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장 무망(无妄)[ㅡ, 天雷无妄] 무위자연을 꿈꾸는 자들이여
무위세계의 허와 실
무엇이든 그대로 두지 못하고
만지고 두드리고 부수고 새로 만드느라
근심과 걱정,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고,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은
사람이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다.
无妄 元亨利貞 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
无妄 往 吉
不耕 穫 不菑 畲 則利有攸往
无妄之災 或繫之牛 行人之得 邑人之災
可貞 无咎
无妄之疾 勿藥 有喜
无妄 行 有眚 无攸利
망령됨이 없는 无妄은 인간의 삶과 항상 같이하는 것이지만,
정도를 벗어나면 재앙이 생기고 이로움이 없다.
그러나 무망의 삶을 살면 길하다.
밭을 갈지 않고 수확하며, 개간하지 않고 경작하는 것,
자연의 법칙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망이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려야하고, 욕심을 버리지 않은 무망은 재앙을 부른다.
무망의 재앙은 소를 매어두면 행인이 이를 취하고,
동네 사람이 화를 당하는 것과 같다.
무망은 끝까지 지켜야 허물이 없다.
무망의 병에는 약을 쓰지 말라. 스스로 깨달아야 기쁨이 있다.
무망을 일상에 행하면 오히려 재앙이 생기며 이로움이 없다.
无妄 元亨利貞 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 (무망 원형리정 기비정 유생 불리유유왕)
무망(无妄), 혹은 무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삶이 이어지는 동안(元亨利貞) 항사 있는 것이다. 그만큼 무망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이고, 못내 포기하기 어려운 유혹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성취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은 무망보다는 망(妄)에 더 집착하고, 자신과 자연을 바꾸기 위해 땀을 흘리는 생활을 선택한다. 이 또한 건강한 삶이 틀림없다. 그들은 무망을 실천한 소수의 사람들을 자신들과 구별하여 성인, 군자, 도사 등으로 부른다.
성인이나 군자 또는 도사가 되기로 작정한 사람, 다시 말해 무망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먹고 자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달라야 한다.
예를들면, 날마다 욕심을 버리는 게 아니라 아예 욕심이 무언지도 몰라야 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연의 일부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망이 아니다. 무망을 꿈꾸면서도 좋은 옷에 좋은 음식을 탐하고, 명예나 이름을 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속된 말로 사이비 도사가 되고, 엉터리 수도자가 된다. 아마 독자들도 그런 사람들을 더러 보았을 것이다.
<주역>은 이처럼 청도를 벗어난 무망의 추구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다. 기비정(其匪正)은 무망의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고, 유생(有眚)은 재앙이 생긴다는 말이며, 불리유유왕(不利有攸往)은 나아감에 불리하다는 말이다. 무망의 정도에서 벗어나면 쟁앙이 생기고 결국 利의 세계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경고다. 그만큼 엄정하게 다가가야 이룰 수 있는 삶이 무망의 삶이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단지 쉬고 싶다고 안이한 생각으로 시골로 갔다가 십중팔구 적응하지 못하듯이, 그렇게 다가가서 이룩돠ㅣㄹ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세속적인 삶, 특히 정치와 경제 문제에 대한 <주역>의 세심한 충고들을 고려햐 볼 때, <주역>은 분명 무망의 삶을 긍정하고 이를 매우 높게 평가하지만, 보통사람들의 땀가 노력, 용기에 더 많은 관심과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것이 공맹(孔孟)의 철학과 다른 <주역>만의 한 특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无妄 往 吉 (무망 왕 길)
앞 구절에서는 무망이 얼마나 엄정한 것인지, 얼마나 달성되기 어려운 것인지를 설명했다. 자칫 쉽게 보고 덤볐다가는 오히려 재앙을 입게 된다는 경고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무망이 한찮다거나 무의미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절대 달성할 수 없다는 불가론적인 말도 아니다. 무망은 충분히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한 구절이 바로 이 구절이다. 문자 그대로 무망(无妄)의 삶을 살면(往) 吉하다는 말이다.
不耕 穫 不菑 畲 則利有攸往 (불경 확 불치 여 즉리유유왕)
그렇다면 무망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 말로 설명하자면 말이 길어지고 번다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주역>은 간단히 예를 들어 설명한다. 불경(不耕)은 밭을 갈아엎는 식의 인위적인 경작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불치(不菑)는 밭을 개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밭을 새로이 개간하고 해마다 이를 갈아엎는 것은 더 많은 작물을 심어 더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함이다. 이는 보통사람들이 선택하는 생존의 방식이다. 하지만 무망을 꿈꾸는 사람은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잡초 사이에서 자연 그대로 자라는 농작물을 수확(穫)해서 먹고, 개간하지 않은 묵은 밭을 새 밭(菑)이라 여기며 그냥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러면 곧(則), 나아감(有攸往)에 이롭다(利)고 하였다. 오늘날 새로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유기농법의 원형과도 같은 방식이다.
<성경>에서 예수는 인간의 모든 고통이 의식주에 대한 염려와 집착에서 비롯됨을 갈파한 바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