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105

땡중과 마나님의 승부

김삿갓 35 - [땡중과 마나님의 승부] ​석왕사에서 '반월행자'와 작별을 한 김삿갓은 다시 북쪽을 향해 정처없는 발길을 옮겼다. ​그러면서 금강산 입석암 노승을 비롯하여 반월 행자까지 불가에 귀의하여 수도를 하는 인물은 자신과 다르게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고생을 스스로 선택한 그들의 삶은 김삿갓으로서는 따라할 수 없는 고행이 아니던가, 새삼 그들의 선택에 마음속 깊이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북쪽으로 가는 길은 계속 산길로 이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김삿갓은 다리도 쉬어갈겸 노견으로 물러나 반려 행자가 헤어질때 싸준 주먹밥을 풀어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만치, 몸에는 장옷을 입고 머리에는 남바위를 쓴 행세깨나 하는 양반댁 마나님 차림의 여인이 하인도 없이 산길을 바쁜 걸음으..

석왕사(釋王寺)에 얽힌 내막"하편

김삿갓 34 - [석왕사(釋王寺)에 얽힌 내막"하편] 이성계는 간밤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어떤 낡은 집에 있노라니, 별안간 모든 닭들이 일시에 '꼬끼오!' 하고 요란스럽게 울었습니다. 닭의 울음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내가 있던 집이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뛰쳐 나오려는데 이미 지게에는 서까래 세개를 얹어 놓았더란 말입니다...!" ​"꿈은 그뿐이었습니까?" ​"아니지요. 서까래 세개를 짊어지고 밖으로 나오니까, 뜰어 피었던 꽃이 별안간 떨어지고, 그와 동시에 난데없이 거울이 깨지면서 요란한 소리가 나는거예요. 아무리 생각 하여도 예사 꿈은 아닌듯 한데, 혹 흉몽이 아닌지요?" ​무학도사는 꿈 이야기를 모두 듣고, 사뭇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숙연히 말을..

석왕사(釋王寺)에 얽힌 내막"상편

김삿갓 33 - [석왕사(釋王寺)에 얽힌 내막"상편"] 김삿갓은 마침내 본연의 생활로 돌아왔다. 집을 떠난지 이년째, 그는 안락한 생활보다 천대를 받으며 찬밥 한술로 끼니를 때우게 되더라도 술만 한잔 더해 진다면 바람따라 흘러다니는 지금의 생활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김삿갓이 안변 관아를 떠나 북쪽으로 길을 잡아 발길을 옮긴지 하루째, 안변 설봉산 석왕사(釋王寺) 앞에 이르렀다. 이곳은 이태조(李太祖)의 건국신화가 서려 있는 곳이었다. ​ 김삿갓이 이곳 석왕사에 온 까닭은 금강산 입석암을 떠날 때 "혹시 안변 석왕사에 가게되면 반월 행자를 찾으시오. 그 아이는 나의 제자로 지금은 그곳에 있소이다. 사람이 선량하고 다정하니, 삿갓선생을 정성껏 도울 것이오."라는 노스님의 당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가련'과의 영원한 이별

김삿갓 32 - ['가련'과의 영원한 이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김삿갓은 항상 안변을 떠나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가련과의 사랑에 얽매어 좀체, 다시 길을 떠날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김삿갓은 가련과 사랑을 나누면서도 항상 걱정이 되는 것은 혹시라도 가련의 몸에 아기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다. ​가련과 일생을 같이 한다면 모르겠거니와 김삿갓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처없는 방랑길에, 한순간 불같은 열정에 사로잡혀 저지르고 있는 일 인데, 만일 아기가 생긴다면 자신보다 가련의 불행이요, 아이의 불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가지 생각 때문에 김삿갓의 마음이 이곳 안변에 더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날 사또에게 자기의 뜻을 말했더니 사또가 펄쩍 뛰었다. ​"이왕 방랑길에..

가련과 보내는 밤

김삿갓 31 - [가련과 보내는 밤] " 훈장 노릇이 그렇게도 괴로운 일 인가요 ? " "안 해본 사람은 모르지. 그러니 훈장님 훈장님 하지 말게." "그럼 뭐라 부르지요 ?" "자네 마음대로 .. "그럼 , 서방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 " "그거 좋군 ! " 두 사람은 여기서 말을 멈췄다. 가까운 곳에서 밤 개가 짖는 소리가 나는 듯 한데, 그 소리가 무엇엔가 파묻혀 아득하게 들린다. 이순간, 밖에서 눈이 내리는지 방안의 공기는 잠잠하고 촛불은 흔들림 없이 고요한 빛을 내고 있었다. 김삿갓은 갑자기 가련을 안아 보고 싶은 충동이 불같이 일어났다. "서방님. 서방님께서 지은신 시가 왠지, 소첩의 신세를 읊은 것 같아 눈물이 나려 하는군요." "아니 그건 내 신세타령을 한 것인데 자네 처지와 같다니 그건..

