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실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귀함,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

오토산 2023. 7. 7. 05:57
● 불원재 유교문화 해설 (119)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귀함,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
 
○ 퇴계선생은 1547(丁未)년 팔월 홍문관 응교로 소명을 받았다.
서울에 올라가서 “가을에 소명을 받은 뒤 부임하며 (秋赴召後)”지은 시이다.
이 시에는 초나라 변화(卞和)가 임금에게 박옥(璞玉)을 바쳤으나
오히려 쓸모없는 돌멩이를 옥이라고 속인죄로 두 번이나 발꿈치를 베이는 형을 당하였다.
그 후에 세 번째로 문왕이 세공인에게 명하여 그 원석을 다듬게 하니
천하에 둘도 없는 ‘화씨의 벽(璧)’이라는 보옥이 되었고 변화는 양릉후(陽陵侯)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 후 이 화씨벽이 조나라에서 진나라로 건너가 천하를 통일한 진시왕의 옥새로 만들어져
이사의 전자로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새겨진 나라를 전하는 징표인 전국옥새(傳國玉璽)가 된다.
그러나 진나라도 오래지 못하고 망하고 400년후 후한 말기 군웅할거시대에 후한이 망하고
궁녀가 옥새를 안고 우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자 장사태수 손견이 우물에서 시신을 건져 올려
옥새는 손견의 손에 들어가게 되자 손견은 회군하여 야심을 품게 된다.
 
당시 북중국에 최대 세력으로서 군림했던 군벌인 원소가 이 소문을 듣고 손견을 제지하자
“만약 그 보물을 숨겼다면 칼과 화살을 맞고 좋지 않게 죽을 것이다!”고 맹세한 채 돌아가서
그 후 손견은 ‘유표와 전투를 벌여 온몸에 돌과 화살을 맞고 머리가 터져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천하를 주고 받는 옥새의 보물과 달빛도 삼키는 있다가도 없어지는 벽사호에 잠긴 구슬인들 무엇이 보배로운가!
 
"형산의 귀한 옥돌을 파내어 나라를 주고 받는 옥새를 만들더라도 오히려 자연을 훼손할 뿐이요,
세상의 기이한 재주로 천하의 보물을 만들더라도
하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갓난 아기의 신비로움을 만들수가 있겠는가!"에서
퇴계는 "고의" 시에서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귀함을 설파하면서 명리에 초연함을 말하고 있다.
 
고의(古意) /가을에 임금의 부름에 나아간 후
溫溫荊山玉 淑氣含精英/온온형산옥 숙기함정영/
부드럽고 따사로운 형산의 옥이 맑은기운 머금어 깨끗하고 광채나네
夜夜虹貫巖 山鬼自遁驚/야야홍관암 산귀자둔경/
밤마다 채색무지개 바위틈을 꿰뚫으니 산속에 숨은마귀 놀라서 달아나네
抱哭何氏子 三獻不避刑/포곡하씨자 삼헌불피형/
옥을 안고 우는 이 누구집 아들인가 세차례 드렸으나 형벌 면치 못하였고
斲爲萬乘器 雄誇價連城/착위만승기 웅과가연성/ 다듬고 새겨 천자의 옥새 만드니 높은 가치 과시하여
연이은 고을과 바꾸자고 하네
在此衒國寶 在彼虧天成/재차현국보 재피휴천성/
이쪽에선 국보라 자랑하지만 저쪽에선 하늘이 만든 보물이 이지러졌네
君看甓社珠 光彩奪月明/군간벽사주 광채탈월명/
그대는 보았는가 벽사호에 잠긴구슬 그 찬란한 광채가 달 빛을 빼앗았네
出入有無間 世巧焉得嬰/출입유무간 세교언득영/
유.무간을 출입하니 세속의 기교가 어찌 갓난아이를 얻을 수가 있을까
 
