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안동의 역사

오토산 2012. 5. 16. 02:05

 

 

안동의 역사 흐름

 

 

 

 고려 공민왕 친필

 

 안동본부(安東本府) 지도 - 永嘉誌 참조

 

 

 안동시내 모습(1960년)

 

 안동시내 모습(2009년)

 

 

 안동시청 전경

 

 

 

 

 

 

 

 안동대표축제 하회탈춤놀이 장면

 

년도 내용
신라 혁거세 원년 (BC57)
  • 염상도사(念尙道士)가 창녕국(昌寧國)을 세우다. (창녕국과 함께 구영국 (驅令國), 소라국(召羅國)도 지금의 안동땅으로 초기 신라의 속국이었다)

삼국시대(경덕왕)
  • 신라의 고타야군(古陀耶郡)이었다.

  • 고창군(古昌郡)으로 고치다.

고려시대(태조)삼국시대
  • 태조 13년(신라 경순왕 4년, 서기 930년) 이곳 병산에서 태조왕건과 후백제 의 견훤 싸움에서 이 고을 성주 김선평(金宣平)과 고을 인물 권행(본래 김씨) , 장길(일명 정필)등이 왕건을 도와 크게 공을 세움으로써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켰다.

  • 그후(其後) 영가군(永嘉郡)으로 고치다.

성종 14년 (995)
  • 길주(吉州)로 고쳐 칙사(勅史)를 두다(행정구역개편)

현종 3년(1012)
  • 안무사(安撫史)를 두었다가 동9년(1018년) 지길주사(知吉州使)로 고치고 동 21년 다시 안동부(安東府)로 하였다.

명종 27년(1197)
  • 김사미(南賊 영가지에는 김삼), 효심(孝心) 등이 주(州), 군(郡)을 약탈하매 부(府)에서 이를 평정하는데 유공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

신종 7년 (1204)
  • 동경(東京) 야별초(野別抄) 패좌(悖佐) 등의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켜 부에서 이를 평정함에 유공하여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

충렬왕 34년(1308)
  • 복주목(福州牧)으로 고쳐 목사(牧使)를 두었다.

공민왕 10년(1361)
  •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 난리에 王이 이곳까지 피난할 당시 고을 사람들이 정성껏 받들어 다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승격

우왕 9년 (1383)
  • 안동도로 고쳐 원사 겸 부사를 두었다가 동 14년(1388) 부사로 환원하였다.

조선(세조)
  • 진을(鎭) 두고 부사(府使)로 兵馬節度副使(병마절도부사)를 겸하게 했다가 얼마안가서 부사는 폐지했다.

선조 9년 (1576)
  • 부(府) 관내에 패륜아가 그 어머니를 죽인 변이 있어 현(縣)으로 격하되었다.

선조 14년 (1581)
  • 고장 사람들의 상소로 다시 부로(府) 회복됨.

영조 52년 (1776)
  • 도현(道縣)의 역변(逆變)으로 다시 현(縣)으로 격하

정조 9년 (1785)
  • 다시 부(府)로 회복됨

고종 32년 (1895)
  • 동년 5월 26일 지방제도를 개정(칙령 제98호) 팔도를 폐하고 전국을 23관찰부로 고치면서 안동에 관찰부를 두고 경상도 동북부 17개군을 관할토록 하였다.

건양 원년 (1896)
  • 양력 8월 4일 23 관찰부를 폐하고 13도로 개편하게 됨으로써 안동관찰부는 만 1년 1개월만에 폐지되고 안동군으로 고쳐짐과 함께 감천면은 예천군에, 내성면·춘양면·소천면·재산면은 봉화군에 각각 편입되었다.

1914.03.01
  • 예안군을 병합하여 19개면으로 편성

1931.04.01
  • 안동면을 안동읍으로 승격시킴과 동시 일부면을 통폐합함으로써 1읍 15개면 218개동으로 개편되었다.

1963.01.01
  • 안동읍이 시로 승격

1973.07.01
  • 풍산면이 읍으로 승격

1974.07.01
  • 안동댐 건설로 월곡면 폐지

1983.02.15
  • 행정구역개편으로 와룡면, 남후면, 남선면, 임하면 일부가 안동시로 편입 (서지1·2리, 수상1·2리, 수하1·2리, 정상리, 정하1·2리, 송천1·2·3리)

1987.01.01
  • 행정구역개편으로 풍산읍 단호1·2리가 남후면 단호1·2로 편입. 와룡면 서현2리가 북후면 대현리로 편입

1991.04.15
  • 임동면 지례출장소 폐지

1993.11.06
  • 임하댐 건설로 인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하면 사의 1·2리 폐지, 임동면 지례 1·2리, 수곡 2리 폐지

1995.01.01
  • 안동시와 안동군을 통합, 안동시로 발족(1읍 13면 18동 3출장소)

