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거경대학에서 문경 산북 근암서원을 다녀와서

오토산 2018. 6. 23. 05:13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406



거경대학에서 문경 산북 근암서원을 다녀와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에 있는 근암서원에서 향토사학자 황용근씨로 부터

문경시와 근암서원에 대한 유래설명을 듣고 경전암송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근암서원(近嵒書院)은 1551년(명종6) 상주목사 영천자 신잠이 세운 18서당의

하나인 영빈서당을 모태로 1544년(중종39) 근암서당으로 설립되었다가 1665년

우암 홍언충을 배향한 향현사가 되었고 1669년(현종10)  한음 이덕형을 추배,

서원으로 승원하였으며 1702년(숙종 28) 사담 김홍인, 목재 홍여하를 추가배향,

1786(정조 10) 활재 이구, 식산 이만부, 청대 권상일을 추배하여 칠현사가 되고

1868년 훼철하였다가 1982년 유림과 후손들이 사당과 강당을 복원하였다가

2011년 문경시에서 사당, 강당, 동.서재, 문루등 옛모습을 복원하였다.


우암 홍언충(寓菴 洪彦忠 1473~1508) 1495년 중광문과 을과 급제하였고

이조좌랑,수찬, 서정관등을 거쳤고문장에 능하고 예서(隸書)를 잘 섰으며

 정순부, 이택지,박중열등과 함께 당대 사걸(四傑)이라 불렀다.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 1501~1613)은 대사간, 대사성, 대제학, 영의정등을

두루 거쳤고  남인출신으로 북인 이산해의 사위가 되어 중간 노선을 가다가

뒤에 남인에 가담하였고 이항복과 절친으로 일화가 많이 전하고 있다.

사담 김홍민(沙潭 金弘敏 1640~1594) 1570년 문과 급제하여 이조좌랑, 사인,

전한등을 거쳤고 임진왜란때 의병을 규합하여 적의 통로를 막아 공을 세웠다.


 목재 홍여하(木齋 洪汝何 1620~1674)는 문광공 홍귀달의 5세손으로 1654년

식년문과 급제하여 경성판관등을 지냈으며 사서에 통하고 주서에 전심하였다.

활재 이구(滑齋 李榘,1613~1654)는 효령대군의 8새손으로 정주학과 퇴도학에

전념하여 후진에게 이기의 진수를 논강하고 많은 저서를 남겼다.

식산 이만부(息山 李萬敷 1664~1733) 본관은 연안으로 정주학을 탐구하고

성학에만 몰두하여 저술과 후진양성에 노력하였다.

청대 권상일(淸臺 權相一 1679~1759) 1710년(숙종36) 중광문과 급제하여

대사간,문관부제학,지중추부사,대사헌등을 역임하였고 국사를 수찬하였으며

영조가 어필 16자를 하사 격려하였고 1728년 무신난을 미리알고 보고하여

대비하였으며 퇴계선생을 사법(師法)으로 하여 '理는 본연의 性이며 氣는

기질의 性이라' 주장하였고 시호는 희정이다


근암서당의 강당에는 전교당이라는 편액과 흥교당이라는 편액이 양쪽으로

걸려 있었으며 황용근씨는 산양과 산북지역은 상주땅이었다가 1914년 문경으로

편입되었고 1930년대까지는 호랑이도 많이 나타났으며 근암서원은 문경지역의

영남만인소의 발의와 의병집결지로서의 역할도 하였다는 설명을 듣고

경전독송을 한후 점손의 수라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세상사 한마디

과거는 후회스럽지만 현재는 기쁘게 살고있고

미래는 설레이면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몸은 늙었지만 젊게, 나이는 많지만 싱싱한 영혼으로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