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오헌의 장사추와(長蛇追蛙)
경북 봉화의 옛날 지명이 내성(乃城)이다.
조선 시대 내성은 큰 장이 열렸다.
동해안 울진 항구의 고등어와 해산물을 보부상들이 지게에다 지고
태백산맥의 험준한 십이령(열두 고개)을 넘었다.
그 고등어의 도착 지점이 내성 장이었다.
내성 장의 고등어가 다시 경북 내륙 일대로 분산되었던 것이다.
그 내성의 어느 장날에 옷도 더럽게 입고 약간 미친 듯한 남자 하나가
동물 그림을 그려놓은 깃발을 들고 외치고 있었다.
용, 호랑이, 거북이 그림을 들고 ‘용은 만 냥, 호랑이는 오천 냥,
거북이 삼천 냥’이라고 호객을 하였다.
다른 사람은 ‘웬 미친놈이야’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봉화 바래미(해저) 마을에 살았던 팔오헌(八吾軒) 김성구(1641~1707)는
그 얼빠진 남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내가 사 줄게’.
뭔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사랑채에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그 미친(?) 사람과 바둑을 두어보니 팔오헌이 3판을 내리 졌다.
팔오헌도 바둑 실력이 만만치 않았는데 말이다.
알고보니 그 남자는 금강산에서 도를 닦다가 내려온 장두병이었다.
유점사에서 도가 높은 고승 밑에서 시중을 들다가
스님이 한 달 정도 평양에 출타한 사이에
‘명당이 어디에 있는가를 적어 놓은’ 풍수의 비급을 몰래 훔쳐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쫓겨났고 동해안 일대의 장날을 떠돌며 명당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장두병이 사랑채에 누워서 침을 뱉으면
그 침이 대들보에까지 튀어서 붙을 만큼 내공이 있었다.
그 장두병이 잡아준 명당 자리가
영주의 평은 마을에 있는 장사추와(長蛇追蛙) 묫자리이다.
긴 뱀이 개구리를 추적한다는 뜻이다.
이런 명당 터를 보고 다녀야 사는 재미가 있다.
포인트는 개구리가 어떻게 생겼는가, 큰가 작은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영지산에서 갈라진 지맥이 1㎞쯤의 길이로 내려오면서 큰 뱀의 형상을 만들었고,
그 뱀의 대가리 위에다가 팔오헌의 묘를 썼다.
뱀 주둥이 앞에 자그마한 동산이 있다.
개구리이다.
개구리 너머 안산(案山)도 잘생긴 밥상처럼 보인다.
‘장사추와’를 쓰고 나서
바래미가 발복했다고 이 집안 사람들은 생각한다.
‘팔오헌’의 팔오(八吾)는
내 밭을 갈고(耕吾田), 내 샘물을 마시며(飮吾泉),
내 산에서 나물을 캐고(採吾巓), 내 시내에서 낚시하며(釣吾川),
내 책을 펼치고(披吾編), 내 거문고를 뜯고(撫吾絃),
내 현묘함을 지키며(守吾玄), 내 생애를 마치리라(終吾年)이다.
팔오헌 선생이 살아 있었다면 참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sns에서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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