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풍수기행(임청각) 강의를 다녀와서
2022년 6월 10일 오전에 행정동우회 총회를 마치고
14:00 경상북도 유교문화회관에서
안동풍수기행으로 임청각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고성이씨 안동입향조 이증(李增1419~1480)의 다섯아들 중 셋째로
1486년(성종 7) 사마시에 합격하고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李洺)선생이
갑자사화로 조카는 사형당하고 형(낙포 굉)과 함께 영해에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 후 복직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잃고 낙향하여 형은 귀래정 짓고
본인은 영남산 기슭에 집을 지어 귀거래사의 한구절을 따서 임청각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임청각은 한옥으로 지어진 살림집으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삶으로 방식과 가치관 까지 보여주는 박물관이고
건물의 구조와 배치및 조형의 우수성뿐만아니라
임청각의 뒷산이 누에머리모양의 잠두봉으로
정침은 누에의 오른쪽 눈무늬에 자리잡고 있는 와혈이고
횡대가 뚜렸하고 현릉이 곤충의 입처럼 선명하여
누에가 실을 뿜듯이 자손이 번창하는 풍수적 입지의 탁월함으로
벼슬살이에 나서는 자손들이 이어져 왔고 특히 일제강점기
초대국무령 석주 이상룡선생과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한옥은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50도를 넘는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지내는 구들과 여름을 지내는 마루가 한 곳에 있고
단층건물임에도 부엌바닥이 제일 낮고
온돌은 부뚜막보다 높고 마루는 방바닥보다 높으며
천정의 높이도 각각 다르게 하여 냉방과 난방을 조절하여 왔으며
튓마루, 쪽마루, 뜰마루를 통하여 각각 공간출입이 가능토록 하고 있다.
특히 임청각은
안마당, 안행랑마당, 행랑중정, 진입마당, 사랑마당 등으로 공간이 구분되며
유좌묘향(정동향)으로 日자와 月자를 합친 用자형태로 건축되어 있으며
문이 중방이나 띠방, 상인방 등 부재가 없어
벽에 붙은 액자와 같은 모습이라 한다.
법흥동 고성이씨종택은 이명의 막내 반구정 이굉의 다섯증손자 중
셋째인 적(適)이 탑동파의 파조이고 좌승지에 증직된 그의 증손 후식이
1685년(숙종 24)지었는데 법흥사 절터에 지으면서 슬픈사연도 있었고
승지공이 돌아가시고 손자 영모공 이원미가 사랑채를 완성하였고
그의 손자 북정 이종주가 종택 뒷편에 북정을 짓고 자연을 즐겼다고 하며
용상 현대아파트 뒤에 있는북정의 산소는 돌장골(석장곡) 명당에 자리하고
옆에 능선에는 영모공과 그의 아버지(이시흥)의 산소가
두개의 젖무덤이 내려온 듯한 쌍유혈에 위치한다고도 한다.
신세동 칠층전탑은 낙강과 반변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물의 기운을 누르는 비보(裨補)로
'땅에 문제가 있으면 고칠 수 있다'는 도선스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하였으며
임진왜란때 이여송에 의하여 지맥이 단맥되고
일제시대 쇠말뚝으로 혈이 끊어졌다는 구비설화가 많이 전하고 있으며
중앙선철로를 건설하면서 임청각의 정기를 끊고
학봉선생산소의 맥을 끊었으며
서지역 옆의 백죽당 산소에서 서지역쪽을 바라보면
단맥된 사실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다며 오늘의 강의 를 마쳤다.
오늘도 임청각의 풍수지리와 고성이씨 문중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안동의 풍수 와혈의 땅과 인물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완규 선생님과 함께 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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