가련과의 은밀한 만남

김삿갓 30 - [가련과의 은밀한 만남] 김삿갓은 안변 사걸들이 넋을 잃은 것을 보자 심히 통쾌하였다. 뻘줌해진 연회 분위기는 가련이 때문에 바뀌었다. "참 훈장님은 시상이 무궁무진 하신가 봐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말이예요. 말이야 바로 말이지 요즘 세상에는 돈 있으면 양반 행세를 하잖아요?​ 족보도 산다는데요. 뭘." 가련이가 이렇게 말하자 문첨지가 호통을 쳤다. "예끼 이년, 방자하게 어디서 입방아를 찧느냐 ! 아직 젖비린내 나는 것이 뭘 안다고." "호호호, 첨지님은 항상 쇤네를 미워하시더라. 언제 살풀이를 해야겠어요." 가련이가 이렇게 받아넘기자 문첨지 입이 벌어진다. "살풀이 거 좋다. 네 집 안방에서 하자꾸나. 오늘밤에 가랴 ?" "아이, 서진사 어른 허락부터 받으셔요." "허허, 그런가 ?..

김삿갓의 양반 골려먹기

김삿갓 29 - [김삿갓의 양반 골려먹기] "아마 아흔 칸이 넘을 것이라고들 말하는 뎁쇼." 앞선 사령이 말을 하였다. 과연 그 정도가 될것 같았다. 김삿갓은 서진사가 거드름을 필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서진사 집에 당도했다. 집안은 잔치집 답게 사방에 초롱불이 밣혀져 있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 다녔다. 김삿갓은 누구를 찾을 것도 없이 성큼성큼 사랑채로 향했다. 그가 사랑방 앞에 당도하니 방안에서는 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 자연 양반 이야기가 나오면 그 녀석이 맥을 못출 것이 아니오 ? 첩의 자식도 어깨너머 글줄이나 익혀 문장깨나 할줄 안다고 거들먹 거릴수도 있으니 글 잘 한다고 모두 양반이겠소 ? 두고 보시오. 그놈도 서자 아니면 똑똑한 상놈일거요." 김삿갓은 이들이 자기의 내력에..

양반들의 김삿갓 골려먹기

김삿갓 28 - [양반들의 김삿갓 골려먹기] 사또는 빙그레 웃었다. 다른때 같으면 자기들의 유식함을 어떻게라도 드러내려고 별의별 문자를 섞어 되는 소리 안되는 소리를 하였을 것이나, 김삿갓의 시를 본 순간, 감히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 보이지 못했다. 사또는 이러한 그들의 심정을 가늠하는 터라 , 더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오늘 귀한 손님을 모신 자리라 특별히 비장한 술을 내놓았더니 모두 크게 취하는 모양이구료. 그럼 신기에 가까운 시를 감상하였으니 이제부터는 꽃이나 희롱하며 놉시다." 사또의 말이 끝나자 안변 사걸은 일제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연회는 밤이 늦은 후에 끝났다. 다음날 사또는 자기 방으로 김삿갓을 불렀다. 김삿갓이 사또의 방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사또의 큰 아들이 있었다. "인사올려라. ..

가련과의 첫 만남]

김삿갓 27 - [가련과의 첫 만남] ​"이따 밤에 벌어지는 연회는 이곳 안변지방에 내노라는 양반들이 모일겝니다. 내가 글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문자를 써가며 이야기를 하려고 무진 애를 쓸 것이오. 하며, 김선생을 보면 얕잡아 보려고 할 터인즉, 잘 알아서 골려 주시구려." ​사또는 빙그레 웃으면서 귀뜀을 해주고 다시 동헌으로 나갔다. ​이윽고 저녁이 되었다. 시회를 겸해 열리는 잔치는 동헌 곁에 있는 빈청에서 베풀어졌다. 초청받은 양반들은 이미 들어와 앉아 있었으며 기생들은 조붓하게 앉아 있다가 사또의 행차를 맞아, 일제히 일어서 예를 갖춘후, 사또가 상석에 앉자 일제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편, 김삿갓은 사또의 권하는 손짓을 보고 사또의 왼쪽에 앉게 되었다. ​"여러분들 잘 오셨소이다. 내 오늘..

김립 훈장(金笠 訓長)

김삿갓 26 - * 김립 훈장(金笠 訓長) ​ 학성산 서쪽에는 표연정이 있어 , 동쪽 가학루와 쌍벽을 이룬다. "가학루 보다는 서쪽에 있는 표연정이 더욱 좋으니 그쪽에도 한번 가보시죠." ​ 누가 그렇게 일러주기에 김삿갓은 서슴지 않고 표연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과연 표연정은 뛰어난 누각이었다. 주위에는 해송(海松)이 울창하고 숲속에서는 꾀꼬리가 영걸스레 울어대고 바다와 접한 남대천 일대는 갈매기가 부산스럽게 날아 다니고 있었다. 시흥이 도도해진 김삿갓은 누각위에서 시 한 수를 읊었다. ​ 표연정자 출장제 (瓢然亭子 出長堤) ​ 학거누혈 조독제 (鶴去樓穴 鳥獨啼) ​ 십리연하 교상하 (十里煙霞 橋上下) ​ 일천풍월 수동서 (一天風月 水東西) ​ 신선종적 운과묘 (神仙踪跡 雲過杳) ​ 원객금회 세모유 (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