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풍수지리 현장답사(학봉, 백죽당)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3. 4. 24. 22:42

풍수지리 현장답사(학봉, 백죽당)을 다녀와서

 

1995년 인터넷앱인 DAUM이 설립되었던 4월 24일 10:00

한국음양지리학회 회원 27명이 경북 유림문화회관에 모여

와룡과 예안지역 현장답사를 떠나기로 하였다.

 

첫답사로 서지리에 있는

학봉(鶴峯 金誠一 1538~1593)선생 묘소를 찾았다. 

입구에 벼슬이 높은 사람의 일생과 업적을 기록하여 세우는 

신도비(1664 현종5)와 비각이 1593년 진주성에서 병사하신

학봉선생의 업적을 기리며 묘소를 지켜주고 있었으며

묘소옆에 묘의 주인공을 밝히기 위해 세우는 묘방석으로

무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팔때 나온 큰바위를 그대로 이용해

윗부분에 '明朝鮮鶴峯金先生士純之墓'란 큰글씨로 새겨져 있고

아래에 작을글씨로  일생과 업적이 새겨져 있었다.

 

강사님은 묘소를 돌아보시고

청룡과 백호가 조금 약하나 주변의 산수와 조화롭게 자리하였고

묘소의 위치가 좌측으로 조금 더 틀어져 자리하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듣고 내려와

다음답사지인 백죽당 묘소를 찾아갔다.

 

국도 35호선에서 안동댐으로 서지천을 따라 내려가는 입구

철도굴다리를 지나기전 길게 뻗은 남근혈과 여근곡이 마주하고

그 사이를 서지천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도 볼수 있었다.

 

백죽당(栢竹堂 裵尙志 1351~1413)선생은

고려에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를 지내다가 국권이 흔들리게 되자

동지 70명과 두문동에서 칩거하다가 서후면 금계리에 칩거하며

불이지절(佛二之節)을 지켰고 외조부는 손홍량(孫洪亮)선생이며

아들 권(權 사헌부지평), 환(桓 관찰사), 남(楠 사헌부감찰),

강(杠 이조정랑)을 지냈다고 한다.

 

백죽당선생의 묘소는

절골마을 뒷편 폐선된 철로에 올라서니

재사가 보였고 재사에서 우측능선으로 한참을 오르니 

묘소앞에는 혼유석이나 향로석이 없는 커다한 판석(상석)이 있고

전면에는 긴 판석으로 둘러지고 뒷부분은 둥글게 정리한

고려말 묘제형식(下方上圓)으로 조성되어 있었으며

묘소앞에는

오랜세월을 거쳐 훼손된 '有明永樂十二年甲午正月二十二日丁酉

通訓大夫判司僕寺事興海裵公尙志之墓'라 쓰여진 오래된 묘비와

근래에 세워진 묘비가 함께 서 있었다.

 

강사님은 

고려시대 묘지의 특성과 천원지방의 사상에 대한 설명을 하고

혈(穴)을 보호하는 사(砂)가 불확실하고 맥이 음양이 혼잡하며

이곳의 혈처만 보고서는 후손의 영화를 판단하기 힘들고

문중의 다른 산소들을 함께 보아야 자손들의 길흉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 옛날에 큰 석물들을 어떻게 옮겼을지를 생각하며

묘소를 내려오니 재사옆에는  여막살이를 하면서

아버지를 기리는 효사암(孝思庵)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35번 국도와 지방도를 달려 주진교건너

예안 정산리 세명식육식당에서 삼겹살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나니 

매주 강의에 열심히 참석하시는 이재남 회원님이

본인의 집앞에 오디주, 매실주, 소주, 찰떡, 사과, 딸기 등

한상을 차려놓고 회원님들을 불러서

회원들이 한잔씩을 나누고 역동선생산소를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