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사마의의 요동 출정 -1

오토산 2022. 4. 28. 07:46

삼국지(三國志) .. (399)
사마의의 요동 출정 -1

공명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

때는 촉한(蜀漢) 건흥(建興) 13년(235), 위(魏) 청룡(靑龍) 3년,

오(吳) 가화(嘉禾) 4년이었다.

 

이 해는 세 나라의 군사가 서로를 지켜만 보는 조용한 시기였다.
위주 조예는 사마의를 태위(太尉)에 봉해

전국의 병마를 총독하고 각 변방을 지키게 했다.
임무를 받은 사마의는 낙양으로 돌아갔다. 

삼국의 전쟁이 잠잠해지자 위주 조예는

수도 허창(許昌)에 화려한 궁궐과 전각을 세우고,

낙양에도 웅장한 규모의 전각, 호수, 동산 등을 새로이 꾸몄다.
대대적인 토목공사에는 이름난 명장(明匠) 삼만여 명이 동원되었고,

삼십여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부역으로 끌려나와 힘든 노동을 견뎌야만 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원망은 높아져만 가는데 조예는 아랑곳하지 않고

궁궐로 악공과 미녀들을 불러 사치와 향락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창업(創業)의 어려움을 직접 겪지 않은 탓이었을까?

 

조조, 조비에 이어 황위에 오른 조예는 

선대들이 품었던 천하 제패의 야망 따위는 없었다.
여러 신하들이 조예에게 표문을 올려 사치스러운 토목공사를 중단할 것과

관료들을 바르게 이끌고 백성들을 돌볼 것을 간청하였지만 모두 허사였다.
조예에게 간언을 한 관료의 관직이 삭탈되거
나 심한 경우 목이 달아나는 일도 허다했다. 

조예의 황후 모씨(毛氏)는

조예가 평원왕(平原王)이던 시절부터
그가 가장 총애하여 황제에 즉위할 때 황후가 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조예는 모황후를 두고 후에 얻은 곽부인(郭夫人)에게 빠져

모황후는 뒷방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곽부인은 미모와 총명함을 갖춰 조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조예는 곽부인의 침궁에서 한 달 넘게 나올 줄을 몰랐다. 

 

춘삼월 화창한 날,

조예와 곽부인이 방림원(芳林園)에서 술을 마시며

꽃놀이를 하고 있는데 문득 곽부인이 조예에게 말했다.

 

"꽃이 이토록 아름답게 피었는데

황후마마도 모셔서 함께 즐기면 어떻겠습니까?"

조예는 마땅치 않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대꾸하기를,

 

"그 사람이 있으면 술이 넘어가질 않는다."하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말을 해놓고는 문득 후환이 두려워진 조예는 

그 소리가 황후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궁녀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모황후는 조예가 한 달 넘도록 정궁(正宮)에 들지 않자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자 궁녀 십여 명을 거느리고

취화루(翠花樓)에 올라 바람을 쐬고 있었다.

 

취화루는 방림원과 멀지 않은 곳이라

방림원에서 흘러나오는 악공들의 연주소리가

바람을 타고 취화루에 이르러 황후의 귀에까지 닿았다. 

 

"저 풍악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
황후가 궁녀들에게 묻자

궁녀 하나가 소리의 출처를 살피고 와서 아뢴다.

 

"황후마마,

제가 가서 보니 폐하께서 곽부인과 함께

방림원에서 꽃구경하며 술잔치 중이셨습니다."

 

"그랬구나.

우리는 이만 궁으로 돌아가자."
심기가 불편해진 황후 모씨는 곧바로 궁으로 돌아가버렸다.

다음날,

황후는 착잡한 마음을 달래려

산책 삼아 작은 수레를 타고 궁 밖으로 나왔다가

우연히 조예의 행차와 마주쳤다.
섭섭한 마음을 웃음 속에 담아

모황후가 조예에게 말한다.

 

"폐하,

어제 꽃놀이에 재미가 좋으셨나 봅니다."

 

"그 소리를 어디에서 들었소?"

 

조예는 가뜩이나 황후와 마주친 것이 불편한데

황후에게 한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더욱 불쾌해진다.
그래서 황후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소문의 출처만 되묻는다.

 

"소문은 나라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예는 더이상 대꾸하지 않고 행차를 돌러 곽부인의 처소로 향했다.
그리고 어제 꽃놀이에서 시중을 들었던 궁녀들을 모조리 불러내어,

 

"누구냐!

어제 짐이 입을 닫고 있으라고 단단히 일렀거늘

어째서 황후가 알고 있는 것이냐!"하고

호통을 친다.

