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경대학에서 강진 영랑생가를 다녀와서
1968년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이 만들어졌던 11월 21일 07:00
거경대학 수강생들이 강진과 해남으로 수학여행을 떠나서
동명휴게소, 문산휴게소, 보성녹차휴게소에서 휴식하면서
서울의 정남진이라는 장흥을 거쳐서 강진에 도착하여
12:20 케이스테이호텔 향기식당에서 뷔폐로 점심을 먹고
13:40 첫번째 답사지인 영랑생가를 찾았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담쟁이 넝쿨이 돌담을 덮고 있는 돌담길을 걸어 생가를 찾으니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고목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 1903~1950)선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정시인이자 독립운동을 하였던 민족지사로
부친 김종호와 모친 김경무 사이 2남3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휘문의숙에 진학하였다가
3.1운동이 일어나자 구두밑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겨서 강진에 내려와
독립운동을 하려다가 체포되어 대구교도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에 수학하며 박용철과 교우하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돌아와 제헌국회의원도 출마하였고
시(詩)창작에 몰두하였다.
1930년 3월 박용철과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과 함께 당대에 풍미했던 프로문학과
낭만주의 문예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이 땅에 순수문학을 뿌리내리게 한 모태인 「시문학」을 창립하여
문학활동을 하면서 '모란이 피기까지'.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내마음 고요히 고흔봄길우에' 등
많은 시를 남겼으며
1935년 '영랑시집', 1949년 '영랑시선' 시집을 발간하였고
해방이 될때까지 창시개명과 신사참배, 삭발령을 거부한 채
한국전쟁때 부상을 당하여 1950년 9월 47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고
2008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고 한다.
영랑생가에는 초가지붕으로 지어진 건물이 세 채가 있었고
은행나무 고목이 노랗게 물들어 시인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었으며
집안 곳곳에는 시인의 마음을 전하는 시비들이 지키고 있었고
생가 뒷편 싸릿문을 지나 싸리울타리가 쳐진 계단을 오르니
대나무 숲속으로 조성된 산책로도 있었으며
뒷편언덕에 있는 세계모란공원에는 모란꽃 모형과
영랑폭포, 우물터 등이 조성되어 있었다.
생가옆에는 시문학파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전시관에는 시문학파의 유래와 활동상황이 전시되어 있었고
역대 영랑시문학상 수상자 현황도 볼 수 있었다.
전시실입구 벽면에 적혀진 詩를 보면서
일부회원들이 시낭송을 하였는데 수준급이었다.
전시관 광장에는 9인의 시문학파작가들의 초상들과
창립을 주도한 영랑 김윤식, 정지용, 박용철 동상과
시문학지 조형물들을 구경하고 나와서
건너편 상점에서 아름다운 도자기들을 구경하고
전시관을 나왔다.
우리는 영랑생가를 돌아보며 같은시대를 살아가시며
나라 잃은 슬픔을 詩로 읊으며 나라를 찾기위해 독립운동을 하신
안동의 이육사선생을 떠 올리며 그 분들의 피맺힌 노력으로 찾으신
이 나라를 우리가 길이길이 보전할 사명감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영랑생가 답사를 마치고 백련사로 가는 버스에서
권오추 강사님은 시 낭송을 할 때는 행과 행 사이에 한 박자를 쉬고
연과 연 사이에 두 박자를 쉬면서 시인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낭송하다보면 누구나 잘 할 수있다는 팁을 알려 주시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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