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전례문화보존회에서 영천 포은선생 탄생지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2. 12. 20. 23:20

전례문화보존회에서 영천 포은선생 탄생지를 다녀와서

 

임고서원을 출발하여 10분정도를 달려 포은선생탄생지에 도착하니

해설사님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우리는 해설사님의 안내를 받았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선생은

신라 육부성씨 중의 하나이며 영일 정씨(영일호장을 지낸 정의경을 시조)로 

포은은 고려 인종조 문신인 정승명의 10대손으로 선대가 영일 오천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처향(영천이씨)를 따라 영천 임고면 우향리로 이거하여

출생하였고 목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목은은 '몽주의 진리는 횡설수설이

이치에 맞지 않음이 없다(夢周論理 橫說竪說 無非當理)고 하였으며 

조선조에 '동방이학의 할아버지(東方理學之祖)로 추승되었다.

 

공민왕때 문과에 장원급제를 하여

고려말 문하시중까지 지내시며 여진족과 왜구토벌, 사신으로 명나라와

일본을 여러차례 다녀오시고 지방에 향교를 세워 유학진흥에 힘썼고

충절이 깃든 단심가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조로 알려졌으며 효행이 뛰어나

효자정려의 은전이 내려져 효자리비(孝者里碑)가 세워지기도 하였으며

고려왕조를 위해 절의를 지키다가 선죽교에서 순절하시고 조선 신왕조에서

역신(逆臣), 간신(姦臣)으로 불리다가 태종이 즉위하면서 문충(文忠) 시호를

받은 절의지사로 평가받고 1917년(중종 12) 문묘배향이 되었다.

 

생가입구에는 공원에는 포은선생의 동상이 서 있었고

주변에는 포은선생의 시를 새긴 시비들과 해설판이 전시되어 있었다.

 

해설사님은 평소 안동사람들을 좋아한다며 

입구의 성임문(聖臨門)은 포은선생이 관례를 치를 즈음 아버지의 꿈에

주공(周公)이 빙그레 웃으시며 나타나 '나는 주공이다. 그대의 아들 몽룡은

후세까지 이름을 남길 소중한 사람이니 잘 길러야 할 것이다'라 하고 사라져

몽주(夢周)로 고쳐 부르게 된데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생가와 영정각을 두루 관람하며 해설사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한자표현의 고저장단에 대한 의견도 교환하면서 관람을 하다가 

해설사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12:00경 우리는 군위로 출발하여

민속한우에서 육회와 불고기로 점심을 먹으며 한해를 평가하는

시간을 가지다가 14:00경 의성의 빙계서원으로 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