 

궁녀들이 두려움에 떨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만 있는데

조예는,

 

"모두 머리를 베라!"하고,

엄명을 내렸다. 

자신의 말 한 마디에

곽부인 처소 궁녀들의 목숨이 달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모황후는

크게 놀라고 마음이 불안하여 수레를 돌려 즉시 정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정궁으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예의 칙명이 떨어졌다.
모황후에게 사약(賜藥)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모황후는

자신이 황후임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꽃놀이를 알은체했다가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는 사실에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서로가 정다웠던 시절부터 뒷방 신세가 된 지금까지의 세월을

찬찬히 되짚어 보면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하지만 황제의 명은 명이었다.

모황후는 황제가 보낸 사약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모황후가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뜨자마자

조예는 기다렸다는 듯 곽부인을 황후로 삼았다.
황후가 죽고 곽부인이 황후의 자리에 앉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 보면서 

조정의 문무대신들은 자신도 혹시 어떤 일을 당할까 두려워

아무도 감히 간언을 하는 자가 없었다.

위나라 조정이 뒤숭숭한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날 유주 자사(幽州 刺史) 관구검(毌丘儉)의 표문이 올라왔다.

 

그 표문은

요동 태수(遼東 太守) 공손연(公孫淵)이

스스로를 연왕(燕王)이라고 칭하고 연호를 소한(紹漢) 원년으로 고쳤으며,

궁궐과 관직을 두고 군사를 일으켜 북방 일대를 흔들어 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들어

마냥 즐거운 세월만 보내던 조예는 그 소식에 크게 놀랐다.

즉시 문무대신들을 불러들여 계책을 의논하기로 했다.
조예는 사마의에게 묻는다.

 

"요동의 공손연이

십오만 대군을 일으켜 중원으로 쳐들어 왔소.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겠소?"

 

"신의 휘하에 있는 보기병(步騎兵) 사만이면

요동군 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단박에 나오는 사마의의 대답에도 조예는 망설이는 기색이다.

 

"상대는 십오만이라는데 고작 사만으로 되겠소?
게다가 가는 길이 먼데 그 적은 군사로

빼앗긴 땅을 되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오."

 

"병력이 많다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싸움은 지혜와 계책을 잘 이용하는 자가

승리를 얻을 수 있사옵니다.

 

신(臣)은 폐하의 큰 복에 힘입어 이길 자신이 있사오니

출정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반드시 공손연을 사로잡아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사마의는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경은 공손연이 어떻게 움직일 것이라고 보시오?"

 

"공손연에게는 세 가지 안(案)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성을 버리고 달아다는 것.
이것은 공손연에게 있어서 상책입니다.

 

두 번째는 요동을 지키며 저항하는 것.
이는 중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양평성(蘘平城)에 앉아서 지키기만 하는 것.
이것은 하책으로, 그때는 반드시 신에게 사로잡히고 말 것입니다."

조예의 물음에 사마의의 대답은 거침이 없다.  
조예는 사마의에게 계획을 또 묻는다.

 

"길이 먼데 이번 원정길은 왕복으로 얼마나 걸리겠소?"

 

"사천 리 길이니,

가는 것에 백 일, 공격하는 것에 백 일, 돌아오는 것에 백 일,

장병들이 휴식하는 것에 육십 일, 대략 일 년이면 될 것입니다."

 

"일 년 사이에 오나라나 촉나라가 침략해오면 어쩌오?"

 

"신이 방어책을 미리 생각해두었으니

폐하께서는 심려치 마시옵소서."

 

시원시원한 사마의의 말에 조예는 흡족했다.

사마의에게 즉시 군사를 이끌고 공손연을 토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마의는 호준(胡遵)을 선봉으로 삼아 전군(前軍) 부대를 거느리고

먼저 요동으로 진군하여 영채를 세우게 했다. 
이 소식은 탐마(探馬)에 의해 바로 공손연에게 보고되었다.
공손연은 원수 비연과 선봉장 양조에게 팔만 대군을 주어 요동에 주둔 시켰다.

 

그리고 성 주위 이십여 리에 참호를 파고

녹각(鹿角)을 쳐서 삼엄한 방어진을 쳤다. 
이 사실은 금세 사마의의 귀에 들어갔다.
사마의는 적의 방어진 얘기에 무릎을 치며 껄껄 웃었다.

 

"놈들이 싸울 생각 없이 시일을 끌어서

야전(野戰)에 있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 심산인가보다.
군사의 태반이 여기에 주둔하고 있다면
그 소굴은 텅 비어 있겠군.

