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
조선시대 지리학자들은 조선 팔도의 풍수지리적 해석을 하면서, 땅이 인간의 심성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였다. 지리인성론(地理人性論)이 발달해 왔는데, 학자들 사이에 상당한 의견의 일치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그대로 수용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인구이동과 지역간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문화공간이 확산되면서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풍수지리설의 입장에서 참고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여송의 지리참모로 조선에 왔던 두사충(杜師忠)의 사위인 나학천은 중국 남경의 건주(建州) 출신으로 장인과 함께 조선에 귀화한 인물이다. 그는 조선 팔도의 형상을 인체와 동물에 각각 비유하여 팔도의 인물평을 하였다. 인체에 비유하면 머리(頭,두)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장어다 <우직지협(愚直知夾)> 인체에 비유하면 얼굴(面,면)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매다. <견강용예(堅剛勇銳)> 인체에 비유하면 손(手,수)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소다. <우준무실(愚蠢無實)> 인체에 비유하면 가슴(胸,흉)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범이다. <선용후유(先勇後柔)> 인체에 비유하면 갈빗대(脇,협)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꿩이다. <칩복지단(蟄伏知短)> 는 인체에 비유하면 배(腹,복)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까치다. <부경용호(浮輕勇豪)> 인체에 비유하면 다리(脚,각)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돼지우리다. <우순질신(愚順質信)> 인체에 비유하면 발(足,족)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원숭이다. <사교경예(詐巧輕藝)>
<택리지(擇里志) 복거총론(卜居總論), 인심(人心)편> 무엇으로서 인심을 말할 것인가? 공자께서 "마을의 풍속이 착하면 아름다운 것이 된다. 아름다운 곳을 가려서 살지 아니하면 어찌 지혜롭다 하리오." 하시었고, 옛날,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은 아들을 훌륭하게 가르치고자 함이었다. 그 착한 풍속을 가리지 않으면 비단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자손에게도 해가 있어서 반드시 좋지 못한 풍속이 스며들 우려가 있다. 그러니 살 곳을 가리는데, 그 땅의 세상 풍속을 보지 아니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팔도 가운데
▶평안도 인심은 순후(醇厚)하여서 제일이요, ▶질실(質實)한 경상도 풍속이다. 그러나 이는 서민을 두고 논한 것이요, 사대부의 풍속에 이르러서는 또한 그렇지 않다 .
진흙 속에 개들이 싸우는 격으로 강인한 의지와 인내력이 있다.
2) 평안도 사람은 맹호출림(猛虎出林)으로 사나운 호랑이가 숲 속에서 나오는 격으로 용맹하고 과단성이 있다.
3) 황해도 사람은 석전경우(石田耕牛)로 돌밭을 일구는 소와 같은 격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근면성이 있다.
4) 경기도 사람은 경중미인(鏡中美人)으로 거울 앞에 선 미인 격으로 이지적이고, 명예를 존중한다.
5) 강원도 사람은 암하노불(岩下老佛)로 바위 아래에 앉아 있는, 부처님 격으로 누가 알아 주든지 말든지 자기 할 일을 해 나간다 . 깨끗한 바람과 밝은 달 격으로 풍류를 즐기는 고상한 면이 있다.
크고 높고 험한 산 격으로 웅장하고 험악한 기개가 있다.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버들나무 가지 격으로 시대에 민감하게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경상도는 산수가 모두 취합하고 바람소리와 풍기(風氣)와 습관 또한 흩어지지 아니하며, 옛날 풍속이 그대로 지켜져 명현(名賢)이 배출되는 국내 최대의 길지(吉地)인 반면,
●전라도는 산수가 모두 산발체(散髮體)를 이루면서 흩어져 나가 국면(局面)을 이루지 못하므로, 그 지방에는 재주와 덕행이 드물고 인정도 고약하다 하였다. 전라도의 풍속이 노래와 여색, 부(富)함과 사치를 숭상하고 사람들이 흔히 영리하고 경박하며, 기교를 다하여 문학을 중요시하지 않는 까닭에 과제(科第)에 현달한 자는 경상도에 비해 떨어지나, 인걸은 지령인지라 역시 전라도에도 인재가 적지 아니하다 .
고봉 기대승은 광주인 이고, 일재 이항은 부안인 이고, 하서 김인후는 장성인 인데, 모두 도학(道學)으로써 이름이 있었다. 제봉 고경명과 건재 김천일은 다 광주인 인데, 모두 절의(節義)로 이름이 있고, 고산 윤선도는 해남인 이고, 묵재 이상형은 남원인으로 모두 문학(文學)으로서 이름이 있었다. 나주인과 광주인 인데 장수(將帥)로 이름이 있었고, 찬성 오겸도 광주인 이고, 의정 이상진은 전주인 인데 재상(宰相)으로 현달 하였다. 문장가(文章家)로서는 고부의 옥봉 백광훈과 영암의 고죽 최경창이 있고, 우거(寓居)로서는 부윤 신말주가 순창에 살았고, 이상 이계맹이 김제에 살았고, 판서 이후백이 해남에 살았고, 판서 임담이 무안에 살았다. 도사 남궁두가 함열인 이고, 청하 권극중은 고부인 인데, 또 한방술을 수련하여 유명하다. 이들은 모두 공명정대하고 사내답게 뛰어나 명성을 후세에 남긴 사람들이다.
|
'인문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라꽃 무궁화의 비밀 (0) | 2013.06.29 |
---|---|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0) | 2013.06.23 |
정철과 애첩 진옥의 이야기 (0) | 2013.04.08 |
철학자 나폴레옹과 새엄마 (0) | 2013.04.05 |
율곡과 두아들~~~ (0) | 2013.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