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를 찾아서

안동의 진성이씨 가문(내고향/온혜옹주)

오토산 2015. 5. 15. 11:16

 

 

 

풍요한 도산면 온혜리 풍경

 

 

[정의]


안동의 진성이씨는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 이자수(李子脩)가 고려 말 마애촌에 입향한 후 이자수의 증손 이계양(李繼陽)이 크게 현달하여 벌족을 이루면서 도산면 일대를 중심으로 세거해 온 가문이다.

 


[연원]


이석은 누대로 진보현(眞寶縣)에 토착해온 호족의 후예이다. 이석의 아들 이자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판전의사사가 되었고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격퇴한 공으로 안사공신(安社功臣)에 녹권되고

송안군(松安君)에 봉해졌으며 이석은 봉익대부밀직사에 증직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이석을 시조로 하고 선조의 본향인 진보를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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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면 퇴계 이황  생가

 


[입향경위]


입향시조 이자수는 고려 우왕 때 풍산현 마라촌(현 풍산읍 마애리)에 정착하였다가

 만년에 와룡 주촌(현 와룡면 주하리)으로 이거하였다.

이자수의 큰아들 이운구(李云具)의 후손은 안동을 떠나 삼척군 근덕, 예천군 하리,

의성군 단촌 등지로 이거하였다.  

 

  와룡면 주하리 주촌 종택

 

작은아들 이운후(李云候)의 손자 3형제 중 맏아들 이우양(李遇陽)은 주촌에 눌러 살고,

둘째 이흥양(李興陽)은 다시 마애로 환거하였고

셋째 이계양(李繼陽)은 예안현 온혜(현 도산면 온계리)로 이거하였다.

 

 

 와룡면 주하리 주촌 종택 가는 길

 

이운후의 아들 이정(李禎)은 세종 때 영변판관으로 영변진성을 쌓았고 선산부사를 지냈다.

이정의 맏아들 이우양은 무과에 급제하여 인동현감을 지냈고, 이우양의 증손 이연(李演)은

 훈도를 지냈으며 경류정(慶流亭)을 지었다.

 

 

 와룡면 주하리 주촌 종택 안마당 

이연의 손자 송간(松間) 이정회(李庭檜, 1542~1612)는 임진왜란 때 의흥현감을 지냈다.

이연의 동생 이한(李漢)의 후손은 일직면 송리리로 이거하였는데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직강이 된 학천(學川) 이봉춘(李逢春, 1542~1625), 경옥(景玉) 이보(李簠, 1629~1700), 퇴계학맥의 거유

후산(後山) 이종수(李宗洙, 1722~1797) 등을 배출하였다.

 

이정의 둘째 아들 이흥양은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참군을 지내고 주촌에서 다시 마애로 환거하였다.

 

 

上溪宗宅 전경

 

 이흥양의 현손 이돈(李燉, 1568~1624)은 문과에 급제하여 영천군수를 지냈고, 이돈의 아들 이회보(李回寶, 1594~1669)는 1629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호종하면서 쓴 『산성일기(山城日記)』를 남겼으며 성혼(成渾)과 이이(李珥)의 문묘배향을 주장하였다.

 

 

풍요한 도산면 온혜리 풍경

 

이정의 셋째 아들 이계양(1424~1488)은 진성이씨 예안시대를 연 중흥조이다.

이계양의 장자 이식(李埴)은 진사이고, 차자 송재(松齋) 이우(李堣, 1469~1517)는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 강원도관찰사, 안동부사를 역임하였다.

 이우의 6세손 나은(懶隱) 이동표(李東標, 1654~1700)는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의, 삼척부사 등을 역임하고 춘양 노룻골로 이거하였다.

 

 

 

上溪宗宅 전경

 

이식의 맏아들 이인(李寅)은 후사가 없어 차자 이하(李河)의 후손이 종파를 이어받게 되었다. 이하의 차자 이굉(李汯)의 후손은 예천 호명면에, 3자 이성(李宬)의 후손은 영해 원구리로 이거하였고, 이식의 3자 이의(李漪)의 후손은 예천 대죽리로 이거하였다.

 

이식의 4자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1550)는 문과에 올라 대사헌을 지냈는데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갑산으로 유배 가던 길에 죽었다.

 이해의 아우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도 문과를 거쳐 관직에 나갔으나 벼슬보다는 학문 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써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지어 300여명의 인재를 배출하고 성리학의 태두가 되었다.

 

진성이씨 중에서도 퇴계의 후예가 가장 번성하여 문행과 과신이 이어져서 문과 출신자 32명을 배출하였다.

 

 

 와룡면 주하리 주촌 종택

 

퇴계의 손자 이안도(李安道, 1541~1584), 이영도(李詠道, 1559~1637) 형제를 시작으로 이수연(李守淵), 이세사(李世師), 이세윤(李世胤), 이귀운(李龜雲), 이야순(李野淳), 이태순(李泰淳), 이가순(李家淳), 이휘령(李彙寧), 이만용(李晩容), 이중두(李中斗) 등으로

 대를 이어 가학과 벼슬을 이어왔고 한말 일제강점기에는 경술국치를 당하여 단식 순국한

이만도(李晩燾, 1841~1910)를 비롯하여 이중언(李中彦), 이중업(中業), 이동봉(李東鳳),

이육사(李陸史, 1904~1944, 본명 이원록) 등 30여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하였다.

 

풍요한 도산면 온혜리 풍경

 


[현황]


안동의 진성이씨는 현재 풍산읍 마애리, 와룡면 주하리, 도산면 온계리·토계리·의촌리·원촌리 등에 살고 있다.

 그 중 이연의 후손들은 주로 종가를 중심으로 와룡면 주하리에 살고 있으며, 이종수의 후손 50여 호가 일직면 내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또 이흥양의 후손들은 풍산읍 마애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해 오고 있다.


 

퇴계 이황선생 묘소

 

 

 

[관련유적]


북후면 물한리에 송안군 사당인 작산정사(鵲山精舍), 선산도호부사 이정 재실인 가창재사(可倉齋舍), 강당 등이 있고, 와룡면 주하리에 안동 진성이씨 종택 및 경류정, 이정이 심은 향나무가 있다.

도산면 온혜리에 이계양의 종가 및 노송정(老松亭), 퇴계 태실(退溪胎室), 이해의 종가인 삼백당(三栢堂)이 있다.

 

토계리 상계에 퇴계 종택(退溪宗宅) 및 추월 한수정(秋月寒水亭), 계상서당(溪上書堂) 등이 있고, 하계에 퇴계 묘소와 퇴계의 손자 이영도의 종택 및 수졸당(守拙堂)이 있다. 이

밖에 도산면 원촌리와 의촌리 등 도산면 일원에 분가한 후손들의 고택이 산재하고,

안동시 옥정동에 송재 이우가 지은 애련정(愛戀亭)이 있으며, 풍산읍 마애리에 이돈이 지은 산수정(山水亭)이 있다.

 

도산면 온혜리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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