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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友會 새해맞이 윷놀이
어질게 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인우회에서
용상참숯구이식당에서 바다고기인지 육지고기인지 알수없는
갈매기살로 맛있게 저녁을 먹은후
새해맞이 부부동반 윷놀이를 하였다.
한해의 액운을 윷가치에 묻어 던져 버리고 한해의 행운을 빌었다.
상품권으로 선물을 주고 덤으로 사각티슈까지 얻었다.
오늘은 윷놀이의 유래에 대하여 소개를 드린다.
첫째, 윷판이 중국의 고사인 "漢沛公西入定關中 … 楚覇王南出潰圍中" 이라는
글귀에서 나왔다는 주장이다.
둘째, 《조선상고사》 에서 신채호가 주장한 오가(五加)의 출진도(出陣圖)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도 · 개 · 걸 · 윷 · 모 등이 부여의 관직명인 마가(馬加) · 우가(牛加) · 저가( 加) · 구가(狗加) 등의
가(加)와 유사함을 들어, 그 기원을 고대 부여에 두면서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부여의 지배체제(官制)는 제가(諸加)인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저加) 구가(狗加)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각기 말, 소, 돼지, 개를 상징으로 하는 집단이 각기 한 구역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이들 제가(諸加)는 각기 사방을 경계지은 사출도(四出道)를 맡았다.
사출도는 전시체제에서 군사조직의 출진도(出陣圖) 모형이라고 한다.
셋째, 16세기 선조 때 김문표(1568∼1608)가 이규경의《오주연문장전산고》의
'사희변증설'과 《중경지》에 보이는 바와 같이, 천지 · 하늘의 추성(북극성) · 28수 등을
본떠 만든 것이 윷판이고, 말의 이동은 해가 움직여 동지 · 춘분 · 추분 · 하지를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주장이다.
넷째, 조선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은 “고려의 유속으로 본다”고 했으나
다섯째, 최남선은 그 기원을 신라시대 이전으로 추정했다.
아직 명확히 윷판의 유래를 밝혀내 정설화된 것은 없는 실정이다.
윷판에 올릴 말은 대개 한 편에서 네 개를 가지고 한다.
나무조각이나 돌, 기타 특별히 만든 것을 상대편과 구별되도록 이용하였는데,
윷이 나는데 따라 말을 옮겨 놓는 것을 '말을 쓴다'고 한다.
윷판은 둥근 원 안에 십자를 그리고 밭 29개를 그려놓았다. 가운데 방을
중심으로 배치한 28개마다 우리말의 이름을 붙였다.
입구를 '도', 길이 갈라지는 곳을 '모', '뒷모', '찌모'라 부르며
출구를 '참먹이'라 했다. 윷판을 보면 '방'이 가장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아 중심축을 나타낸다.
- 신채호 “부여국서 시작된 고유놀이” -
윷의 도는 돼지의 저가, 개는 구가, 윷은 우가, 모는 마가를 표시하고 있으나
걸은 의문으로 남겨둔다고 했다.
걸은 임금자리인 기내(畿內)의 벼슬아치(양을 상징)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도는 돼지(豚)를, 개는 개(犬), 걸은 양(羊), 윷은 소(牛), 모는 말 (馬)을 가리킨 말이다.
이때 行馬(행마)하는 법이 이들 가축의 이름이 이용되면서,
몸의 크기와 걸음의 속도가 윷놀이에 반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시 부여가 수렵시대를 지나고 농사와 목축을 하는
시대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윷은 가락윷(채윷) · 밤윷(좀윷) · 콩윷(또는 팥윷)으로 크게 나눌 수 있고,
그밖에 상수리나 도토리 · 살구씨 · 은행 등으로도 놀게 된다.
가락윷[석사, 析柶]은 박달나무 · 밤나무 · 통싸리나무 또는 참나무 등을
대개 한 뼘 남짓한 길이(15∼20cm)의 곧고 둥근 모양으로 2개를 만든 후
반쪽을 내어 배가 약간 불룩한 네 가락이 되게 한다.
