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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팔풍(八風)
우리 인생이 춤추는 8가지 경계가 있다.
<선가귀감>에서는 이를 팔풍(八風)으로 말한다. 이(利), 쇠(衰),훼(毁),예(譽), 칭(稱), 기(譏), 고(苦), 락(樂)의 8가지인데, 이것 때문에 삶의 원칙이 흔들리고 지조가 무너지고 당초의 뜻이 꺾이고 시비판단이 흐려지면서 인생이 부침하게 된다. <선가귀감>에는 8풍에 대한 설명이 달리 없기에 필자가 나름으로 사족과 같은 이야기를 붙여보기로 하자. ★첫째, 이(利)와 쇠(衰)인데, 이(利)는 자신에 이익이 되는 것이고 쇠(衰)는 쇠망하는 것, 경제적으로 손실을 보거나 출세에 그늘이 지거나 또는 자기세력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익 앞에서는 시비 판단이 흔들리고 뜻이 변질되고 그렇게 인생이 춤을 춘다. 이익을 위해 그리고 쇠(衰)를 피하기 위해 의리를 버리고 불의와 타협한다. 말을 바꾸고 말과 행실이 달라진다. 그렇게 이익을 챙기면서 인생은 병들어 간다. 우리가 사는 게 그렇다. 재력을 잃고 궨세가 무너지는 것은 두렵고 그러나 양심이 무너지는 것은 두려운 줄 모른다. 또 양심이 죽는 순간 내가 죽는 줄 모른다. 그런 어리석음에서 인생이 춤을 춘다. 훼(毁)와 예(譽)인데, 훼(毁)는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가 훼손되는 것이고 예(譽)는 명예다. 우리는 명예욕 때문에 인생이 춤을 춘다. 당초에는, 길이면 가고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는 것이 삶의 원칙이었다.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 삶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명예욕에 눈이 팔리면, 남이 알아주면 가고 알아주지 않으면 가지 않는 것으로 그렇게 삶의 원칙이 변질되어 버린다. 자존심과 명예가 훼손(=毁)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가 망가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거짓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진실에 눈을 감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명예를 추구하는 인생이 역설적으로 비루한 인생이 되고 만다.
칭(稱)과 기(譏)인데, 칭(稱)은 남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칭송되는 것이다. 기(譏)는 남들에게 욕을 먹고 비난을 받는 것이다 . 세간의 칭찬과 비방이란 것이 믿을 것이 못된다. 옳은 일을 하고서도 욕을 먹을 수 있고 옳지 않은 일을 하고서도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 세간의 인심이란 게 그런 것이다. 가령 옳은 일을 해서 칭찬을 받는 것이야 좋은 일이다. 그러나 칭찬을 받기 위해서 하는 일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하기 보다는 칭찬을 받는 일을 찾아간다. 반면에 나쁜 일을 해서 비난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을 수 있고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남들로부터 비난과 비방을 받을까 두려워 자신의 올바른 뜻을 굽히고 의리를 버린다. 그렇게 인생은 자기 장단을 잃고 남의 장단에 춤을 춘다. 고(苦)와 락(樂)인데 고(苦)는 고생스러운 것이고 락(樂)은 즐거운 것이다. 물론 고통을 싫어하고 안락을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마땅히 해야 할 수고를 하지 않고, 응당 감내해야할 고생을 피하고자 한다면, 그런데서 안락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화근이 될 뿐이다.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다하는데서 구해질 수 있는 것이지 수고를 피하는데서 구해질 수 없다. 해야할 수고를 피하고 고생을 피하는데서 안락을 구한다는 것은 이미 도둑놈 심뽀다. 그러나 우리는 뿌린 이상으로 거둘 수 있다는 망상 속에 인생이 춤을 춘다. 다시 우리 스스로에 물어보자, 인생 팔풍(八風)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명리욕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만약 팔풍 속에 춤을 추고 있다면 그것은 삶의 원칙이 없다는 이야기이고 뜻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또 달리 말하면 삶의 주인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왜인가? 팔풍이 내 인생을 쥐고 흔들고 팔풍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나라는 인간은 팔풍의 종이기 때문이다. 내가 팔풍의 종이라면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 한들 인생(人生)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선가귀감>에서 8풍에 흔들리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인생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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