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실

묘지(墓誌)와 묘지명(墓誌銘) 강의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3. 7. 18. 19:46

묘지(墓誌)와 묘지명(墓誌銘) 강의를 다녀와서

 

1904년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이 창간되었던 7월 18일

16:00 사)전례문화보존회에서 진행하는 시민강좌로

'묘지(墓誌)와 묘지명(墓誌銘) '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남시화 회장님은 강사소개를 하시며

 지상에 설치되어 있는 묘비나 묘갈명은 흔히 볼 수 있으나

무덤 속의 묘지(墓誌)와 묘지명(墓誌銘)은 보기가 힘들며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강의를 준비하였으니

열심히 들어 달라며 정재구 강사님을 소개하였다.

 

정재구 강사님은 

 우리의 장례문화가 급격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으나

선인들의 묘지나 묘지명을 한번 읽어 보면서 만약 우리가

나의 묘지명을 쓴다며 어떻게 쓰여질까 생각하여 보자며

통덕랑 정석귀 선생의 묘지명을 읽으며 강의를 시작하였다.

 

묘지(墓誌)는

죽은사람의 이름, 신분, 생전의 행적, 나고 죽은 때를 적어

무덤옆에 묻거나 관에 새기는 것으로 약 2천년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조상에 대한 효의 실천, 죽은이에 대한 존경과 영원한 안식기원, 

지상에 설치되어 있는 비석 등 묘주의  표식이 없어지더라도

묘주의 신분을 확인 할 수있게 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고 전하고

묘주의 칭송, 찬양, 추념, 감회, 추모 등을 담은 싯구인 운문(韻文)

명(銘)을 함께 적기도 하였다.

 

시대별로

고구려시대는 가장오래된 동수묘지(357년) 등이 벽에 묵서로 기록되었고

백제시대에는 무령왕 부부의 묘지(525, 529년)의 기록이 발견되고 있으며

신라시대에는 순흥 어숙지술간묘, 경주 배치송묘(895) 등이 전해지고 있고

고려시대는 판형과 묘비형으로 신선, 십이지, 연꽃, 구름문양이 새겨진

오석이나 점판암으로 된 묘지(墓誌)가 현재 325점이 전한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책판, 묘비, 원통, 사발, 접시, 벼루, 함, 필통, 제기 등

다양한 모양의 도자제묘지, 석판형묘지 등이 발견되고 있으며

임진왜란 이전에는 양반신분에 있었던 사람들의 묘지만 보여지고

임진왜란이후 중인, 상인, 서민의 묘지도 보여지고 있다고 한다.

 

묘지문에는

묘주의 직함이나 신분, 산문으로된 서(序)와

운문으로 된  명(銘)으로 기재되었으며

명은 대부분 4자로 구성되어 있으나 3자, 5자, 7자 등

예외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한글벽돌묘지도 볼 수 있었고

묘지(墓地) 인근을 그림으로 그려서

산맥과 좌향 등을 함께 표시하였던 묘지(墓誌)도 있었다.

 

묘지의 기록에는 찬자(撰者)와 서자(書者)가 있었고

서체는 해서가 기본이었으나 초서로 쓰여진 경우도 있었으며

묘지와 유사한 탑지(塔誌)와 태를 묻은 태지(胎誌)도 있었다고 한다.

 

정재구 강사님은 시대별 묘지의 기록과 형태,

묘지(墓誌)를 통하여 본 그 시대의 시대상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묘지문 몇 편을 읽으며 설명을 하시면서 강의를 마쳤다.

 

오늘은 묘지(墓誌)와 묘지명(墓誌銘)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보람있는 시간을 보내었다.

 

 열강을 하여주신 정재구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

우중에도 함께하신 모든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