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2912
거경대학에서 이육사문학관을 다녀와서
우리는 도산서원 탐방을 마치고 이육사문학관을 찾았다.
이육사문학관 세미나실에서 이육사의 일생에 대한 홍보영상을 보고나서
육사의 무남독녀인 이옥비 여사의 특강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육사는 본명이 이원록, 이원삼이고 호가 육사로 1904년 도산면 원촌리에서 태어나
고향마을에 설립된 보문의숙을 거쳐 도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이사하였고
아버지의 엄명으로 일찍 결혼하여 처가마을의 백학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24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서 1925년 귀국하였다가 1926년 베이징으로 떠나서
1927년 광동 중산대학에 수학하다가 여름방학에 귀국하여 장진홍사건에 연루되어
1년 7개월 옥살이를 시작으로 17회에 걸쳐 투옥생활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1930년 1월 3일 조선일보에 '말'이라는 첫시를 발표하면서 '광야', '절정',
'청포도' 등 많은 작품활동을 하다가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이육사문학관은 민족의 슬픔과 조국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와
관련해 흩어져 있던 자료와 기록을 한곳에 모아 그의 독립정신과 업적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2004년 원천리 불미골에 설립하였다.
여든의 이옥비 여사는 특강에서 세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삭바느질, 식당일 등 갖은 고생을 하면서 가정을 꾸리며
옥바라지를 하시던 어머니가 들려주신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고
아버지를 아이보리색 양복을 입으신 멋진 신사로 기억하고 있다면서
삼촌들의 많은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왔으며
아버지가 육형제여서 생가당호가 육우당이라고 하였고
양자한 동생이 있을때
출가외인으로 친정일을 간섭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오다가
갑작스런 동생의 유고로 아버지에 관한 자료를
많이 확보하지 못 하여 이쉽다는 말로 특강을 마쳤다.
이육사문학관에서 홍보영상과 옥비 여사의 특강을 들으며
암울한 시대에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신 육사의 일생을 그려보면서
문학관을 나와서 독립투사가 26명이나 배출된
하계리 '하계마을 독립운동기적비' 앞에서
이동신 지도강사로 부터 하계마을과 도산지역의 독립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오늘의 행사를 마치고 안동시청 앞으로 이동하여 해산을 하였다.
입교식과 답사를 도와주신 강사님들과 수련원관계자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함께 수련하사며 거경을 익히기 위하여 노력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시길~~~
세상사 한마디
매운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 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이육사의 시 절정>
'지역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경대학에서 월천서당을 다녀와서 (0) | 2020.05.28 |
---|---|
거경대학에서 의촌 번남댁을 다녀와서 (0) | 2020.05.28 |
거경대학에서 퇴계종택과 도산서원을 다녀와서 (0) | 2020.05.08 |
2020 거경대학 개강식을 다녀와서 (0) | 2020.05.08 |
수정사와 빙계계곡을 다녀와서 (0) | 2020.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