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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제례의 이론을 배우며
7월19일 도산선원 선비문화수련원에서 부설전통예절원 정종학 원장님이
전통제례의 이론에 대하여 강의가 있었다.
祖上에 대한 祭儀는 문자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처음에는 조상의 畵像을
그려 모시고 지내다가 나중에 문자로 써서 모시며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고려말 포은 정몽주선생이 제정한 祭禮規定에 의하면 1~3품관은 3대를 제사지내고
4~6품관은 2대를 제사지내고 7품관이하 서민들은 부모만 제사를 지냈다고 하고
조선조 經國大典에는 1~3품관은 4대를, 4~6품관은 3대를, 7품관이하 선비들은
2대를, 서민들은 부모만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으며
1894년 甲午更張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효도하는데도 신분 차이가 있을수
있느냐는 풍조가 일어 누구든지 고조부까지 四代奉祀를 하게 되었고 4대봉사를
하는 이유는 수명으로 보아 고조부모의 생전에 사랑을 받았으면서 어떻게
제사를 지내지 않을수 있느냐는 것이었고
현행 건전가정의례준칙에 의하면 조부모까지 2대만 제사지낼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4대봉사를 하는 가문도 있다고 하셨다.
祭儀禮의 방위는 신위를 모신곳을 북쪽으로 설정해 신위 앞이 남쪽, 왼쪽이 동쪽,
오른쪽이 서쪽이 되고 남자는 동쪽 여자는 서쪽으로 신위 앞이 상석으로 선다.
忌日祭는 돌아가신날로 하고 閏月에 돌아가시면 常月에 지내고 음력 큰달의
그믐날(30일)에 작고하셨다면 작은달이더라도 그믐날에 모신다고 하셨다.
조선시대 널리 통용되었던 栗谷 李珥의 祭儀抄, 沙溪 金長生의 家禮輯覽,
陶庵 李縡의 四禮便覽 그리고 朱子家禮등에서 보이는 상차림의 순서나 격식이
통일되지 못하고 세부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家家禮란 말이
생겨났으며 우요삼잡(右繞三匝)은 불교문화로 술잔을 돌리는것이 아니다.
또 진설은 5열부터 1열로 하고 철상은 1열부터 5열순으로 한다.
신주는 규격이 정해져 있고 위패는 규격이 없으며 주향보다 종향의 위패가 큰
경우도 있으며 지방의 규격도 신주 규격과 같이 周尺 1.2尺 6*22㎝ 이고
지방의 상단을 둥글게 하고 하단을 바르게 하는것은 천원지방을 나타내고
요즘에는 지방에 현대의 직위나 사회적 직직위를 적을수도 있으며
考位는 성씨를 쓰지 않지만 妣位는 성씨를 쓰는것은 아버지는 두분일수 없지만
어머니는 두분 이상일수 있기대문에 구분하기 위한것이라고 하신다.
절하는 횟수는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며 양의 수는 1, 음의 수는 2로 간주
산사람에게는 양의 도를, 죽은사람에게는 음의 도를 따르기 때문에 남자는 2배
여자는 4배를 하는것이지 남여 차별이 아니라고 하시며 에절에는 존자가 앉는
자리가 북쪽이고 제사는 병풍을친곳이 북쪽이며 산자는 동쪽에서 1.2.3으로
죽은자는 서쪽에서 1.2.3으로 배치하고 중앙에 1위가 서면 산자는 서쪽이 2위
죽은자는 동쪽이 2위를 배치한다는 상식과 일본은 칼이 붓을 지배하여 주군에
대한 忠을, 한국은 붓이 칼을 지배하여 부모에 대한 孝를, 중국은 충효가 혼재
하여 뜻을 같이하는 동지에 대한 義를 최고 덕목으로 살아왔으며 제사는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정성껏 모시는것이 가장 중요함을 배우게 되었다.
강의를 하여주신 정종학 원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매미는 낮에 짝을 찾아 울어대고 모기는 밤에 짝을 찾아 울어대는데
도시에는 가로등 불이 밝아 매미가 밤낮을 가리지 못하고 울어대고
모기는 차량소음으로 짝을 못 찾아 더 크게 울어댄다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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