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가학을 이어가는 후계정(後溪亭)
오후일정으로 도산서원에서 먼발치로 건너 보이고 도산구곡을 품고
옛 선현의 채취와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부포마을을 찾았다.
부포에서 처음 들른곳은 다래마을로 건너는 선착장 앞의 후계정을 찾았다.
부포는 노송정 이계양이 분가하여 살았던곳이며 퇴계종택의 초기터전이었으며
후계의 아들 소계 이휘병과 손자 둔와 이만손 부자가 영남만인소의 소수이었고
경술국치후 이명우 부부는 고향을 떠나 속리산에 들어가 살다 1921년 1월
광무황제 대상을 마치던날 충의를 위해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순국하였고
부인 권씨는 남편의 뜻을 쫒아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순국하여
충과 의를 함께 택하였으며 이 마을에는 16명의 애국지사가 배출되었다.
후계정은 후계 이이순(1764~1832)이 1811년(순조11) 부포동쪽 청동에 지은
서당으로 후진을 양성하다가 2006.10. 후손들이 이 곳으로 이전 중수하였으며
지금도 대전에서 정년 퇴직을 하신 주손이 주변을 정비하시기에 바빴다.
후계 이이순은 조선후기 문신.학자로 퇴계선생 9세손이며 1779년 생원시 합격
1779년 효릉제관(참봉)에 제수되었고 1802년 의금부도사 1805년 군자감주부
1806년 은진현감이 되어 단옥을 공평히 하고 상벌을 엄격히 하였으나
죽림서원 유생중 군역을 기피하던 양민장정을 정리하다 유생들과 충돌하여
감영의 뜻을 거슬렸다는 이유로 취임 9개월만에 물러났으며
1811년 후계서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고 퇴계선생의 문집과 유문을 수습하여
溪山世稿 3권을 만들었고 손자 만희(晩熹)를 퇴계종손으로 입후하였다.
후계정에서 열심히 주변을 정비하면서 본인의 건강도 관리하고 계시는 주손의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보고 내려와서 이태원 별유사로부터 선착장입구에서
안동댐이 되기전의 부포마을에 대하여 설명을 들은후 성재종택으로 갔다.
세상사 한마디
통조림은 200년전 프랑스 나폴레옹황제때 병속에 채소를 넣고
공기를 빼내 콜크마개로 막아 전쟁시 음식을 병조림으로 보급했고
프랑스군이 강해진 원인을 안 영국군이 양철통조림으로 만들었으며
1810년 뚜껑이 열리지 않는 주석통조림 개발 1812년 최초 공장설립
1870년대 미국에서 깡통따개 개발 1959년 뚜껑에 고리부착을 하였다.
이런과정으로 갖가지 음식을 통조림 즐기는 우리는 이렇게 행복~~
선인들의 흔적을 정성껏 관리하시는 주손분
다래마을이 건너다 보이는곳에서 부포마을의 옛 모습을 그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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