○전국옥새(傳國玉璽) :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고사(古事)로
초(楚)나라 변화씨(卞和氏)가 형산(荊山)에서 나는 옥돌 원석을 초 여왕(厲王)에게 바쳤으나
보잘 것 없는 돌멩이로 감정되어 왕을 속인 죄로 왼쪽 발꿈치를 잘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다시 그 옥돌을 바쳤으나
역시 못 쓸 돌로 감정되어 이번에는 오른쪽 발꿈치를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무왕도 죽고 문왕이 즉위 하자 화씨는 그 옥돌을 끌어안고 뒤뚱거리며
궁궐 문 앞에서 나아가 사흘 낮 밤을 통곡하니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그 소문을 들은 문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저는 양 발뒤꿈치가 잘리는 형을 당한 것이 슬퍼서 이러는 게 아니라
이 귀한 보옥을 돌이라 하고 저를 미쳤다 하니 그게 슬퍼서 이러는 것입니다.”
문왕이 세공인에게 명하여 그 원석을 다듬게 하니 거친 그 돌이 천하에 둘도 없는 보옥이 되니
마침내 그것을 ‘화씨의 벽(璧)’이라 이름하였다.
 
이 ‘화씨지벽’은 그 후에 어쩌다 조(趙)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탐이나서 승상 위염(魏冉)을 불러 화씨벽을 손에 넣을 궁리를 하니
"열다섯 개의 성과 화씨의 벽을 바꾸자고 하면 조왕(趙王)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그 옥을 보내올 것입니다.
그러면 왕께서는 옥(玉)만 받아두고 땅은 주지 마십시오.
조왕이 속은 것을 알겠지만, 감히 우리 땅을 침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자
사신을 보내 화씨벽과 진나라 15개성을 바꾸자고 미끼를 던진다.
 
세력에 밀리는 조나라는 울며 겨자먹기로 인상여(藺相如)로 하여금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로 보내지게 된다.
화씨벽이 소양왕 손에 들어가자 약속한 15개성은 잊은 듯 언급하지 않고 품에 넣으려 하자 인상여는 속은 것을 알고
‘화씨벽에 흠결이 있으니 잠간 자신에게 건네주면 말해 주겠노라’하자,
소양왕이 화씨벽을 건네주자,
인상여는 잽싸게 기둥뒤로 달려가 ‘만약 내 손에서 이 것을 빼앗으려 한다면
내 머리와 이 보물은 기둥에 던져저 박살이 나고 말 것이라’는 인상여의 목숨을 건 기지로
화씨벽은 다시 조나라로 되돌아 오게 되는데 이로서 완벽(完璧)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 후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진시황은 화씨벽을 다시 갈고 닦아
황제가 사용하는 옥새(玉璽)를 만들도록 하고 승상 이사(李斯)를 시켜 전문(篆文) 여덟자를 새기게 하니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으로
‘하늘의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이 영원이 창성하리’란 뜻이지만
진나라 국운은 2대 15년을 넘기지 못하고 멸망하게 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후한말 군웅할거시대에 북중국에 최대 세력으로서 군림했던 군벌인
원소와 장사태수 손견(長沙太守 孫堅)은 잿더미가 되어 버린 낙양성 내에 진을 치고
동탁을 공격할 기회를 다시 노리고 있었다.
 
손견은 궁중의 불을 끈 뒤에 건장전(建章殿) 자리에 장막을 치고
종묘(宗廟)가 있던 자리에는 조그만 전각(殿閣)을 짓게 하고 한나라 선왕들의 위패(位牌)를 모시도록 하였다.
그렇게 한 뒤,
제후들과 함께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나니 날은 이미 저물었다.
손견은 고개를 들어 잿더미가 되어버린 궁전을 천천히 둘러보며 쓸쓸한 감회에 젖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호화롭던 궁전이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렸으니,
영화롭던 한 시절의 종말을 보는 것 같아 손견의 감회는 어느덧 입에서는 탄식이 되어 저절로 흘러 나왔다.
 
"아아,
낙양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백성들은 뿔뿔히 흩어져 도탄에 빠져버렸으니,
장차 이 나라를 어찌했으면 좋단 말인가!"
마침 그때 손견의 군사 하나가 남쪽을 가르키며,
 
"장군님!
저 우물 속에서 이상한 광채가 나오고 있는데 그게 무엇일까요?" 하고 물었다.
 
손견이 그와 함께 우물에 가서 그 속을 들여다 보니 과연 우물 속에서는 오색 광채가 이상하게도 번쩍거리는 것이었다.
"음~ 저게 무얼까? 횃불을 밝혀서 우물속을 조사해 보라!"
 
