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열국지(熱國誌)《항우의 금의 환향.》

오토산 2020. 5. 7. 19:18

열국지(熱國誌)63

 항우의 금의 환향(錦衣還鄕).

 

 항우는 <초패왕>에 즉위하고 나서부터는

범증을 매우 고깝게 여기며 장량의 말에만 귀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왕도(王都)를 함양이 아닌 다른 곳에 정하고 싶었다.

 그 문제에 대해 범증이 의견을 냈다.

 

"왕도는 반드시 요해지(要害地)로 정해야 합니다.

이곳 함양은 사방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침(外侵)의 우려가 없는 유서 깊은 도읍지인 데다가, 

 땅도 비옥하여 물산이 풍부하옵고 또, 다른 곳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은

 백성들의 부역과 국력의 소모도 클 것이니 재고하셔야 하옵니다."

 그러나 항우는 대뜸 고개를 가로 흔든다.

 

"나는 함양을 도읍으로 정할 생각은 꿈에도 없소."

 

"그러면 어디 , 생각해 두신 다른 곳이라도 있사옵니까 ?"

 

"나는 침주를 왕도로 정할 생각이오."

 

너무도 뜻밖의 대답에 모든 중신들이 한결같이 놀랐다.

 <침주>라는 곳은 , 함양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벽지(僻地 : 후미진 곳) 였기 때문이었다.

 범증도 깜작 놀라며 되묻는다.

 

"침주는 너무나도 낙후된 벽지입니다.

어찌하여 그런 곳을 왕도로 삼으려고 하시옵니까 ?"

 항우가 대답한다.

 

"함양은 진나라 땅이지만 침주는 초나라 땅이오.

 초패왕인 내가 초나라 땅을 버리고 어찌 진나라 땅에 도읍을 정하겠소 ?"

 

범증은 그 대답을 듣고, 항우의 옹졸한 생각에 아연 실색하였다.

 그러나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어 다시 간한다.

 

"물론, 함양은 옛날에는 진나라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점령하신 지금에는 함양은 어엿한 초나라 땅이옵니다.

그러하니 함양을 도읍지로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항우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한다.

 

"몸이 귀하게 되어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마치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이 볼 품없는 일이오.

 내가 지금처럼 귀한 몸이 되어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누가 나를 알아주겠소.

 그런 이유로 나는 고향으로 금의 환향(錦衣還鄕)을 하려고

  첨주에 도읍을 하려는 것이오."

 범증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통탄해 마지 않았다.

 

(아아, 이 사람은 대진제국(大秦帝國)을 정벌해 놓고 나서도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초나라뿐이로구나.

이런 무식하고 우매한 항우를 주공으로 받들고

천하를 도모해 보려고 하는 내가 너무도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 )

 그러나 이제 와서 항우를 배반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범증은 울분을 삼키며 항우에게 다시 물었다.

 

"침주를 도읍지로 결정하시는데 있어,

대왕께서는 혹시 장량의 의견을 들어 보신 일은 없으십니까 ?"


 범증이 느닺없이 장량의 애기를 물어 본 것은 혹시나

 장량이 배후에서 항우를 부추켰나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항우는 이렇게 대답한다.

 

"장량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도 역시 침주를 새로운 도읍지로 정하는데 대해서 대찬성합디다."

 

"엣 ?

  그 사람이 무슨이유로 ... ?"

 

"사람은 누구나 부귀해지면 <금의 환향하는 본능>이 발동하는 법이니까,

나의 도읍지로서는 침주가 좋겠다는 거였소."

 

 범증은 그 대답을 듣고 침통한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장량이 뒤에 숨어서 항우를 망하게 만들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범증은 정색을 하고 다시 말한다.

 

"대왕 전하 !

장량이라는 자는 유방을 위해 대왕을 망하도록 꾸며 가고 있는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그런 자를 살려 두었다가는 커다란 화를 입게 되실 것이니, 국

가의 백년 대계를 위해 그자를 죽여 버리셔야만 하옵니다."

 

 범증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

항우는 크게 노하며 범증을 호되게 꾸짖는다.

 

"군사는 어찌하여 사사 건건 자방을 헐뜯기만 하오.

내가 자방을 가까이한다고 투기(妬忌)를 하시는 게요 .... ?

  쯔쯧 ... ! 사내 대장부는 투기를 해서는 못쓰는 법이오."

 

범증은 항우의 말을 듣고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 ,

입을 굳게 다문채 항우의 앞을 물러나오고 말았다.

 

 항우는 도읍을 침주로 옮겨 오자, 대왕으로서의 위세를 보이기 위해

모든 장수들에게 논공 행상(論功行賞)을 성대하게 베풀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일시에 많은 돈이 필요하였다.

