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105

우뚝 솟은 금강산

김삿갓 5 - [우뚝 솟은 금강산] 청운의 큰 뜻이 이루어져 청루 거각에 누워 있어야 할 몸이 멍석이 깔려 있는 낯선 사랑방에 누워 있다니 대체 어느 쪽이 잘못되어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모두 뜬구름이야 뜬구름"※ "아니 이 양반이 잠꼬대는 웬 잠꼬대" 더벅머리 머슴 놈이 부지중에 김삿갓이 내뱉은 말을 잠꼬대로 들었던지 툭툭 발길질을 한다. ※※"총각, 내 잠세."※※ 김삿갓은 이렇게 말하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김삿갓은 계속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절은 벌써 오월이었고 집을 떠난 지 어언 한 달이나 되었다. 봄도 지금은 다 지나가고 신록과 더불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삿갓은 양구를 거쳐 금강산의 관문인 단발령에 도착하였으니 집에서부터 오백 리 길을 걸은 셈이다..

[방랑의 시작]

김삿갓 4 - [방랑의 시작] 따듯한 봄 볕을 받으며 김삿갓은 망연히 북쪽으로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던지... 야산 기슭이 끝나고 넓은 들판이 나타났다. 산골에만 살던 그는 넓은 들판을 보니, 일순 가슴조차 뻥 뚫리는것 같았다. 논에서는 농부들이 한창 모내기를 하고 있었고, 어디선가는 농악 소리도 들려왔다. 김삿갓은 구성진 못줄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모내기를 하고 있는 논두렁길에 발길을 멈추고 구경을 하였다. 농군들은 못줄 넘기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손 놀림으로 신명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김삿갓은 가만히 서서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참거리라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해를 쳐다 보니, 오시(午時)는 지난듯 하고... 얼추, 새참이 나올 시간이 임박해 보였다. 농사철이 되면 농군들..

집을 떠나는 김삿갓]

김삿갓 3 - [집을 떠나는 김삿갓] 이제 언제 떠날 것이며 유랑의 길을 어떻게 잡느냐만 남았다. (떠나기로 결심한 바에야 봄이 가기전에 떠나도록 하자. 봄바람을 타고 발길 닿는대로 가면 되지 않겠냐.) 생각이 이렇게 굳어지자 내일이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금강산도 보고싶고 구월산도 보고싶고, 할아버지가 봉직했다는 선천 땅도 밟아 보고 싶었다. 선천땅에 가면 할아버지의 체취를 맡을 수 있으리란 막연한 생각도 함께 들었다. 병연은 떠날준비를 서둘렀다. 사실, 돈을 가지고 유람을 가는 것도 아니라서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었지만...싸리나무로 삿갓을 만들었다.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다 보면 심한 바람도 만날 것이오, 줄기찬 비도 맞고 때로는 눈보라도 닥칠 것이니 이것들을 다소라도 이겨내려면 삿갓이..

병연의 방랑준비

김삿갓 2 - [병연의 방랑준비] 천부적인 재질을 가진 병연에게는 诗야 말로 생의 전부였다. 애써 생각치 않아도 시상(诗想)은 항상 그와 함께 있었다. 지금까지는 입신출세를 해보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자신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고 문장을 가다듬고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에 시작(诗作)을 붙였다. 하지만 출세가 뜬구름이 된 지금, 문장이 무슨 소용있으며 시 또한 무슨 필요 있단 말인가. 폐족의 낙인이 찍혀 있는 마당에 시를 해서 무엇한단 말인가. 자괴감에 싸여 며칠을 고민을 거듭하던 병연, 뜬구름 같은 인생,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자연에 묻혀, 동가숙 서가식 (东家宿 西家食)하면서 주유천하(周遊天下)로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심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병연은 자기의 결심을 실행하기에 앞서 소년..

밝혀진 집안 내력의 秘密

김삿갓 1 - *밝혀진 집안 내력의 秘密 어머니로 부터 조부(祖父) 김익순에 대한 내력을 듣게된 병연(炳淵)은 비틀거리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벽을 바라보고 꿇어 앉아, 머리가 방바닥에 닿을듯 고개를 꺽고 있었다. 희미한 등잔불은 가끔씩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출렁거렸다. 어디선가 산짐승 우는 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왔다. "여보, 밤이 깊었어요." 남편이 평소와 전혀 다른, 실성한 모습으로 벽을 향해 앉아 있자, 병연의 아내도 물끄러미 앉아 있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오늘 집에 오실때 백일장에 참례하여 장원급제 하셨다고 좋아 하시더니" .. 병연의 아내는 불과 한 시각 전에 남편 모습이 어머니 방을 다녀온 후 돌변한 것이 의아했다. 그러나 병연은 대답이 없었다. "여보, 어서 자리에 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