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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자양 충효재를 다녀와서
입암전투지에서 영천 자양면 충효리(검단동에서 두분을 추모하기 위해 명칭변경)에
있는 정환직.정용기 의병장의 생가터 충효재와 두분의 묘소를 찾아갔다.
충효재(忠孝齋) 정환직.정용기 의병장을 추모하기위해 1923년 건립하여
1987년 보수하였다고 하며 주차장에는 추모비와 사적비가 서 있었고
호국문(護國門)을 들어서니 "고종황제밀조 짐망화천지수전세비 高宗皇帝密詔
朕望華泉之水傳世碑"가 서 있었고 충효재(忠孝齋)에는 숭의당(崇義堂)과
창렬당(彰烈堂)을 두어 추모하고 있었으며
마을 뒤편 묘지에는 두분의 묘소와 비석이 서 있었고
장명등,문인석,무인석, 사자석이 양쪽으로 줄을지어 묘지를 수호하고 있었다
여러 묘지를 보았지만 이렇게 여러가지 석물이 있는곳은 드물었고
혹시 너무 화려한것은 아닌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정환직(鄭煥直 1844~1907)은 본명을 치우였으나 고종이 환직으로 하사,
12살에 향시에 장원하고 구휼을 하기 위해 의술을 배워서 병조판서의 추천으로
1887년(고종24) 태의원에 들어가 1899. 11, 종묘에 불이 나자 고종을 대피시킴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종의 밀지를 받고 서울에서 의병을 후원하며
아들 정용기(鄭鏞基 1862~1907)를 영천으로 내려보내 1907.3. 산남의진을
일으켜 경북 동북부, 내륙, 경남 일부에서 활동하며 북상하여 강릉을 거쳐
서울로 진격하려 하였으나 1907.9.1. 입암전투에서 정용기 대장이 전사하자
본인이 내려와 의병대장을 맡아 북상하다 1907.11.6. 청하에서 체포되어
대구로 압송 11.16. 풀려나 영천으로 오던중 영천 조영각에서 총살순국하였다.
산남의진은 고종의 밀지로 창의되고 아들에 이어 아버지가 의병대장이 되었고
관동지역으로 북진을 도모하였다고 한다.
충효재를 나와서 영천댐을 돌다가 영천댐 망향공원전시관에 들렸다.
두개의 댐이 있어 망향의 아픔도 이해하고 안동댐물이 영천댐를 거쳐 포항으로
간다는 사실에 보람도 느끼는 안동사람들에게는 더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전망대에서 영천댐 맑은 공기를 마신후 청통휴게소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은후 성주에 있는 한개마을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어제를 아쉬워하거나 내일을 염려하기 보다는
주어진 오늘을 사랑하고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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