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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아카데미에서 대구간송미술관을 다녀와서(2)

오토산 2024. 11. 18. 10:32

이육사아카데미에서 대구간송미술관을 다녀와서(2)

 

대구간송미술관 1층전시실을 구경하고

지하층으로 내려갔더니 전면의 수공간에 비치는 반영이 아름다웠다.

 

간송(澗松) 전형필(全螢弼 1906. 7. 29~1962. 1. 26)선생은

중추원 의관 전영기와 밀양박씨 사이의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여의도공립보통학교(현 효제초등)와 휘문고등보통학교(현 휘문고)를 졸업하고

1930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귀국후

위창(爲창 오세창(吳世昌1854~1953)선생과 교유하며 물려받은 재력을 바탕으로

문화보국(文化保國)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회화, 서예, 전적, 도자 등을 수집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건립하여

1940년 간송민족교육을 위한 발걸음으로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1971년 보화각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삼불 김원룡(金元龍 1922~1993)에게 써 준 삼불암(三佛庵) 편액에는

자이열재(自怡悅齋)와 길상지재(吉上之齋), 화개만국춘(花開萬國春)이란

인장이 찍혀 있었고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1916~1984)에게 써 준 서재현액(亞樂書室)에는

을미년 가을 나의 친구 혜곡이 꿈속에서 얻은 구절이다

(乙未秋 吾友兮谷夢中得此句 澗松)라 적고 있었다.

 

서예, 도자, 불교미술이 전시된 4전시실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걸친 불교미술과 도자기, 서예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제글씨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칠십년동안 벼루 10개를 밑창을 냈고

붓 천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습니다'라는 어록에서

추사 김정희선생의 겸양을 느낄수 있었고

유배시절 추사선생을 보살피며 따랐던 문인 유정현의 호( (梣溪)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나라 예서에 '침 (梣)' 자가 없기 때문에

30년간 고민하다가 해서 · 예서를 합한 서체로 써 주었다는 작품과

추사 선생의 유일한 묵란화첩인 남맹첩(蘭盟帖)도 볼 수있었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삼감청자포도문매병,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청자상감국모란당초문모자합, 분청사기박지철재연화문병 등

아름다운 도자기들에서 선조들의 숨결을 느꼈고

금동연가7연명여래입상과 영강7년명주형관배.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

금동선묘행삼존불 등 불교미술품들을 구경하면서

고귀한 우리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실감영상 '흐름'전시실에서

반원형의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된 디지탈영상실에

하늘을 떠도는 구름처럼, 바다에 파도처름 흘러가는 영상속에서

여러 미술품들이 펼쳐지는 영상을 구경하면서

우리문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신 간송 전형필선생님과

대구에서 관람이 가능하게 하게 하여주신 간송미술관에 감사를 드리며

우리는 인근에 있는 대구미술관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