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의 전설
백록의 전설 / 김태운
창공에 휘영청 달 밝은 밤이 되면
하늘아래 홀로 묵묵히 중심을 지키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한라의 정상頂上이 보인다
대부분 명산의 정상에는 영봉의 이름이 있다는데
유독 한라산만큼은 찾아볼 도리가 없다. 하여,
꼭대기임을 자처하는 백록담의 전설을 더듬기로 했다
정상의 중심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있고,
금 새 삭아버릴 듯, 목마름을 구걸하려는 듯,
*설문대할망이 벗어던진 너덜너덜한 치마폭의 행색만이
지금은 주인을 잃고 초라하게 널브러져 있다
할망은 그 치마로 흙을 담아와 탐라를 만들고
그 위에 다시 흙을 일곱 번 떠놓아 한라산을 만들었다
한라산을 만들고 보니 봉우리가 너무 뾰족해서
그 부분을 움켜쥐어 쑥 뽑아 멀리 던지니
아랫부분은 움푹 패어 백록담이 되고
윗부분은 분리되어 산방산이 되었단다
산방산의 크기가 봉우리를 캐낸 백록담과 같다니
사실이든, 전설이든 그럴듯한 이야기임엔 틀림이 없다
한라산 발밑에서 노는 하늘이 있고
허리엔 구름이 감기고, 머리위엔 달 둥둥 떠다닌다
그 달이 하늘중심에 이르면 백록담에 풍덩 몸담아
한참을 목욕하다 미련남기며 갈 길 재촉한다
옥황상제는 할망을 시켜 수컷 산방산에게 천벌을 내렸다
천제의 질투를 유발했음인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음인지,
평생을 외로이 한라산 발밑에서 홀아비로 살도록,
영원의 환희를 영원히 잊도록 영원한 유배를 보낸 것이다.
다만, 정상의 유희, 옛사랑을 잊지 못해 홀로 쓸쓸이 남아
달만을 품고, 그 목마름에 애를 태우는,
저기 저 꼭대기에서 영원을 수절하고 있는,
외로운 백록담만이 가여울 뿐이다.
우리들의 어머님을 자처하는 저 풍만한 한라산!
그 정상엔 세상의 시원始原이 있고,
아직도 어머니의 모태母胎가 자리하며,
영원히 마를듯 마르지 않는 그녀의 눈물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