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거경대학에서 광주 남한산성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2. 11. 19. 09:38

거경대학에서 광주 남한산성을 다녀와서

 

45만명이 대입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1월 17일  08:00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거경대학에서 서울. 경기지역으로

금년도 마지막 답사를 떠나 단양팔경휴게소에서 휴식을 하고

11:00경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한산성에 도착을 하였다.

 

남산산성(南漢山城)은 한강의 남쪽에 위치한 산성으로

청량산을 중심으로 해발 500m내외의  자연지형을 따라 쌓여진

12㎞정도의 성벽으로  673년(신라 문무왕 13) 주장성(晝長城)터에

1624년(인조 2) 왕실의 보장처 역할을 하기 위해 축성하였다고 하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청태종의 10만대군에게 포위당하여

47일간 항쟁하던 전쟁터 였으며

 

각지의 근왕병과 지원병이 공격하였으나 청군의 포위를 풀지 못한채

비축식량이 바닥나 인조가 항복을 결심하고 삼전도로 걸어 내려가서

'삼배고두례(三拜叩頭禮)'를 행하고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체결하므로

우리민족의 삶을 바꿔놓은 역사적인 분기점이 되었던 곳으로

1917년 광주군청을 산성리에서 경안리로 이전하며 더욱 쇄퇴하었으나

1999년 산성이 복원되고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15년 10월 16일 중부면을 남한산성면으로 명칭변경을 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찾기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는 산성행궁의 남한루(南漢樓)를 지나 산길로 수어장대로 오르는데

숨이 가빠지고 이마에 땀도 맺혔으며 수해입은 도로는 보수중에 있었다. 

 

 수어장대 입구에는 남쪽성벽을 쌓는 도중 공사비를 빼돌렸다는 누명으로

서장대 앞에서 참형을 당하였으나 확인결과 성벽이 견고한 건으로 밝혀진

이희 장군과 참형 소식을 듣고 한강에 투신한 이희장군의 아내 송씨,

산성축조를 지휘한 백암대사 초상을 그려 산성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모시는 청량당(淸凉堂)이 있었고

 

수어장대(守禦將臺)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목적의 루각으로

  5개장대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대이며 남은건물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로서 1624년(인조 2) 단충으로 지어져 서장대로 불리던 것을

1751년(영조 27) 유수(留守) 이기진이 2층으로 지어 수어장대라 하였으며

병자호란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혔다가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2층루각에

걸었던 무망루(無忘樓)란 편액이 1989년 오른편 보호각에 전시되어 있었다.

 

수어장대와 무망루 보호각을 구경하고 돌아서니

1953년(단기 4286) 9월 6일 이승만대통령이 방문하여 식수한 전나무에

'리대통령 각하 행차 기념식수'라 쓰여진 표지석을 보고 70년 세월이 흐르며

사람들의 의식도, 표현도 많이 바뀌었구나? 싶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인경왕후(숙종의 비) 아버지 김만기님이 서장대가에서

'비록 한강의 흐름을 기울어도 그날의 비린내는 씻지 못 할 것이다.

만약 혹시라도 풍경이나 구경하고 유람이나 탐하면서 다시는 감계하고

탄식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니는 이른바 그 양심을 잃은자 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수어장대를 내려와 지화문(至和門)으로 오니

지화문을 통하여 성남으로 가던 길은 터널이 뚫리고

  건축중인 '남한산성역사문화관' 옆에는 산수유가  빨갛게 열려 있었다.

 

12:40 인조의 한이 서린 남한산성 탐방을 마치고

수원화성으로 출발하여 13:50 화성행궁 인근에 있는

'김가네 한우국밥'에서 전복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전복을 밥에 넣고 양념간장으로 비벼서 먹으면 맛이 있다'는

사장님의 친절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