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박영선생이 모셔진 송당정사를 찾아서

오토산 2017. 9. 5. 15:55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755

 

 

박영선생이 모셔진 송당정사를 찾아서

 

 

금오서원을 떠나 송당정사로 가면서 임하댐건설시 안동에서 해평으로

 이거하신분들이 물이 가깝고 들이 넓고 배산임수가 갖춰진곳을 찾아서

해평으로 78가구가 이거하여 살아가고 있었으나 근래에 들려보니

이 곳에도 3~4가구의 빈집이 발생되고 있다고 하시었고

송당정사 입구에는 철도터널이 좁아서 버스가 통과하지 못할것 같아

소형차를 준비했는데 버스로 통과, 모두들 운전하시는분께 박수를 쳤다.

 

松堂精舍는 조선전기 무신 송당 박영선생이 기묘사화때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후 학문을 닦던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으로 임진왜란때 불타고 200년후 재건했고 김취성,김취문,

박운,최응룡등 다수의 유학자를 배출하여 송당학파로 불리었다.

 

정사뒤에는 인조목으로 장식되어 있는 불천위 사당인 문목사가 있었고

정사앞에는 미수 허목선생이 지은 신도비가 있었으며

신도비 아래는 송당선생이 심었다고 전하는 모과나무가 한그루 있고

주변은 소나무숲으로  입구에 양옥으로지어진 종택과 명경당시비있었고

도방모티- 초곡-송당-구미보에 이르는 16.9㎞의 승마길이 조성되면서

쉼터도 조성하고 전통예절에 따라 말에서 내려서 선생에 대한 존의

예를 표시하도록 下馬碑를 세웠다고 한다.

 

松堂 朴英(1471~1540)선생은 1492년(성종 23) 무과 급제하여 선전관,조병장,

황간현감,동부승지,김해부사를 역임하였고 연산군이 성종이 기르던 사슴에

활을 쏘는 것을 보고 나라가 어렵겠다고 탄식하며 벼슬을 버리고 선산으로

은거 신당 정붕에게 대학을 강의 받고 마봉사에서 만번을 읽格物致知

 깨닫고 스승(정붕)과 냉산에서 대화한 冷山問答이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의학을 공부하여 귀중한 생명을 구했고 후세에 大學童子라 부르기도 하였다

 

송당선생의 19세손이신 목사님이 오셔서 송당선생은 양녕대군외손자

무관예학책 만권을 읽고 문과에 다시 합격하여 시호 文穆으로 내려졌고

4살위인 정붕선생을 스승으로 모셨고 퇴계선생은 독특한면이 있으나 기초가

 좀 허술하다 하셨다고 하며 뒷산은 태조산으로 고려 개국의 설화가 있으며

정사앞 낙동강에는 태조나루가 있었고 송당나루라 불리기도 하였다는 설명도

하여주셨다.

 

우리는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리고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을 찾아갔다.

PS 매년 음력 3월 10일 유림 4`30명이 모여 聚會를 한다고 한다.

 

세상사 한마디

정사입구의 明鏡堂 詩碑

有象非爲有(유상비위유)         형상이 있다하여 있는게 아니고

無形不是空(무형불시공)      형체가 없다하여 없는게 아니로다

實中知是實(실중지시실)  진실과 적중해야 진실을 알게 될지니

功外莫尋功(공외막심공)     스스로 쌓은 공외에 공을 찾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