니다."
후주는 공명의 결의에 찬 각오를 끝까지 다 듣고는
특유의 둥글둥글한 말투로 공명을 타이른다.
"상부(相父),
지금 천하는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어 우리와 위, 오가
평화로이 지내고 있는데 왜 굳이 군사를 일으키려 하십니까.
편안히 지내시면 될 것을요."
가만히 미소를 보이며 말하는 후주에게
공명은,
"선제께서는 초야에서 땅을 파 먹고 지내던 저에게
지우지은(知遇之恩)을 베푸셨습니다.
선제께 충심을 다하여 중원을 되찾아 드리고
한실(漢室)을 부흥(復興)시키는 것이 신에게는 생애 하나 뿐인 의무이옵니다."하고,
간절하게 말한다.
"승상께서는
군사를 일으켜서는 아니되옵니다!"
공명이 말을 마치자마자 곁에 있던 태사 초주(太司 譙周)가 나서서 말한다.
승상에게 반기를 드는 인물이 누구인지 보려는 듯
모든 이의 시선이 초주에게 집중된다.
초주는 침착하게 말을 잇는다.
"신은 사천대(司天臺)를 맡아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승상께서 군사를 일으키시려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어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근자에 남쪽으로부터 수만 마리의 새가 날아와 한수(漢水)에 떨어 죽었는데,
이는 흉조가 분명합니다.
게다가 신이 천문을 본 바로는 규성(奎星)이
태백(太白)으로 침범하여 왕성한 기운이 북쪽에 서려 있습니다.
이는 북쪽에 있는 위에게 운이 닿아 있다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우리에게는 불리합니다.
뿐만 아니라 요사이 밤에 잣나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백성이 수두룩합니다.
국가에 이러한 이변이 여럿 있을 때에는 움직임을 가벼이 하시면 안 될 줄로 압니다."
초주의 말에 잠시 술렁임이 지나간다.
하지만 공명의 뜻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선제께서 돌아가실 때
나에게 뒷일을 당부하시는 막중한 말씀을 남기셨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그깟 몇 가지 요사스러운 일을 핑계로 대사를 저버릴 수는 없네.
초주 자네의 충고는 고마우나, 이번이야말로 군사를 일으켜야 하네."
공명은 초주로부터 시선을 거둬 후주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단호한 자세로 후주에게 아뢴다.
"폐하께서는 부디 허락해주시옵소서."
이토록 간절한 청에 후주는
출정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명은 성도를 떠나기에 앞서,
소열황제(昭烈皇帝: 유비)의 사당에 정중히 제사를 지냈다.
"어느덧 다섯 차례나 기산으로 나갔으나
신이 부족하여 아직 이렇다할 성과가 없습니다.
맹세코 제가 목숨을 걸고 선황의 유지(遺旨)를 받들겠습니다."
공명은 제단 앞에 엎드려 절하고 눈물로 고하였다.
공명이 여섯 번째로 기산 출정에 나선다.
다시 기산으로 향하는 공명을 배웅하기 위해
후주가 친히 바깥까지 배웅을 나왔다.
“상부,
이제 연세가 많으시어 몸이 예전 같지 않으시니
부디 몸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하고,
후주는 공명의 안위를 걱정하는 말을 한다.
“황공하옵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여 돌아오겠습니다.
천자께서는 더 나오지 마시고 이제는 들어가십시오.”
공명은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 나오는 후주를 만류한다.
하지만 후주는 공명의 만류에도 들어가지 않고
공명의 눈을 애잔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짐은 천자이면서 상부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가시는 길을 제가 직접 배웅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눈빛을 가진 후주의 눈을 바라보며
공명은 더 이상 후주를 말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틈에 벌써 백발이 다 된 머리로
또 다시 기산으로 향하는 마차에 천천히 오른다.
공명을 태우고 떠나는 마차 뒤에서
후주는 마차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리고는,
“상부도 많이 늙으셨구나...
상부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하고,
혼잣말을 하며 마차 뒤에 대고
고개를 숙여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공명의 여섯 번째 기산 출정은 엄숙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때는 건흥(建興) 13년, 위(魏)의 연호로는 청룡(靑龍) 2년 2월이었다.
388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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