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남명선생을 모신 덕천서원을 다녀와서

오토산 2018. 11. 8. 23:32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 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712



남명선생을 모신 덕천서원을 다녀와서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입동날(11.7.)  안동향교에서

장의(掌議)들과 의례보존회원(儀禮保存會員)들이 경남 산청으로 연수를 떠났다. 

동명휴게소와 함양휴게소에 잠시 휴식한 버스가 도착한 곳은 덕천서원이었다.


덕천서원(德川書院)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 내린 덕천이 덕산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곳에 산림처사였던 남명 조식(1501~1572)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576년 문인들이 서원을 세워 덕산서원이라 부르다가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1602년 중건되고 1608년 영의정에 추증되고 덕천서원으로 사액되면서 확장하여

 강우유림(江右儒林)들의 강학공간이었으나 대원군 서원철폐령시 훼철되었다가

1926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남명 조식(南冥 曹植 1501~1572)선생은 합천군 삼가면 토동의 외가에서 3남 2녀중

 2남으로 태어나 벼슬길에 나선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다니며 학문을 배우면서 백성들 

어려움을 보아왔고 기묘사화(19세)로 숙부가 화를 입는 정치폐단을 슬퍼했으며

30세에 처가가 곳 김해 신어산에 산해정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며 제자들을 가르쳤고

48세에 고향 삼가로 돌아와 뇌룡정과 계부당을 짓고 제자들을 길렀으며

55세(1555 명종10)에 부패로 민심이반과 국방강화를 위한 단성소(丹城疎)를 올렸고

61세에 지리산아래 덕산으로 옮겨 산천재를 짓고 후진양성을 하였으며

1572. 2. 8. 산천재에서 운명하시자 선조가 제문과 제물을 내렸다고 한다.


덕산서원 숭덕사에서 참배를 하고 해설사님으로 부터 서원의 유래와

남명선생의 일생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고 서원을 구경하였으며

서원입구에는 은행나무 고목이 노란빛깔로 가을을 슬퍼하고 있었고

서원입구의 홍살문과 찹배시 입은 제복 등 다른 곳에서 볼수없었던

모습들을 보면서 참배를 할수있게 도와주신 서원관계자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는 산천재를 찾아 갔다.


세상사 한마디

春山低處无芳草(춘산저처무방초)             봄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만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천왕봉이 하늘가까이 있는것을 사랑해서라네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식)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먹고 살겠는기?

銀河十里喫猶餘(은하십리끽유여)       십리 흐르는 은하 같은물 먹고도 남으리

<덕산에 터를 잡고서(德山卜居) 남명선생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