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105

노승과 문답

김삿갓 15 - [老僧과의 问答] ​노승 .. 조등입석 운생족(朝登立石 云生足) ​아침에 입석봉에 오르면, 구름이 발 밑에서 일어나고 ​삿갓 .. 모음황천 월괘순(暮飮黃泉 月掛脣) ​저녁에 황천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리도다. ​노승 .. 간송남와 지북풍 (澗松南臥 知北风) ​물가의 소나무가 남쪽으로 엎드려 있으니, 북풍이 주는 것을 알겠고. ​삿갓 .. 헌죽동경 각일서 (軒竹东頃 觉日西) ​마루의 대나무 그림자가 동쪽으로 기우니, 날 저무는 것을 알겠노라. ​노승 .. 절벽수위 화소립 (絶壁雖危 花笑立) ​절벽은 비록 위태로우나, 꽃은 웃으며 피어나 있고 ​삿갓 .. 양춘최호 조제귀 (阳春最好 鸟啼归) ​따듯한 봄볕 제일 좋은 때련만, 새는 울며 돌아가네. ​노승 .. 천상백운 명일우 (天上白云 明..

입석봉 선승

김삿갓 14 - [立石峰 仙僧] 입석봉은 글자가 말해주듯 깎아지른 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은 짐승의 형상을 한것도 있지만 발돋움을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상도 있었다. "가히 만물상이로군" 김삿갓의 입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헌데 선승은 어디에 살고 있단 말인가?" 그는 바위 천지인 봉우리 아래쪽을 훑어 보았다. 시선이 머무르는 한 곳이 있었는데, 둥그스런 큰 바위 아래로 노송 가지가 휘늘어진 밑에 초막같은 암자가 빼꼼히 보이는 것이다. 김삿갓은 지체없이 그쪽으로 바삐 걸었다. 길은 바위사이로 나 있는 사람이 발로 밟은 자국이 있는 구불구불 바위 사이 길로, 자칫 발을 잘못 디뎌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면 송곳같은 바위끝에 뼈가 으스러질 판으로 보였다. "자기가 무슨 은둔..

우뚝솟은 金刚山

김삿갓 13 - [우뚝솟은 金刚山] ​松松栢栢岩岩廻, 水水山山处处奇 (송송백백암암회, 수수산산처처기) ​ ​"허! 이거 천하의 名詩일쎄...! 선비들은 글을 읊조리고 나서 무릅을 치며 감탄했다. 그들은 이미 금강산을 두고 읊은 수 많은 시를 많이 보아온 터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금강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쉬운 글자만 사용하여 딱 두줄로 간결하게 적은 것은 처음이다. "허어, 금강산의 경치를 이렇듯 쉽게 나타내는 방법도 있었구먼." 누군가는 탄식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들은 금강산 곳곳의 절경 앞에 할말을 잊고, 이것을 글로 옮길 적당한 문구를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잘것 없이 초라한 나그네는 물 흐르듯이 쉬운 글자로 술술 읊어 버리니 감탄만이 나올 뿐이었다. "아니 이런 ..

김삿갓의 대필 诗

김삿갓 12 - [김삿갓의 대필 诗] "과연 명승절지에 명승(名僧)이 계시군요. 불초 감히 고명하신 분과 겨룰수야 없습니다만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야 시주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글이라면 그 스님도 뒤지지 않으시는 분이나 가신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셔야 할겁니다.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스님은 누구든 찾아오는 손님은 글을 알든 모르든 글 실력을 시험해 보십니다. 그래서 상대는 안되지만 실력이 있다고 인정되면 쾌히 대접을 해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장으로 후려쳐 쫒아버립니다. 물론 시주께서는 좋은 상대가 되시겠습니다만." 김삿갓은 갈수록 흥미를 느꼈다. "거참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만약 겨루기를 하여서 지는 편은 이를 뽑혀야 합니다. 아..

금강산의 경치를 버리면

김삿갓 11 - [금강산의 경치를 버리면] "참 좋습니다." 선비들은 무릎을 쳤다. 김삿갓은 얻어 먹을 것을 먹었으니 이제 볼일은 다 끝났다 생각되어 부시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벌써 가시렵니까?" 선비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바람처럼 왔으니 바람처럼 가야지요.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납시다." 김삿갓은 이 말을 남기고 다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고개를 몇개 넘으니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가가 보이지 않아 계속 걸었다. 가는 길이 숲속 길이라 해는 아직 넘어가지 않았으나 앞은 어둑어둑 하였다. 이때 삼거리 길에서 중을 만났다. 그는 무료하던 차에 잘 되었다 생각하고 슬쩍 문자를 써서 말을 걸었다. "문여소승하처래?" (门余小僧何处来?) 그러자 젊은 중도 냉큼 문자로 대답을..