1997.07.01
  • 행정동 통합(1읍 13면 13동 3출장소)

  • 중구동(화성동 제외)과 동남동을 중구동, 명륜동과 안막동을 명륜동, 옥률동과 신흥동을 동구동, 대흥동·대신동·당북동을 서구동으로 통합

  • 중구동의 법정동인 화성동을 법상동, 안기동의 법정동인 운안동을 평화동으로 편입

1998.12.01
  • 행정동 통합(1읍 13면 10동 3출장소)

  • 행정동 통합(1읍 13면 10동 3출장소)

  • 중구, 동구동을 중구동으로 통합

  • 용성, 송천동을 용상동으로 통합

  • 서구, 강남동을 서구동으로 통합

2005.09.01
  • 행정동 통합(1읍 13면 10동 3출장소)

  • 법상동의 법정동인 법상동ㆍ금곡동ㆍ화성동을 서구동으로 통합하고 법상동폐지

  • 서구동의 법정동인 정상동ㆍ정하동ㆍ수상동ㆍ수하동을 옛 강남동으로 신설

2008.09.29
  • 출장소 폐지(1읍 13면 10동 3출장소 -> 1읍 13면 10동)

  • 풍천면 어담출장소, 예안면 삼계출장소, 도산면 서부출장소 폐지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우리 안동은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이미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안동은 삼한시대에는 진한에 속하였으며 삼국사(三國史)에 의하면 B.C 57년 염상도사(念尙道士)가 길지(吉地)를 찾아 이곳에 와 처음으로 창녕국(昌寧國)이라는 부족국가를 세웠다고 전한다.

 

신라때는 고타야군(古陀耶郡)으로 되었다가 고구려에 인접한 관계로 한때는 고구려에 속하여 굴화현(屈火縣)으로 불리었으며 진흥왕때 부터는 계속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

 

경덕왕(757년)때 군현제도(郡縣制度)의 개혁으로 고창군(古昌郡)으로 개칭되었다가 그 후 일계군(一界郡), 지평군(地平郡), 화산군(花山郡), 고령군(古寧郡), 고장군(古藏郡), 석릉군(石陵郡) 등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기도 했다.

 

고려 건국초 태조 왕건(王建)과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군내(郡內) 병산(甁山)에서 싸울 때 고을 성주인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 권행(權幸)이 고을민을 이끌고 태조를 도와 그 공이 컸으므로 부(府)로 승격하고 안동으로 고쳤다(태조 13년:930년). 그 후 영가군(永嘉郡)으로 고쳤다가 성종 14년(995년)에 길주(吉州)로 하였다가 현종 3년(1012년) 안무사를 두었다가 동 21년(1030년)에 다시 안동부(安東府)로 하였다.

 

 

 

 

명종 27년(1197년)에 남적(南賊) 김삼(金三) 효심(孝心) 등이 주군(州郡)을 겁탈 노략하니 차사(差使)를 보내어 평정하였는데 부(府)가 공이 있다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고, 신종 7년(1204년) 동경(東京:경주)의 야별초 (夜別抄) 패좌(悖佐) 등의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자 이번에도 이를 진압 하는데 공이 있었음으로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하였다.

 

충렬왕 34년(1308년) 다시 복주목(福州牧)으로 고쳤다가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왕이 남쪽으로 행차하여 이 고장에 머무를 때 고을백성이 충성을 다해 왕을 봉공하였으므로 다시 대도호부로 승격하고 인근 17개 군현(郡縣)을 관할하게 했다.

 

우왕 9년(1383년)에는 안동도(安東道)로 개칭하고 원수(元帥)겸 부사(府使)를 두었다가 동 14년(1388년)부사제(府使制)로 환원하였다.

 

914년 예안군(禮安郡)을 병합 19개 면으로 편성하고, 1931년에는 안동면을 안동읍으로 승격시킴과 동시 일부 면을 통·폐합함으로써 1읍 15면 218동으로 개편되었다.

 

1962년에 안동읍을 그대로 시(市)로 승격하여 명칭을 신안동시(新安東市)라고 하였으나 시명(市名)에 대한 시민들의 의사에 따라 개칭하여 1963년 1월 1일을 기하여 안동시(安東市)가 되었다.

 

1973년에 풍산면(豊山面)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74년에 안동댐으로 월곡면(月谷面)이 폐지되었다.

 

1995년에 안동시(安東市)와 안동군(安東郡)이 통합하여 통합안동시(統合安東市)가 되어 1읍 13면 18동으로 되었고,

 

행정구역통·폐합에 따라 1997. 7. 1에 5개 동이 폐지되어 1읍 13면 13동으로 되었고

 

1998. 12. 1에 2차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3개 동이 폐지되어 1읍 13면 10동으로 되어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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