이는 다시 작은 윷 · 중윷(서울윷) · 장작윷(장자윷)으로 나눠지는데,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밤윷은 모양은 가락윷과 같으나 크기가 새끼손가락 정도로,
나무를 길이 2∼3cm의 밤알만 하게 만들었다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 윷은 조그만 간장종지 등의 그릇에 담아 손바닥으로 덮어 쥐고
흔들어 바닥에 밤윷만 내던지는 방식으로 논다.
주로 경상도 등지의 남부지방에서 많이 놀며,
서울의 경우 대부분 도박용으로 쓰이며 일반인들의 놀이용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콩윷이나 팥윷은 콩이나 팥알의 한쪽에 작은 구멍을 파 앞뒤를 가려보게 만들거나
절반을 쪼개 만든 윷으로, 농민들이 작업하다 잠시 쉬는 사이에 놀았는데,
주로 북부지방에서 많이 논다.
윷판은 둥근 원 안에 십자를 그리고 밭 29개를 그려놓았다.
가운데 방을 중심으로 배치한 28개마다 우리말의 이름을 붙였다.
곧 입구를 '도', 길이 갈라지는 곳을 '모', '뒷모', '찌모'라 부르며
출구를 '참먹이'라 했다. 윷판을 보면 '방'이 가장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아 중심축을 나타낸다.
북두칠성은 임금의 자리이며 추성은 임금별로 친다.
북두칠성은 자리를 옮기지 않아 고정불변이다.
그런데 이런 윷판에 어느 때부터인지 확인할 수 없으나
밭마다 하늘의 별자리인 28수(宿)를 표했다.
중심인 방을 '추(樞)'라 했다.
추는 ‘가운데’ 또는 밑동과 지도리라는 뜻이며
북두칠성의 첫 별자리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뭇 별이 임금별을 싸고돈다.
이런 상징성을 살려 임금은 북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남쪽에서 바라보는 신하를 마주한다.
경복궁도 임금자리를 북쪽에 배치했다.
임금이 어느 곳을 가던 이런 자리 배치는 변함이 없었다.
조선 중기에 살았던 문인 김문표(金文豹)는 <사도설(柶圖說)>에서 명쾌하게 해석을 달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윷판의 전체 주변이 둥근 것은 하늘, 중심에는 십자를 그려
모남을 그린 것은 땅을 나타낸다고 했다. 곧 천원지방(天元地方)의 천문사상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의 해석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가운데 있는 별은 추성이요, 옆으로 벌려 있는 별은 28수이다.
28수 주위를 태양이 돌고 있으므로(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이치를 달리 표현한 말) 하루가 생기고 일년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태양이 28수를 돌 때 멀리하고 가까이 함으로 사계절이 생기듯이,
윷말이 가는 길도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1) 태양(해)의 진행은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가서 가운데를 거쳐
다시 북쪽으로 나오는데 동지의 해가 짧음을 나타낸다.
‘도(첫밭)'에서 시작해서 ‘모’를 거쳐 ‘방’에서 빠져나가는 짧은 길은 동지를 의미하고,
2)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갔다가
다시 북쪽으로 나옴은 춘분의 해가 고름을 나타낸다.
'도'에서 '모'를 지나 ‘뒷모’에서 '방'을 서서히 빠져나가는 길은
한낮에 이루어지는 춘분이고,
3)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과 남쪽을 거쳐 북쪽으로 나옴은 추분의 방이 고름을 나타낸다.
'도에서 '모'에 서고 '방'을 지나 ‘찌모’를 나간 다음
‘참먹(끝밭)'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한 밤에 이루어지는 추분을 의미한다.
4)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을 거쳐 남쪽과 서쪽을 지나고 다시 북쪽으로 나옴은
하지의 해가 길음을 나타낸다.
'도'에서 '모', '뒷모', '찌모'를 지나 한 바퀴 돌아서
'참먹(끝밭)'으로 빠져나가는 가장 긴 길은 하지를 의미한다.
오늘의 모임을 위하여 수고하신 회장님 사무국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총각은 외롭고
외로워서 결혼한 남자는 고독하다.
결혼후 고독을 이기는 방법을
배워가면서 사는것이
현명한 삶이다.
선물을 받는것은 언제나 즐거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