군사들이 횃불을 들고 와서 우물 속을 살펴보니 우물 속에 궁녀의 시체가 하나 떠 있었는데
그 궁녀의 목에 걸린 비단 주머니에서는 이상한 광채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물 속으로 들어간 병사가 꺼내온 비단 주머니를 풀어 보니
그 속에는 주홍빛 상자가 들어 있었고 그 상자 속에서 천자의 옥새(玉璽)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옥새에는, 수명우천(受命于天) 기수영창(旣壽永昌)이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손견은 고사(故事)에 지식이 풍부한 정보(程普)에게 "이 글은 무엇을 뜻하는가?" 물었다.
 
정보는
"이 옥새로 말하면 사백여 년전인 진시황(秦始皇)때 만든 것이온데,
이사(李斯)라는 사람이 전문 여덟 자를 새긴 것이옵니다.
그런데 진시황 이십팔년에 진시황이 동정호(洞庭湖)를 건너다가 심한 풍랑을 만나 이 옥새를 물에 던졌더니
풍랑이 잦아들어서 호수를 무사히 건넜다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이후로는 누구든지 이 옥새를 손에 넣는 사람은 반드시 나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이 옥새를 전국옥새(傳國玉璽)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날 주공께서 이 옥새를 손에 넣게 되신 것은 이만저만한 경사가 아니오니
주공께서는 여기 이러고 계실 것이 아니라 곧 강동(江東)으로 회군하셔서
큰 일을 도모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하면서 옥새를 손견에게 전하였다.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는 손견장군이 낙양으로 진격했는데 전국새를 취하자 역심을 품고 장사로 돌아가려 하자,
원소가 옥새를 건졌다는 소문을 듣고 손견을 추궁하자
“만약 그 보물을 숨겼다면 칼과 화살을 맞고 좋지 않게 죽을 것이다!”고 맹세한 채 돌아간다.
 
그 후 손견은 유표와 전투를 벌여 거세게 밀어 붙이지만
여공의 유인에 걸려 온몸에 돌과 화살을 맞고 머리가 터져 죽음을 맞게 된다.
 
○벽사호의 조개/ 1060년 가우년간에 송나라의 저명한 과학자인 심괄(沈括)의 기록에
"양주(楊州)에 하나의 조개가 아주 컸고, 하늘이 어두워지면 자주 보였다.
처음 보였을 때는 천장현의 파택못에 있었는데, 후에는 벽사호(甓社湖) 호수로 가고 다시 신개호 호수로 갔다
 10여년간 주민이나 행인들은 자주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내 친구의 서재가 호수위에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 조개가 매우 가까이 보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살짝 껍질을 여니 빛이 그 안에서 쏘아져 나왔는데 하나의 황금색 선과 같았다.
껍질을 여니 그 크기는 방석 절반만하고, 껍질안에는 은빛의 흰 빛이 있었으며 주먹만한 구슬도 있었다.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였는데, 십여리의 숲에 있는 나무는 전부 그림자가 보였고,
마치 햇살이 비치는 것과 같았다.
 
먼 곳으로 하늘이 마치 들불이 붙은 것처럼 붉어졌고, 갑자기 멀리 사라졌다.
그 모습은 날으는 것같았고, 파도위에 떠 있었고, 마치 태양이 떠 있는 것과 같았다.
예로부터 밝은 달을 구슬에 비유하기는 하지만, 이 구슬색은 달과는 달랐으며 형형하고 불꽃을 내고 있었으며
오히려 태양빛에 가까웠다.
 
최백훈은 일찌기 "명주부(明珠賦)"를 지었는데, 백훈은 고우(高郵) 사람이다.
예전에는 항상 보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다시 나타나지 않으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겟다고 한다.
번량진(樊良鎭)은 바로 구슬이 왔다갔다 하던 곳이다.
행인들은 여기에서 왕왕 배를 멈추고 나타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 정자를 "완주(玩珠)"라고 지었다." 이 일은 <<몽계필담(夢溪筆談)>>에 보인다.
이 사건을 기재한 송나라의 심괄은 과학자로서 그에게 이야기해준 사람은 그의 친한 친구이고,
그 친구는 조개가 있는 호숫가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므로 절대 허위로 꾸며낸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기록상으로 보면 이 빛을 내면서 날아다니는 구슬은 비행접시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