[일년 춘색( 一年春色)]

김삿갓 10 - [일년 춘색( 一年春色)] 김삿갓의 诗를 본 선비들의 얼굴은 일순간 크게 달라졌다. 애초 김삿갓이 예측한 대로 이들은 한양의 권문세도가의 아들들이었다. 추위가 가신 늦은 봄에 돈냥이나 가지고 금강산 유람을 떠나왔는데 아직도 비로봉 근처에는 가보지를 못하고 건너편 절에 숙소를 정해 놓고 날마다 천렵으로 소일하고 있었다. 부모 덕택으로 학식깨나 있다는 선비를 불러 독서당을 차려놓고 글 공부를 하는 터인지라, 이들은 자신들이 글 실력이 남다름이 있다고 뽐내던 처지였고 천만 뜻 밖에도 김삿갓의 글이 진솔하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허허, 노형 이제보니 보통 솜씨가 아니시구료." 당신이라고 부르던 호칭이 어느새 노형으로 고쳐져 나왔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들은 풍월이지요." 김삿갓은 빙그레 웃으며..

[오애내자 청산지 도수래]

김삿갓 9 - [오애내자 청산지 도수래] 金刚山은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는 산이다. 봄은 마치 앙증맞은 일,이십대 아가씨 처럼 수줍은 아름다움으로 치장하여, 금강산(金刚山)으로 불리고, 여름은 한여름 억세게 자라나는 명아주처럼 생활력이 왕성한 삼,사십대 여성으로 보아, 봉래산(逢萊山)이라 부른다. 그런가 하면 가을에 불리는 이름은 풍악산(枫岳山)이라 하는데 이것은 인생의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오,육십대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인생의 행로를 비유한 것이리라.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 이라 하는데 이것은 산의 모습도 늙은 노파의 처지처럼 그좋던 풍경이 어느덧 사라지고 산골짜기 봉우리마다 바위만 앙상하게 보여서 붙인 이름이다. 발길을 더해 갈수록 금강산의 수려한 본색이 드러났다. 김삿갓은 완전히 주의의 경치에 취해..

[오애내자 청산지 도수래]

김삿갓 8 - [오애내자 청산지 도수래] (吾爱內者 靑山之 到水来)] ​금강산까지 팔십리 남았다는 말을 들은 김삿갓은 모호했다. 비로봉까지 팔십리란 말인지 내금강 입구까지 팔십리 남았다는 말인지 도통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떠랴, 어차피 세상을 떠도는 몸이거늘, 팔십리든 팔백리든 남은 거리가 문제되진 않았다. 김삿갓은 한가로운 여름 구름같이 유유자적한 터라 하루 삼십여리만 걸어도 하루해가 지나갔다. 날이 다시 저물기 시작했다. 산골의 저녁은 빠른 법이다. 이렇게 날이 저물때면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잠자리였다. "허, 날아 다니는 새도 밤이 되면 찾아갈 둥지가 있건만... 나는 또 뉘집 문 앞을 기웃거려야 한단 말인가?" 김삿갓은 탄식이 절로 났다. 두어 고개를 넘으니 조그만 동네가 보였다. 십여호..

승수단단 한마량

김삿갓 7 - 승수단단 한마량[僧首 团团 汗马阆] "그깟 언문 풍월이야 어디 풍월 축에나 들수 있겠소? 이번에는 진짜 풍월을 해봅시다. 당신이 냉큼 지어내지 못하면 썩 여길 물러나시오." 중의 이같은 말을 들은 김삿갓은 신명이 났다. "허.. 그럼 지금까지는 가짜 풍월 이었구려. 좋소이다. 진짜 풍월이 어떤것 인지 맛좀 보여주시오. 내 맛보고 떫으면 이자리에서 썩 나가리다." "허, 이 사람 말도 많구먼." 중이 심히 못마땅 한듯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건방진 녀석의 코를 낙짝하게 해줄까 궁리를 하다가 스스로 묘한 계책을 생각하였노라 내심 감탄을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당신이 한문과 언문을 공부했다 하니 내 운을 부르겠소." 김삿갓은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역시 대사다운 말씀..

선비와의 언문풍월 대결

김삿갓 6 - [선비와의 언문풍월 대결] "아니 뭐가 딱하단 말이오?" 중이 험악한 대꾸를 하는데 그의 말에는 칼과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스님, 긴요한 이야기라면 뒷켠 승방에서 나눌 일이지 어찌 부처님 앞에서 나눈단 말씀이오. 앉아 계셔도 구만리를 내다 보시는 부처님이 두렵지 않고 한낮 지나가는 이 과객은 두렵단 말이오 ?" "뭣이?" 선비와 중은 동시에 입을 딱 벌리며 기막혀 했다. 말을 듣고보니 이치에 닿는 말이었다. 인간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부처님은 못 속이는 법, 지금까지 부처님 앞에서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잘것 없는 나그네 하나를 물리치려던 자신들이 부끄러웠다. 선비는 이 낯선 과객의 말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한꾀를 생각했다. 그것은 어려운 글겨루기를 해서 창피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