 

차라리 여기는 그냥 버리고 샛길로 양평까지 진군해야겠다.
그러면 놈들은 반드시 그곳을 구하려고 뒤따라 나올 것이다.
우리는 중도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기습하면 승리는 자명하다."

 

사마의는 계획대로 호준의 부대만 남겨두고

자신은 지름길을 이용하여 양평을 향해 갔다.

한편,

요동성을 지키고 있는 비연과 양조가

밖에 나타난 사마의의 군사들을 보고 대책을 협의한다.
비연이 의견을 말한다.

 

"위군이 공격하더라도 섣불리 나가서 싸우지 맙시다.
저들은 수천 리를 걸어 왔으니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이오.
군량이 바닥나면 저절로 물러나게 되어 있으니

우리가 그때를 틈타서 기습하면

사마의쯤을 잡는 것이 어려울 것이 있겠소?

 

지난번에 사마의가 촉과 싸울 때만 봐도

사마의는 위수(渭水) 남쪽을 지키기만 하고 나가서 싸우지 않았소.

 

제갈양이 죽을 때까지 버틴 끝에 이겼고.

우리도 그때와 다를 것이 없으니 괜히 나가서 싸우느라 애쓰지 말고

버티는 것이 상책이오."

 

양조도 비연의 의견에 동조하여

두 장수가 세부 전략을 논의하고 있는데 급보가 날아온다.

 

"위군이 남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적의 행동에

비연과 양조는 모두 놀랐다.

비연이 말한다.

 

"양평 본영에 우리 군사가 얼마 안 되는 것을 알고

본영을 치러 갔나보오! 큰일이오!
양평을 잃으면 여기를 지키는 건 아무 소용도 없게 될 텐데......
ㅂ당장 서둘러 양평으로 가는 것이 좋겠소!"

 

비연과 양조는 요동의 영채를 철수하고 급하게 양평으로 출발한다.
사마의는 요동성의 움직임을 탐마에게 듣고는 소리내어 웃는다.

 

"하하하하하!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한대로구나!

결국 내 계책에 빠지고 있군."

 

그리고는 하후패(夏侯霸), 하후위(夏侯威) 형제에게

군사를 이끌고 요수(遼水) 강변에 매복해있다가

요동군이 나타나면 좌우에서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하후패와 하후위가 매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비연과 양조의 군사가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때,

포향(砲響)이 터지고 뒤이어 북이 둥둥둥 울린다.
왼쪽에서는 하후패가, 오른쪽에서는 하후위의 군사가

깃발을 흔들며 위협적으로 요동군을 덮친다. 

 

계속되는 뜻 밖의 상황에 비연과 양조의 군대는

당황한 나머지 맞서 싸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바삐 도망치기만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달린 끝에 비연과 양조의 군사는

수산(首山)에 이르러서 공손연의 군사와 만나 힘을 합쳤다.
본진과 합세하게 된 덕분에 비연은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줄행랑 치던 발걸음을 돌려 뒤쫓고 있는

하후패, 하후위의 군사를 향해 기세 좋게 외친다.

 

"간계(奸計) 따위나 쓰는 것이냐!
나하고 싸울 배짱도 없는 것이냐?"

 

비연의 당찬 기세가 무색하게 비연의 머리는

하후패가 휘두른 칼에 금방 나가 떨어졌다.

장수를 잃은 요동군은 크게 동요한다.

 

적이 혼란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후패는 요동군을 엄살(奸計)했다.
하후패에게 호되게 당한 공손연은

남은 군사들을 수습하여 얼른 양평성으로 들어가서 성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성 안에 틀어박혀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손연이 양평성에서 나오지 않고 버티는 것은 사마의가 바라던 바였다.
위군은 양평성 사방을 에워싸고 적을 압박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계책에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되는 법인데,
가을비가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내려서 야전에 있는 위군을 괴롭혔다.
자연의 움직임은 사마의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사마의는 공명의 계책에 속아

호로곡에서 불길에 휩싸여 죽을 뻔 했던 것을
비가 구해주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이번엔 비가 자신을 돕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비로 평지에도 물이 삼 척 넘게 고였다.

 

군량을 운반하는 수송선이 요하(遼河) 어구에서

짐을 내려 육지로 옮길 필요도 없이

곧바로 배로 양평성 아래까지 다다를 수 있을 만큼 온통 물바다였다.
위군의 영채가 물에 잠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앉기도 걷기도 힘들어진 지경이었다.

 

끝없는 비에 심신이 고단해진 군사들의 군심이 술렁이기 시작하자
좌도독 배경(左都督 裵景)이 사마의를 찾아가서 아뢴다.

