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을 극복하는 지혜
세상은 음양(陰陽)의 조화로 인하여 평화롭다. 음과 양이 적절히 섞여 조화를 이루면 모두가 편안하고 아름답지만, 어느 한 쪽의 기운이 넘치거나 모자라면 혼란스럽고 추해진다. <박(剝)>은 이런 음양의 조화가 깨어지고 극심한 혼란과 어려움이 겹친 시기를 어떻게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장이다.
剝은 음기(陰氣)기 극도로 강해지고 양기(陽氣)가 거의 소멸된 시기이다. 많은 것이 파괴되고 상상도 못했던 재해가 몰려온다. 나라에는 간신들이 들끓고 충신이 쫓겨나고, 근본을 흔드는 난이 도처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은 강팍해져서 서로 빼앗고 빼앗기며, 생활은 극도로 궁핍해져 농부는 내년을 위해 예비해 둔 종자(種子)까지 먹어 없애는 상황에 이른다.
<주역>에서는 기본적으로 剝은 불리하지만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가지를 극흉(極凶)하다고 했다. 박상이족(剝牀以足), 박상이변(剝牀以辨), 박상이부(剝牀以膚)가 그것이다. 이때의 牀은 床(평상 상)과 같은 뜻으로, 밥상이나 책상이라고 할 때의 그 상이다. 말하자면 대화의 테이블이며, 행정과 사무를 보는 곳이며, 음식을 먹는 곳이다. 박상(剝牀)이란 이런 테이블이 깨어지고 엎어진 형국이다. 이처럼 상이 깨어지고 엎어진 형국에도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이고, 그 각각이 이족(以足), 이변(以辨), 이부(以膚)인 것이다.
우선 以足은 상다리 자체가 부러진 형국이니 협상의 테이블 자체가 없어져 버린 상황이다. 以辨은 상은 있으되 쓰지 못하는 형국이니, 말하자면 협상은 계속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전혀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교착과 진전을 거듭하는 남. 북한 사이의 협상 테이블을 상상 해볼 수 있다. 특히 협상이 막히고 결렬되는 사오항을 생각해 보면 이족이나 이변이 상징하는 바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부는 이족니아 이변이 계속되어 마침내 그 고통이 우리의 생활 깊숙히 파고들어 모두가 한기(寒氣)를 느끼는 상황을 말한다.
<주역>은 이러한 剝에 대처하는 지혜도 가르친다. 剝은 剝으로 풀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박의 운이 진행할 때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순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며, 무욕(無慾)의 상태라야 몸과 마음을 보전할 수 있다는 깨우침이다.
한편, 剝은 강한 陰의 기운이다. 이처럼 음기가 극왕(極旺)하는 시기에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파와 파쟁을 막기 어렵다.
또한 아무리 어려운 시기라 하더라도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훗날 쓸 종자까지 없애 버린다면 그야말로 망하게 된다. 순간의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하면서 미래의 도약을 준비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