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를 찾아서

진성이씨 시조모소와 기곡재사를 찾아서

오토산 2016. 4. 26. 16:34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9311

 

진성이씨 기곡재사를 찾아서

 

 

 

4월23일 오후 종친어른들 네분과 함께 청송군 진보를 거쳐 기곡재사를 찾았다.

기곡재사는 진성이씨 시조 산소 아래에 있는 묘를 수호하기위한 재사이다.

 

진성이씨는 고려말에 일어났고 시조 諱 碩은 縣吏로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아들 子脩가 몽고족 침입을 막아 松安君에 봉군되면서 密直使에 추증되었으며

진보읍내에 살았고 천성이 공근하시어 태수가 官衛에서 角聲을 내는것을 들으면

下堂해서 절하고 꿇어 엎드려 배궤()하고 일마다 이렇게 한다는 일을 듣고

縣監이 마음으로 미안하게 생각하여 靑杞縣 각성이 들리지 않는곳에 거처를

마련하여 移居를 권했다고 전하며 진보에서 시조가 사시던 위치는 없어지고

진보로 가는 우회도로입구에 '李村遺蹟碑'가 흔적을 전해주고 있었다.

 

 기곡재사는 청송파천면 가람실에 있는 시조의 묘를 수호하기 위해 세운재사로

  원래 시조 묘를 잃어버렸는데 숙종5년(1679) 誌石이 발견됨에 따라 봉안했다하고

<岐谷齋舍記>에 의하면 시조묘를 수호하는 재실이 있었는데 소실된것을

영조16년(17740)에 중건하였지만 정조11년(1787)에 화재로 소실되어

헌종15년(1849)에 현위치로 옮기고 철종2년(1851)에 준공하였으며

건물은 정면다락집형상으로 저면5칸 측면5칸의 'ㅁ'자형으로

문중집화나 묘제시에 활용되고 있으며 조선시대 제사건물의 유형을

살필수있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묘소는 장식이나 꾸밈이 없이 가꾸어진 세분의 산소가 있으며 고위와 비위의

구분은 정확히 알수 없다고 하며 주변에 소나무숲이 우거져 경관을 더해준다.

아무런 과장도 없고 꾸밈도 없이 평범한 사실만으로 살아오신 시조 어른의

뜻을 여기에서도 찾아볼수 있었으며 우리는 송소고택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참은인(忍)자 속의 비밀에 이런뜻이~~~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제후가 참으면 큰 나라를 이룩하고   벼슬아치가 참으면 그 지위가 올라가고

 형제가 참으면 집안이 부귀하고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해로할수 있고

친구끼리 참으면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고     자신이 참으면 재앙이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