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예천용궁 만파루와 척화비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2. 6. 16. 17:48

예천용궁 만파루와 척화비를 다녀와서

 

몇일간 내리던 비가 멈추고 햇볕이 나며

바람이 설렁설렁 불어오는 6월 16일

오전에 파크골프로 한나절을 보내고

11:30 동우회사무실에서 회원 5명이 만나

예천 용궁으로 나들이를 하였다.

 

용궁(龍宮)은 신라시대 축산, 원산으로 불리다가

1005년(고려목종8) 용주군(龍州郡)이 되었다가

1012년(현종3) 용궁군으로 고쳐 상주목에 속하였고

1413년(태종13) 용궁현으로,

1856년(철종7) 홍수로 향석리에 있던 현청이 떠내려가

1857년 청사를 현위치로 이전하였으며 

1895년(고종32) 용궁군으로 11면을 관장토록 하였으나

1914년 4월 1일 예천군 용궁면으로 되었다고 전한다.

 

용궁순대는 천안 병천순대와 용인 백암순대와 함께 명성이 높고

순대는 고려시대 중국에서 들어온 음식으로 추측되며

1919년 심환진 상주군수의 반가음식조리서 是議全書에 등장하고

당면순대가 일반화되며 서민간식이자 대중식으로 일반화 되었고

 돼지막창으로 만든 용궁순대는 소창으로 만든 타지역 순대보다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과 풍부한 육즙으로 맛이 있으며

조용한 시골동네가 순대명소가 되어 순대집이 여러집이 생겨났고

회룡포와 무인역으로 이용되는 용궁역과 특산품 토끼간빵도 개발되어 

관광객들이 몰려 줄을 서서 기다려야 용궁순대를 맛 볼수 있다고 한다

 

용궁에 도착한 우리는 자주찾던 박달식당을 찾았다.

'아이가 넷으로 장사에 목숨을 걸다보니 꼬맹이와의 시간이 부족하여

매주 월요일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하여 휴무를 한다'는 안내문과

'국밥은 기본, 순대는 필수, 오징언 원픽, 곱창은 옵션'이란 표현과

'2대에 국내산 막창만을 고집해온 순대의 명가'라는 표현이

마음을 끌었다.

 

우리는 순대국밥 다섯그릇과 수육,  오징어구이에 소주 한 병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인근에 있는 만파루와 척화비를 찾았다. 

 

만파루(萬波樓)는 1857년 향석리에서 관아를 옮겨올때 함께 옮겨져

향토수재들의 백일장 장소로, 한량편사(閑良便射)와 시예소(試藝所)로,

남여노소의 소요처로, 구한말 독립운동요람지로 애환을 함께 하여 왔으나

노후하고 수침한 것을 이건한 탓으로 1945년 8월 중순 자연붕괴되었다가

독지가와 면민들의 성금으로 1987년 10월 12일 착공,  1988년 4월 2일 상량,

1988년 6월 30일 복원하고 옆에 독립운동기념비를 함께 세웠다고 전하며

효친(孝親), 경로(敬老), 애국(愛國)이라 세겨진비도 함께 서 있었다.

 

독립운동기념비(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는

1988년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예천 용궁의 정진우, 장진성, 김철상, 한양이, 이봉래, 권혁무를 비롯하여

용궁3.1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공적이 담겨 있고

김철상과 장진성은 의병항쟁을 전개하였으며 전진우와 한양이는 의병에 이어

1921년 독립운동후원의용단에 가입 군자금모금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었으며

함남 단천출신으로 예천에 거주하던 이봉래는 만주에서 무장항일투쟁을 펼쳤고

권혁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활약하였으며 

 

용궁3.1운동은 1919년 4월 8일부터 용궁공립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기획되었고

학생들이 4월 12일 오전 용궁장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하고 준비에 나섰으나

전날 그 계획이 드러나 17명이 체포되고 징역이나 태형을 선고받고 고초를 격었으며

용궁궁만세운동은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준비했다는데 이의가 있고

선영들의 이러한 독립운동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만파루복원사업을 추진하던 

추진위원회에서 발의하여 용궁면민들이 뜻을 모아 1988년 이 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용궁척화비(斥和碑)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1871년(고종 8) 신미양요를 격으며

흥선대원군이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전국 요소요소에 척회바를 세웠는데

대부분 당시 정세변동에 따라 철거되었지만 이곳은 남아 그시절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비석전면에 '洋夷侵凡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서양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는 것이요.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니 

우리의 만대 자손에 경고 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 세겨져 있었다.

 

오늘은 계획에 없었던 번개팅에 참석하여 용궁나들이를 하면서 맛 있는 점심을 먹고

만파루 2층 루각에는 오를 수 없어 조금 아쉬웠지만 만파루 언덕에 올라서

충신, 효자, 열녀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독립운동을 펼쳤던 용궁마을을 내려보며

독립운동기념비와 척화비, 용궁에 근무했던 현감. 군수들의 영세불망비를 보며

용궁의 역사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가졌다.

 

용궁나들이에서  운전을 하신 김회장님, 점심을 사신 권국장님께 감사드리며

동행하신 모든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늘 건강하신 나날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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