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남이장군이 모셔진 충무사를 다녀와서

오토산 2018. 11. 1. 01:12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705




남이장군이 모셔진 충무사를 다녀와서



만옥정공원을 떠나 금년 4월 28일 준공하였다는 남이장군의 조부 남휘(南暉)와

 조모 태종의 4녀 정선공주의 묘역남이장군사당 있으며 기마상이 있는  

충무사(忠武祠)를  찾았더니 의령남씨 문중어른들이 마중을 나오셨다.


월요일이라 휴일임에도 우리가 방문한다고 특별히 참배를 안내하신다고 하며

오늘 참석하신 남시창, 남시화 회원님들의 덕분으로 좋은 여행이 되었다.


남이(南怡 1443~1468)장군 시조가 신라 영의공 민(敏)이시고 의령관조는

군보공(君甫公)의 9세손으로 5세조는 조선개국공신 의령부원군 영의정 충경공

 재(在)이고 7세조 소간공 휘(暉)가 할아버지, 정선공주가 할머니로서

어려서부터 비범한 인물이었으며 6세에 여종의 치맛자락을 기둥을 들어 누루었고

13세에 산적 두목과 그 무리를 주먹으로 타살하였으며 15세에 분두귀를 뒤쫒아

좌의정 권람의 딸을 구명하여 권람의 사위가 되었고 17세에 무과 장원급제하여

26세에 병조판서로 제수되어 류자광의 모함으로 역모누명을 쓰고 참형받았으며

숙종36년 개사봉축하였고 순조 무인에 신원설치로 관직복구, 충무공시호가 내렸다.


충무사(忠武祠)는 남이장군의 사당으로 순조21년에 구봉서원에 배향하였으나

고종 8년에 철폐되었고 남문의 후예들이 성금을 모아 2014년 6월 착공하여

2018년 4월 준공하였다.


남이장군기마상은 남이장군이 이시애 난 평정과 압록강 건너 오랑케 토벌 등

10여년간 전장(戰場)을 누비며 생사고락을 같이 한 애마 총(聰)의 모습으로

기마상 아래에 모여 정동진 회원님이 시를 읊고 권경웅 회원이 시조창을 하여

더욱 의미있는 답사가 되었다.


남휘(南暉)와 정선공주 묘역에서 김회동 회원의 집례로 참배를 하고

충무사에 알묘하며 전시관에서 남이장군의 흔적들을 구경하고 나서

날으는 모습을 한 적마(赤馬)를 타고 달리는 기마상앞에서 기념촬영하고

문중 어른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부곡 온천지구를 찾았다.


그 옛날 온천관광을 다녔던 부곡하와이는 38년간의 추억을 간직한채로

2017년 5월 28일 폐업을 한다는 안내판이 쓸쓸히 지키고 있었고

우리는 한성호텔 남영섭 사장님의 따뜻한 배려로 

 78℃의 물을 식혀서 뜨끈한 온천욕을 즐기고 안동으로 돌아왔다.


안동에서 그 옛날 아지매의 초성이 아름다웠던 서울복어를 찾아서

저녁을 먹고 오늘 행사를 마무리하였다.


오늘행사를 있게 하신 김필숙 담임선생, 임시회장을 맡으신 정동진 회장님,

일정을 협의하신 남시창. 남시화 회원님, 한전 강지사장님, 남영섭 사장님,

안전운행을 하신 권영억 사장님 등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함께 하신 모든 회원님들께도 감사와 더욱 건강하신 나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사 한마디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평(平)자가 득(得)자로 바뀌면서 역적 모함이 되어 충신을 참형한 남이장군의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