 초패왕 항우는 범증을 불러 상의한다.

 

"모든 장수들에게 상금을 주려면 막대한 돈이 있어야 하겠는데,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겠소 ?"

 범증이 대답한다.

 

"함양에 있는 진나라 창고에는 많은 금은 보화가 있을 것이오니,

  사람을 보내 가져오면 되겠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함양으로 사람을 보내

금은 보화를 모조리 침주로 가져 오라고 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빈손으로 돌아와 항우에게 이렇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함양에 가 보았사오나,

 진나라의 창고는 모두가 텅텅 비어 있었사옵니다."

 

실상인즉, 전쟁에 승리하고 나자 항우의 부하들은 진나라 창고로 달려가

 보물들을 죄다 훔쳐갔건만 항우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기에 항우는 크게 놀라며 범증을 불러 묻는다.

 

"진나라 창고에는 금은 보화라곤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보이질 않터라던데 ,

이거 어떻게 된 일이오?"

 

 범증에게는 금은 보화가 없어진 일 따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금은 보화를 산더미처럼 가지고 있은들,

유방에게 천하를 빼앗겨 버리는 날이면 보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기에 범증은 이 기회에 보물이 없어진 죄를

유방에게 뒤집어 씌워 가지고 그를 죽여버릴 계획을 또다시 세웠다.

 그리하여 항우에게 말한다.

 

"진나라의 보물들이 깡그리 없어졌다면, 그것은 패공이 가져 갔음이 분명합니다.

 패공이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그 보물에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대왕께서는 패공을 불러다가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시도록 하시옵소서."

 

"음 ...

그렇다면 사람을 보내 패공을 곧 불러오도록 하오.

만약 패공이 나도 모르게 보물을 맘대로 처분했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오."

 

 항우는 크게 노하며 유방에게 호출장을 보냈다.

 장량이 그 사실을 알고 비밀리에 사람을 먼저 보내 유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항왕(項王)이 패공을 부른 것은 진나라 창고에 있던 보물들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패공은 호출장을 받으시는 대로 항왕을 찾아오시옵소서.

그래서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묻거든

그 일은 장량이 잘 알고 있다고만 대답하시옵소서.

그러면 제가 책임지고 모든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방은 장량의 사전 통고를 받아 보고,

호출장을 받는 즉시,마음놓고 항우를 찾아왔다.

 항우는 유방을 만나자 대뜸 큰소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함양에 먼저 들어간 사람은 내가 아니고 패공이었소.

진나라 창고에 가득 차 있던 금은 보화가 모두 없어졌다고 하니,

패공은 그 물건들을 어디다 갖다 두었소 ?

만약 그 물건들의 소재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나는 패공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오."

 유방은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대답한다.

 

"저는 군무(軍務)가 다망(多忙)했던 관계로,

보물 따위는 장량에게 점검해 보도록 일렀습니다.

마침 장량이 이곳에 체류하고 있으니, 그를 불러 물어 보시도록 하시옵소서."

 항우는 그 말을 듣고 즉석에서 장량을 불러 따져 묻는다.

 

"자방은 진나라 보물의 소재를 잘 알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지금까지 그 일에 대해서는 나에게 일언 반구의 말도 없었소 ?"

 그러자 장량이 대답한다.

 

"진나라 보물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물어 보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저는 아무 말씀도 여쭙지 않고 있었던 것이옵니다."

 

"그러면 그 보물들이 어디 있는지 어서 말해 보오."

 장량은 진나라 보물들에 관해 항우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진나라에서는 일찍이 효왕(孝王)과 소왕(昭王) 때부터 보물을 모으기 시작하여,

시황제의 시대에 와서는 그 수효가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시황제는 여산(驪山)에 자기 자신의 거대한 제능(帝陵)을 축조하는데

 많은 재화를 소비하였고, 그가 죽은 뒤에는 나머지 보물들을

모두 부장품(副葬品)으로 무덤 속에 넣어 버렸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적이 실망하였다.

 

 "아니 아무리 그렇기로,

그 엄청난 보물들을 설마 송두리째 무덤 속에 넣어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 아니오.

상당수 보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 틀림이 없을 것인데

그것은 어디에 있단 말이오 ?"

 장량이 다시 대답한다.

 

 "대왕께서 물으신 대로 시황제의 부장품을 파묻고 나서도

 보물들이 상당히 많이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세 황제의 생활이 워낙 사치스럽기 짝이 없어서

그 역시 많은 보물들을 아낌없이 탕진해 버렸고,

그가 죽은 뒤에도 많은 보물들을 역시 부장품으로 무덤 속에 넣었다고 합니다.

