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한강선생을 모신 회연서원을 찾아서

오토산 2017. 9. 18. 17:41


사진이 잘 보이지 ㅇ낳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783




한강선생을 모신 회연서원을 찾아서



2017.9.16. 어제는 한국전쟁이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였던 날이었고

오늘은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아카데미 제9기생들이 성주지역으로 현장답사를

나서  회연서원, 동강선생유허비, 심산선생생가, 세종대왕자태실, 한개마을을

담사하였고 첫 답사지는 회연서원이었다.


檜淵書院(회연서원)은 1583년 한강선생이 후진양성을 위해 성주군 수륜면

 陽亭鳳飛岩 기슭에 檜淵草堂을 지어 尊賢養士의 실현을 위하여 강론하던곳으로

1627년(인조 5) 서원이 되었고 1690년(숙종16) 12월 사액서원으로 칙령되었고

1871년(고종 8) 훼철되었다가 1974~1984년까지 복원하여 위판을 봉안하였으며

서원에는 선생의 문집 <심경발휘>가 보관되어 있고 현판은 한호의 글씨라 한다.


서원건물은 현도루(見道樓),강당(景晦堂),동재(明義齋),서재(持敬齋),전사청,신도비.

유물전시관,신문,구사당,신사당등이 있고 양현청은 서원철폐시 없어졌다고 한다.


舊사당에는 한강선생을 주향으로 석담 이윤우선생이 종향으로 배향되어 있고

新사당에는 신연 송사이, 용재 이홍기, 육일한 이홍량, 모재 이홍우, 동호 이서

등 한강과 동년배로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의 위판이봉안되어 있다.


寒岡 鄭球(1543~1620)선생은 청주정씨로 아버지는 김굉필의 외증손으로

충좌위 부사맹 정사중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 이환의 딸이며 6대조 정충과

그의 아우인 정탁이 개국공신에 책봉되어 공신가문으로 한양에 살았으나

아버지가 외가쪽인 성주에 정착을 하였다고 한다.


5세때 신동으로 불렸고 10세에 대학과 논어의 대의를 이해하고

15세때 성주향교 교수(오건)에게 주역 乾.坤괘를 배우고 나머지를 깨달았으며

1563년 퇴계를, 1566년 남명을 스승으로 삶았고 1563년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연구에 전념하다가 1580년 챵녕현감을 시작으로 함안군수,

동북현감 교정청낭청을 지냈고 임진왜란시 통천군수로 의병을 일으켰고

전란후 안동부사,우부승지,강원도관찰사,형조참판,대사헌을 지냈고

文穆시호가 내려지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2014.10.답사시 보수중이라 구경을 할수 없었으나 오늘은 상세히 볼수 있었고

한강선생이 안동부사로 근무시 박봉으로 퇴계선생을 극진히 모셨다고 하며 

동강 김우옹선생과 함께 성주의 兩岡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유물전시관과 서원경내를 돌아 무흘구경의 제1경인 봉비암에 올라서

 주변을 보고 서원앞의 백매원과 무흘공원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해설사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는 동강선생유허비를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小小山前小小家  변변찮은 산앞에 자그마한 초당이라

滿園梅菊逐年加  동산가득 매화 국화 해마다 늘어난다

更敎雲水粧如畫  개다가 구름냇물 그림같이 꾸며주니

擧世生涯我最奢  세상에서 내생애 누구보다 호사롭네

-회연초당 정구_





















백매원(퇴계선생와 같이 매화를 좋아하여 백그루의 매화를 심었고 백년생 매화나무도 있다고 한다)














완연대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곡중 4곡은 성주   5곡은 김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