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성주 한개마을 한주종택을 다녀와서

오토산 2018. 7. 1. 11:44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ㅣ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421



성주 한개마을 한주종택을 다녀와서



한개마을에 들어서니 정재우해설사가 마을 현황을 설명한다.


한개마을 세종때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입향하여 개척한 성주이씨 집성촌으로

마을의 뒷산에는 감응사란 사찰이 있는데 신라 애장왕이 늦게 아들을 얻었으나

왕자가 눈병으로 앞을 보지 못하여 왕비가 기도하던중 노인이 나타나서

"아침 집앞에 독수리를 따라가면 약수터가 있으니 약수를 떠다가 바르고 먹여라"는

 이야기를 듣고 약수로 눈을 고쳐 약수앞에 절을 지어 감은사(感恩寺)라 하였고

그 후 감응사(感應寺)로 변경하였되어 지금도 내륙에선 유일하게 용왕신모시고

  이 산을 영특한 독수리 뜻으로 영취산(靈鷲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대과급제자들이 광대를 데리고와서 마을에서 축제를 벌이던 광대거리

진사댁을 자나 교리댁의 왼쪽 문에는 울루(鬱壘), 오른쪽 문에는 신다(神茶)라는

글씨기 붙어 있었는데 원래 이렇게 써서 귀신으로 부터 보호받던 비방이었는데

일제시대부터 입춘방 입춘대길 건양다경으로 바뀌어 쓰게 되었다는 설명도 들으며

사도세자의 호위무사였던 이석문 신도비와 응와고택, 북비고택등을 돌아보며

마을안의 담장 3.4㎞가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마을을 60년대 모습으로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한주종택으로 갔다.


한주종은 이승희의 생가로 1767년(영조 43) 이민검이 창건하고

1866년(고종 3) 한주 이진상이 중수하였으며 아들 한계 이승희, 손자 삼주 이기원,

 백계  이기인이 독립운동가로 훈장을 받았다.

안채공간과 사랑채공간이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있었고

사랑채 정자(寒水亭)는 경관이 아름다워 영화에 자주 등장하며  

방지원도(方地圓島)의 연못에 천원지방사상을 담고 있으며

여러가지 현판이 많이 걸려 유학의 도를 전하고 있었다.

한계 이승희(韓溪 李承熙 1847~1916)는 1908년 블라보스톡으로 망명하여

이살설, 안중근, 류인식과 함게 독립운동을 전개 하였으며

1909년 러시아 국경지대 밀산현 봉밍산애 독림운동기지 한흥동(韓興洞) 건설

1913년 한인공교회(韓人孔敎會)를 창설 유교의 실천이념을 주장하였고

을사오적 척결, 국체보상운동등에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한개마을을 한바퀴돌면서 마을의 유래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은후

한개마을을 나서는데 회원 한분이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하신다

 조속히 회복되시길 빌며 우리는 구미의 왕산 허위선생기념관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오늘 있었던 좋은일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내일은 어떻게 좋은일을 만들어 갈까를 생각하며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기뻐하는 하루를 지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