 

"비가 계속 되어 영채가 진흙 구덩이가 되었습니다.
군사들이 힘에 부쳐 사기가 꺾이려 하니,

영채를 높은 산 위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마의는 배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상을 쓰며 크게 화를 낸다.

 

"조만간 공손연을 잡느냐 마느냐 하고 있는 마당에 영채를 옮기자 하느냐?
또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그 말을 하는 자가 누구든 가차없이 목을 베겠다!"

 

서슬 퍼런 사마의의 눈빛에

배경은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하고 물러간다.

얼마 후,

이번에는 우도독 구련(右都督 仇連)이

사마의를 찾아와서 말한다.

 

"군사들이 물난리에 고생하고 있습니다.

영채를 고지대로 옮기면 어떻겠습니까?"

 

구련이 말한 것은 배경이 말했던 것과 꼭 같은 내용이다.
좌도독과 우도독이 번갈아 가며 와서

속을 긁는 통에 사마의의 화가 극에 달했다.

 

"내가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말한 바가 있다.

군령으로 엄히 다스리기로 하였는데

또 와서 지껄이는 거냐?
여봐라, 이 놈을 끌어다 참수형에 처하라!"

사마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구련의 머리는 영채 남문에 높다랗게 걸렸다.
오갈 때마다 눈에 들어 오는 구련의 머리를 두고

감히 그 어느 누구도 다시는 영채를 옮기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후에 사마의는 군사들을 이십여 리 후퇴시켰다.

 

그 사이에 양평성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성밖으로 나와 땔감을 마련하고 마소를 들판에 놓아 먹였다.
사마의는 적들이 성밖으로 나오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마 진군(司馬 陳群)이 사마의를 찾아와서 말한다.

 

"태위께서는 지난 날 상용(上庸)을 치셨을 때엔

군사를 여덟 갈래로 나누어 여드레 만에 성에 도착하여

맹달(孟達)을 사로 잡는 공을 세운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헌데 지금은 무장한 군사 사만 명을 이끌고

수천 리 길을 오셔서도 공격 명령은 내리지 않으시고,

우리 군사들은 진흙탕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적들은 성밖을 나와 제 할 일들을 하게 내버려두시니,

저는 태위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인지 좀처럼 짐작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마의는 웃으며 대꾸한다.

 

"허허허!

공은 병법을 모르는군.
과거에 맹달은 군량은 넉넉했지만 군사가 적었고,

우리는 군사는 많았지만 군량은 적었지.
그럴 땐 속전속결(速戰速決)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지금 상황을 보자하면 적은 숫자가 많지만 군량은 적고,

우리는 숫자는 얼마 안 되지만 먹을 것 걱정은 안 하고 있으니

맹달 때와는 정 반대 상황 아니겠는가?

 

뭐하러 내가 힘을 빼겠나?
조만간 저들은 배가 고파서 제대로 싸울 힘도 없을 걸세.
아마 식량을 찾아 도망가기에 바쁘겠지.
그때 뒤를 치면 손쉽게 이길 수가 있을 것이야.

그러려면 우리가 적의 성을 무작정 꽁꽁 싸맬 것이 아니라

문을 슬쩍 열어주어 도망갈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지.
어쨌든 두고 보면 놈들은 제풀에 꺾일 것이야."

 

"역시 태위님의 생각은 감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진군이 사마의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감탄한다.
사마의는 군심의 기본이 되는 군량이 끊어지지 않도록

낙양으로 사람을 보내어 군량을 독촉했다.

 

낙양에서 요동까지는 먼 거리였기 때문에

조예는 신하들을 모아 놓고 군량을 운반할 방도를 논의하기로 했다.
군량 조달 문제를 의논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뜻밖에도 철군(擧論) 이야기가 먼저 거론된다.

 

"가을비가 한 달 넘게 계속되어

군사들의 피로감이 상당하다고 하옵니다.
전염병이 돌게 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사오니

이쯤에서 그만두고 사마 태위를 불러들이심이 옳으실 줄로 아옵니다."

여러 신하들의 의견이 철군으로 모아진다.

 

하지만 조예의 생각은 달랐다.
조예는 사마의에 대해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마 태위는 용병에 능하고 지략이 뛰어난 것을 경들도 다 알지 않소?
위기가 닥치더라도 임기응변(臨機應變)에 능하니 얼마든지 극복할것이오.
짐은 반역자 공손연을 생포할 날이 머지 않은데 싶소만,

경들은 무얼 그리 걱정한단 말이오?"