두 차례나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지금에야 무슨 보물이 남아 있으오리까."

 

 "그러면 지금 남아 있는 보물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오 ?"

 

"지상에 남아 있는 보물은 거의 없사옵니다.

그러나 무덤 속에는 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므로

 만약 대왕께서 보물이 기어이 필요하신다면 무덤을 파헤치도록 하시옵소서.

그러면 모든 보물을 고스란히 손에 넣으실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서 범증을 불러 말한다.

 

"진나라의 보물들이 모두 시황제의 무덤 속에 들어 있다고 하니,

 무덤을 파헤치고 그 보물들을 꺼내어

 모든 장수들의 논공 행상때 나누어 주는 것이 어떻겠소 ?"

 범증은 그 말을 듣고 대경 실색하였다.

 

 "제왕의 능을 파헤친다는 것은 도의(道義)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자고로 부장품이란 죽은 사람이 생전에 애용하던 물건을

무덤 속에 함께 파묻는 것을 말하는 것이온데,

시황제의 무덤 속에 얼마나 많은 보물이 들어 있다고

무덤까지 파헤치려 하시옵니까 ?"

 그러자 옆에 있던 장량이 웃으며 범증에게 말한다.

 

"군사는 실정을 잘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오.

 시황제의 무덤으로 말하면,

둘레가 80리나 되고 높이가 50척이 넘는 거대한 무덤이라오.

규모가 어떻게나 큰지 무덤 속에는 주옥(珠玉)으로 북두칠성과 은하수도 꾸며져 있고,

 보석으로 지하 궁전까지 만들어 놓았다고 하오.

그러하니 무덤을 파헤치기만 하면

갖은 금은 보화가 쏟아져 나올 것이 자명한 일이오."

 

 항우는 장량의 말을 듣고 시황제의 무덤을 기어이 파헤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범증에게 명한다.

 

"속히 병사들을 동원하여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쳐 보물들을 수거(收去)하시오."

 범증은 기가막혔다.

누구의 무덤임을 막론하고

 무릇 무덤이란 함부로 파헤쳐서는 안 될 신성한 것이다아닌가 .

하물며 여염 사람의 무덤도 아닌 제왕의 무덤임에 있어서이랴.

 

물론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치면,

 무덤 속에서 엄청난 보물들이 쏟이져 나올 것을 범증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보물에 눈이 어두워 제왕의 무덤을 파헤치면

 백성들은 항우의 무지막지한 행실을 얼마나 저주할 것인가.

 

 장량은 그러한 결과가 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덤을 파헤치라고 항우를 부추기고 있으니,

그것은 항우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항우는 장량의 그러한 음모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으니, 범증은 기가 막힐밖에 없었다.

 범증은 한숨을 쉬며 다시 간한다.

 

"대왕 전하 ! 진시황이 비록 잔인 무도한 임금이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무덤은 신성 불가침한, 제왕의 무덤입니다.

 수하를 막론하고 그의 무덤을 함부로 파헤칠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이제 만약 그의 무덤을 파헤쳐 보물들을 꺼내 보십시오.

그러면 백성들이 그 일을 얼마나 저주할 것이옵니까.

대왕은 이번에 새로 즉위하신 어른이시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인정(仁政)을 베풀어 민심을 얻으셔야 하오니,

진시황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만은 삼가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나 일단 결심한 항우에게 그러한 간언이 먹혀 들어갈 리가 없었다.

 항우가 범증을 나무란다.

 

"군사는 내가 단순히 보물이 탐이 나서 무덤을 파헤치려는 줄로 알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나의 뜻을 잘못 알고 하는 말이오.

 진시황이란 자는 육국(六國)을 정벌하면서 수백만의 백성들을 무참하게 죽였소.

게다가 소위 분서 갱유(焚書坑儒)로 천하의 선비들까지 모조리 쓸어 버렸소.

그래서 나는 비록 진나라를 멸망시켰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원한이 가셔지는 것은 아니오.

그래서 무덤 속에서 그의 시체를 꺼내어 부관 참시(剖棺斬屍)를 하려는 것이니

여러말 말고 무덤을 파헤치도록 하시오."

 

 말할 것도 없이 <부관 참시>는 이를 구실로 진시황의 무덤을 파헤치고

보물을 꺼내기 위한 수법이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에게 매질을 한다는 것이 어찌 명분이 서는 일이 될 것인가.

 범증은 하늘을 우러러 마음 속으로 혼자 이렇게 탄식하였다.

 

(아아, 개선 장군이 되어 가지고 고작 한다는 것이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이란 말인가....! )

 

계속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