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탈없이 살라고 탈춤추는 사람들<하회별신굿탈놀이>

오토산 2022. 11. 20. 07:49

 

 

미국에 살다가 30 여년만에

고향 안동을 방문한 빈객이 있어

단촌사시는 이 동필장관과 함께 하회마을을 찾아

탈없이 살라고 추는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보러 왔다.

 

몇년전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성직자 일행들과 함께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을 보러 온 적이있었지만

정말 오랫만에 몇년동안 못보고 지냈던 공연을 보고 있다.

 

혹 관람하는데 도움이 될까해서

또 조금 아는걸 참지못하고 아는채하는 병이 도져서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고

지역민의 화해 ( 화회 )를 위한 마을동제의 별난 굿인데 , 

마을신을 기리고, 내력담을 알리고, 마을신을 즐겁게 하려고,

춤추고 덕담하며 마당에서 즐긴다는 내용으로. . .

 

그리고 또 지배계층인 권력층 양반과

최고지식인 인 선비, 절대 성직인 스님과 같은 분들을 내세워

하층계급의 노비와 종인 초랭이, 지체장애인 이매,

가난한 할미와 사람대접도 못받던 백정들이

풍자와 해학으로 응어리가 맺힌 속사정을 껄죽한 사설로 풀어내는

그래서 그동안 맺힌 한을 풀어나가는 장치가

이런 별신굿의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시원하게 내 지르는 욕지꺼리를 마음놓고 할수있는

그시대 양반과같은 절대계층을 욕했다가는 죽여도 별일이 없던시절에

어찌 공개된 장소에서 그것도 경비는

욕을 얻어먹는 양반들이 대 가면서 했냐하면

신탁이라는 장치로

신이 내리는 소리를 가면을 쓴 사람이 받아서 할뿐이라는

오묘한 장치를 통해 그간의 맺힌 한을 풀어주고 그것을 통해 민심을 읽는

참 지혜로운 옛 어른들의 전승을 멋지게 설명해 보는데

그러고 보니 안동의 저변에 깔린 참 좋은 전통이라는 생각이 들어

특별히 이점을 강조해서 설명해 주었다.

 

1973 년 안동에는

안동문화회관이라는 문화공간이 개관되었었다.

그때 안동에는 변변한 모임장소도 없었고

전시, 공연, 집회, 회식들을 할곳이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다.

유일한 공간이었으므로 지역민의 사랑을 받았었다.

 

바로 그때 이 문화회관에서 하회가면극연구회가 창립되었다

초대관장이셨던 유 한상 관장이 오늘의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있게 한 분으로

그동안 중단되고 있던 별신굿탈놀이 대본을 채록하여 전승하도록 하고

사람을 모으고 연구회를 창립하도록 돌보고 연습장소를 제공하는등

모든 뒷바라지를 열성적으로 하였었다. 

 

나도 이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보아왔고

조금은 뒤에서 뒷바라지를 한적도 있었다.

국제 탈춤 페스티벌이 수십년째 이어져오는것도 그것이라 할수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복원을 위해 노력하던중 공개행사로

처음 안동을 방문한 주한 프랑스 랑디 대사일행에게 공개하고

이후 최후의 연희자인 이 창희 옹을 발굴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69호로 지정된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마침 올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예정이라 한다.

 

평일이고 코로나 감염병시절을 사는 때인데도

전수관 연희장이 관객으로 가득차고 열기가 뜨거웠다.

그동안 해설 자막도 영어, 일어, 중국어로 잘 제공되고 있고

탈을 쓰고 대사를 소화해야해서 대사전달이 잘되지않는점도

음향처리가 매끄러워 전달이 잘되고,

 

오랫동안 공연해 오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회장 김 춘택 ( 할미 )를 비롯한  임 형규 전,회장 ( 양반 )의 노련한 연희와

출연진의 노회한 즉흥대사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청중을 휘잡는다.

특히  손 상락( 부네역 )이 연희하는 여인의 몸짓과 연희가 간들어지고

스님역의 김 종흥이 펼치는 능청스런 연희와

백정, 초랭이, 이매의 농익은 연희가

별신굿의 상황과 풍자를 제대로 소화하고 있었다.

 

역시 하회가 하회답다.

하회를 보면 안동이 보이고

안동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그러니까 한국을 보려면 안동에 오면 된다.

한국속에 한국,  안동이니까 . . .

 

양반의 안동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