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거경대학에서 서울 창덕궁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2. 11. 20. 14:52

거경대학에서 서울 창덕궁을 다녀와서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의회의 비준으로 발효된 11월 18일(2일차)

리조트옆 골프장에는 안개속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우리는 08:00 리조트를 출발하여 맛갈난 돼지국밥에서 아침을 먹고

08:30 창덕궁으로 출발하여  09:40 첫 답사지 창덕궁에 도착을 하였다.

 

창덕궁(昌德宮)은 태종이 창건하여 임진왜란때 모든 궁월불탄 후

1610년(광해 2) 창덕궁을 재건하여 270여년 동안 법궁으로 사용되었고

동쪽의 창경궁과 경계없이 사용되었고

남쪽에는 종묘가 자리하고 북쪽에 후원이 붙어있어

조선왕조의 최대의 공간을 형성하여 조선 최후의 궁궐이었고

1881년부터 복원하여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돈화문(敦花門)을 들어서니  회화나무 고목이 우리를 반겼고

진선문(進善門)과 인정문을 지나 

정전(正殿)으로 왕의 즉위식과 신하들의 하례와 국사신 접견 등

주요행사를 하던 인정전(仁政殿)을 갔더니

 조정(朝庭)에는 어도(御道)와 품계석이 설치되어 있었고

인정전 안에는 일월오봉도 앞에는 빈의자만 덩그러니 있었으며

 

동쪽에 세워져 왕이 고위 산하들과 일상업무를 보던 편전(便殿)인

선정전(宣政殿)에는 청기와가 올려져 있고  조계청으로 불리다가

1461(세조 7)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선정전으로 바꾸었고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1647년(인조 25) 인왕산 기슭 인경궁을 헐어

재건하였고 선정문에서 선정전까지는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왕의 거쳐였던 희정당(熙政堂)은 원래 숭문당이었는데 연산군때

희정당으로 바꾸었다고 전하며 침전에서 편전으로 쓰이기도 하였고

1917년 소실된 것을 경복궁 강년전을 이건하여 건축하였다고 전하며

 

세자의 일상이 숨쉬던 동궁인 성정각(誠正閣)은

순조의 장남인 효명세자가 대리청정때 주로 기거하면서

정궁으로 쓰이기도 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왕가의 내의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24대 헌종이 자식이 없어 김재청의 딸을 경빈으로 맞이하여 지은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헌종 13)지어 사랑채겸 서재로 사용하였고

옆으로 경빈 처소인 석복헌(錫福軒)과 대왕대비 순원왕후를 위한 

수강재(壽康齋)를 지어

궁궐안에 후궁을 위한 처소를 새로 마련한 첫 사례가 되었다고 전하며

석복헌에는 순종의 비 순종효왕후가 1966년까지 살았고

낙선재에는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1989까지 살았다고 전한다.

 

우리는 인원이 많아 창덕궁 후원을 입장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낙선재를 마지막으로 창덕궁 답사를 마치고 10:40 종묘로 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