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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동강선생신도비와 심산선생생가를 찾아서
회연서원을 나서서 동강 김우옹선생의 신도비와 묘소가 있는 대가면 목화리와
심산 김창숙선생의 생가가 있는 칠봉리를 찾았다.
東岡金宇顒선생신도비는 조선 선조때의 문신 학자인 동강선생의 업적을
기록한것으로 1723년(영조 1)에 건립되었고 비문은 갈암 이현일에 의해
1689~1704년간 지어졌고 글씨는 미수 허목의 글씨를 집자하여 사용하였으며
거북형상의 비좌와 비신, 두마리의 용을 조각한 비두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 높이는 404㎝로 비좌(250×780×88)와 비두(50×47×100)는 화강석이고
비신(104×28×216)은 烏石으로 한강 이남에서 제일 크다고 하며
신도비 바로 뒷편에는 동강선생의 묘소가 있었으나 묘소는 가지 못했다.
東岡 金宇顒(1540~1603)선생은 본관은 의성으로 삼척부사 의삼의 아들로
남명문인이며 1558년(명종12) 진사, 1573년(선조 6) 홍문관정자 임명, 이조좌랑,
홍문관직제학,대사성,대사간,부제학,전라도관찰사,안동부사등을 역임하였다.
망우당 곽재우와 동서사이 이고 남명선생의 외손서이며 남명선생이 돌아가실때
본인이 가장 아끼던 칼을 정인홍, 방울을 김우옹 두제자에게 주었다고 전하며
1586년 안동부사, 1595년 학봉의 충성을, 1598년 서애의 억울함을 밝히는등
안동과의 인연이 있기도 하다고 이정철 연수부장님은 이야기 하였다.
동강선생은 한강 정구선생과 함께 성주 兩岡으로 알려져 있다.
心山金昌淑생가는 유학자,독립운동가,정치가로 조국의 독립과 교육진흥,
반독재투쟁에 일생을 바친 심산선생이 1879.7.10. 태어난 집으로
1901년 지은 안채와 1991년 건립한 사랑채, 판각고로 되어 있으며
인근에는 1729년(영조 5) 동강선생의 위판을 모신 청천서원이 복원되었고
대원군의 서원철폐시 청천서원이 췌철되자 동강선생의 12세손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晴川書堂으로 중건하였고 1910년 김창숙이 서당을
수리하여 星明學校로 활용하면서 애국애족운동을 하던 곳도 있었다.
心山 金昌淑(1879~1962)선생은 봉화 의성김씨에서 양자한 김호림과
어머니 인동장씨 사이에 태어난 유학자,독립운동가,정치가로 조국독립과
교육진흥,반독재투쟁에 일생을 바쳐왔으며
1903년(광무7) 星明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였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7년(49세) 본인은 14년형을 선고받고, 장남이 일제고문으로 순국,
1928년(50세) 일제고문으로 두다리가 불구가 되었고 56세 병세악화로 가출옥,
1940년(62세) 어머니별세후 21년만에 귀향하여 시묘살이를 하였다고 하며
1946년(68세) 유도회총본부 위원장과 성균관장 검직, 성균대학 초대학장 취임,
68세(1946)때 성균관대학 설립과 초대총장을 하였으며 해방후에도
독재정권에 항거하다가 1962년 돌아가셨다.
3년전 생가를 찾았을때는 평생동안 심산선생을 수발하며 함께 지내셨다는
둘째며느님이 혼자 생가를 지키고 계셨으나 지난해 돌아가셨다고 하며
현재는 생가는 비어있었고 청천서당은 잠겨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한계마을과 세종대왕자태실 답사를 한다.
세상사 한마디
나는 대한사람으로 일본법률을 부인한다
일본 법률론자에게 변호를 위탁한다면 대의에 모순되는 일이다
나는 포로다 포로로서 구차하게 살려고 하는것은 치욕이다
결코 내지조를 바꾸어 남에게 변호를 위탁하여 살기를 구하지 않는다.
- 김창숙선생 대구형무소 옥중투쟁중에서(1928년)-
뒷편이 동강선생 묘소
전면이 훼손된 비두
비신에는 탁본흔적이 남아 있어 훼손으로 오해를 하기도~~
자판기가 아닌 맞춤커피를 먹을수 있었어요~~~
마을에서 만난 장미꽃과 전복영양밥으로 맛있게 먹었던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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