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절에 성묘하는 것은 이미 관례로 되어 있다. 청명은 최초 제사와 상관없이 봄날의 도래와 함께 만물이 무성해지고 기후가 따뜻해짐을 경축해 형성된 명절이었다. 이날부터 날씨가 점차 맑고(明) 공기가 청신(淸)해진다고 해서 청명이라 불렀다.
청명이 성묘와 연계된 것은 한식절(寒食节)때문이다. 한식은 고인이 세상을 떠난 사람을 그려 냉식만 먹고 가열된 음식은 피하는 것이다. 중국 한조시기 이전 한식절은 1달간씩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한식절 풍속은 각종 질병을 일으켰기에 한조때부터 한식절은 점차 하루로 줄여졌고 청명절 3일전으로 정해졌다. 당조때 이르러 두 명절은 하나의 명절로 합병되었고 성묘와 제사가 청명절의 주요내용으로 되었다.
옛베이징에서 성묘는 청명절 하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청명절 전후 10일내에 전부 가능하다. 또한 옛베이징 관념속에서 세상 뜬 사람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생명의 형태가 변화된것뿐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때문에 제사와 성묘하는 과정에서 주로 배려와 안부의 정서를 위주로 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슬픔과 애도의 마음을 표달하는 것과 큰 차이점이 있다.
청명절날 제사와 성묘하는 외 옛베이징의 청명절은 고대축구, 연띄우기, 답청(踏青, 봄나들이)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