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포은 정몽주선생을 모신 임고서원을 다녀와서

오토산 2019. 11. 20. 23:43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2412



포은 정몽선생을 모신 임고서원을 다녀와서



영천시민회관에서 유림총화대회를 마치고 우리 일행 30명은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에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신 임고서원을 찾아갔다.


임고서원(臨皐書院)은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1553년(명종 8) 부내산에 창건하여 1554년 사액되었으며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가

1603년(선조36) 현위치에 이건하고 다시 사액되었고

1643년(인조21) 장현광과, 1787년(정조11) 황보 인을 추가배향하고 1871년 훼철,

1919년 존영각을 건립하여 영정을 모시고 향사를 지내왔으며

1965년 복원되어 포은선생만 복향하였고 1980년 정비사업을 하여 황보인을

추가배향하였다.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선생은 1337(충숙왕 복위 6) 임고면 우향리에서 태어나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장원, 예문관검열 등을 거쳐 성균관대사성, 문하시중 등을

역임하고 조전원수가 되어 왜구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대명 외교에도 큰공을 세웠고

지방관 비행을 근절시키고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였으며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지조로 추앙되었고 시문, 서화에도 뛰어났다.


고려삼은의 한사람으로 기울어져 가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으나

1392년(공민왕 4) 선죽교에서 피살되었으며 1401년(태종원년) 영의정에 추증되고

익양부원군에 추봉되었으며 문충의 시호가 내려졌다.


선죽교(善竹橋)는 개성의 자남산 남쪽개울에 있는 다리로 왕건이 919년

송도시가지 정비할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8.35m, 너비 3.35m의 화강석

다리로 정몽주선생이 이방원의 일파에게 피살된 장소이며 원래 선지교(善地橋)라

불렀으나 선생이 피살되던날 다리옆에서 참대가 솟아 나왔다고 하여 선죽교로 고쳐

 불렀고 임고서원 입구에는 그 규모대로 가설하고 한석봉이 쓴 선죽교 돌비석을

탁본하여 세워두고 있었다.


우리가 임고서원을 찾은시간은 오후 네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오늘 행사에 참여했던

여러지역의 유림들이 많이 찾고 있었으며 영광루(永光樓)를 지나

흥문당(興文堂) 앞에서 단체사진을 한 컷하고 포은유물관을 들렸다가 안동으로

돌아오니 낙동강에는 노을이 발갛게 물들었고 월령교 야경도 아름다웠다.


이정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시청앞에서 해산하여 오늘을 마무리 하였다.

오늘행사를 준비하신 안동향교 전교님과 사무국장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루를 함께 보내신분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마라

선낸 까마귀 흰 빛을 새올세라

청강(淸江)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

<포은선생의 白鷺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