 

결국 조예는 모든 신하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자신의 뜻대로 사마의의 군사들이 있는 요동으로 군량을 실어 보냈다.
사마의의 군대가 계속되는 비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기를

또 여러 날이 지난 어느날, 드디어 비가 그치고 날이 맑게 개었다.

 

맑게 갠 그날 밤,
사마의는 장막 밖으로 나가 천문(天文)을 살폈다.
하늘에서 문득 수산(首山) 동북쪽으로부터 양평 동남쪽까지

말[斗]만한 별똥별이 꼬리를 길게 빼며 떨어졌다.

 

비가 그쳐서 한숨 돌리고 있던 장병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불길한 징조가 아닌가 싶어 다들 두려워했다.
하지만 사마의만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장수들을 모아 놓고,

 

"닷새 남았다!
별이 떨어진 그곳에서 공손연의 목이 달아 날 것이다.
내일부터는 총 공격에 돌입할 테니 있는 힘껏 성을 공격하라!"하고,

호언장담(豪言壯談)한다.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가 무섭게

장수들은 군사들에게 양평성을 에워싸고 공격을 하도록 지시했다.
성벽 주위로 토산을 쌓고 아래로는 땅굴을 팠다.

 

포대(砲臺)를 세워서 포를 날려 보내고,

성벽에 운제(雲梯: 사다리)를 기대 놓고 성벽을 기어올랐다.
공격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계속 되었다.

 

쏘아대는 화살이 하늘을 뒤덮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양평성에서 버티던 공손연의 군사들은 식량이 바닥난지 이미 오래였다.
굶주림에 소도 모자라 군마(軍馬)까지 잡아 먹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자

공손연의 군사들은 차라리 공손연의 머리를 베어 위군에 투항해

주린 배나 달래자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공손연은 그러한 민심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

그리하여 고심 끝에 위군에 조건부 투항을 할 것을 결심했다.
상국 왕건(相國 王建)과 어사대부 유보(御史大夫 柳甫)를

사마의의 영채로 보내서 항복의 뜻을 전하도록 했다.
두 사람은 몸에 밧줄을 묶고 성벽을 내려가서 사마의를 찾아간다.
그리고 사마의에게 공손연의 뜻을 전한다.

 

"태위께서 군사들을 이십 리만 물려 주신다면

저희 군신(君臣)들이 자진하여 투항하겠습니다."
사마의는 화가 나서 크게 소리친다.

 

"괘씸하구나!
공손연에게는 다리가 없느냐?

왜 본인이 직접 오지 않고 너희들을 보낸 것이냐!
여봐라! 이 두 놈을 데려다 목을 베고 머리를 공손연에게 보내라!"

 

승기(勝機)를 거의 잡은 사마의는 급할 것이 없었다. 
항복의 뜻을 전하러 갔던 두 사람이 머리만 돌아온 것을 보고는

공손연이 크게 놀랐다.

 

사람을 대신 보내 두 사람의 머리가 달아났는데도 불구하고,

공손연은 또 본인 대신 시중 위연(侍中 衞演)을 사마의의 영채로 보냈다.
위연은 최대한 공손한 자세를 보이고자 무릎으로 기다시피하여

사마의의 앞으로 나가 머리를 조아리고 말한다.

 

"태위께서는 노여움을 잠시 거두어 주십시오.

오늘중으로 먼저 세자 공손수(世子 公孫修)를 인질로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뒤따라 저희 군신이 결박짓고 나와 항복하겠습니다."

 

"어헛!

멍청하기도 하지!
군사를 이끈다는 자가 병서(兵書)도 읽지 않은 모양이군.
잘 들어라! 군사(軍事)의 요체(要諦)는 다섯 가지가 있다.

 

싸울 능력이 있으면 맞서 싸우고, 싸울 능력이 없으면 지키고,

지킬 능력이 없으면 도망치고, 도망칠 수도 없으면 항복해야 하고,
항복할 힘마저 없으면 죽음이 있을 뿐인데

지금 본인의 처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단 말이냐?
제 자식을 인질로 보내면 나더러 무얼 어쩌란 말이냐?
돌아가서 내가 한 말을 그대로 공손연에게 전해라!"

사마의는 위연을 꾸짖고 양평성으로 위연을 돌려 보냈다.
위연은 공손연에게 사마의의 말을 전달했다. 
그 말을 듣고 공손연은 또 당황했다.

 

태자를 인질로 보내고 항복하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사마의의 말을 듣고 보니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아들 공손수를 급히 불러다

앞으로의 대책을 은밀히 상의했다.

-2 에서 계속됩니다.
양이 많아 -1,-2로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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