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초한지(楚漢誌)《한군(漢軍)의 대승(大勝)》

오토산 2020. 5. 28. 12:03



초한지(楚漢誌) (100)

한군(漢軍)의 대승(大勝)

초나라의 사신이 한신의 밀서를 가슴에 품고 팽성으로 돌아온 뒤, 항우에게 받들어 올리며 말한다.
"한나라의 한신 장군이 폐하와의 구정(舊情)을 잊지 못하여, 우리한테로 귀순해 오겠다는 밀서를 보냈습니다."
항우는 그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뭐야 ? 한신이 나에게 귀순해 올 생각에서 밀서를 보냈다구 ?

한신만 귀순해 온다면 유방은 변변치 않은 장수들만 있으니, 싸움은 끝장 난 것이나 다름없구먼. 

그것 참 듣던중 반가운 소릴쎄 ! "
 
항우가 <한신의 귀순>을 이처럼 기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신이 직접 참여한 전투에서 초군이 승리해 본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항우가 기쁜 마음으로 <한신의 밀서>를 즉석에서 읽어 보았는데, 

그 내용은 <귀순 청원서>가 아니라 <선전 포고문>이 아니런가 ?
 
                 <한나라 파초 대원수 한신은 초패왕에게 글월을 보내오>
그 옛날 내가 초나라에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

당신은 나에게 집극랑(執戟郞 : 요즘으로 치면 중대장)이라는 벼슬밖에 주지 않았소.

그러나 나는 불만을 참아 가면서 당신과 함께 의제 회왕(懷王)을 떠받들어 초나라의 발전을 도모해 왔었소. 

그러나 당신은 엉뚱한 야욕으로 의제를 시해하고 스스로 제위(帝位)를 찬탈해 버렸으니,

그 어찌 대역 죄인이라고 아니할 수 있으리오.

이에 나는 대역 죄인을 응징함으로써 의제의 원수를 갚아 드리고자 정의의 깃발을 들게 되었소.

그러나 대역 죄인인 당신의 세력이 너무도 막강하여,

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뜻을 이루기가 어렵기에 한왕과 협력하기로 하였던 것이오.
지난번에 한왕이 팽성에서 당신에게 대패한 것은 내가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나,

이제부터는 나 자신이 3군 총지휘권을 가지고 총공격을 퍼부어

당신의 머리를 양관문(兩觀門)에 높이 걸어 보일 것이니, 단단히 각오하기 바라오.
 
항우는 한신의 서한을 읽어 보고 길길이 날뛰며 분노하였다.
"옛날에는 남의 가랑이 사이나 기어다니던 고부 놈이 나를 이렇게나 모욕할 수가 있느냐.

내 이놈을 당장에 박살내 버릴 테니, 모든 군사는 출동 준비를 서둘러라."
 
항우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범증이 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다.

 

"이 서한을 보온즉, 한신은 폐하를 분노케 하려고 계획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하오니 섣불리 출동하셨다가는 적의 위계에 걸려들 위험이 매우 크오니,

폐하께서는 너무 서두르지 않으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말로는 출동을 중지하기에는 항우의 분노가 너무도 컸다.

 

"아부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귀순을 빙자하여 되먹지도 않은 선전 포고문을 씨부려 온 놈을 어찌 그냥 둘 수 있단 말이오 ?"
 범증이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간한다.

 

"옛부터 급히 먹는 밥에 목이 메고, 찬 물도 급히 마시면 사래가 드는 법이옵니다.

하오니 노여움을 참으시고 침착한 대책을 강구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항우는 그런 말을 들을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라, 마침내 범증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참으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요 ?

이번 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한신이란 놈을 내 손으로 결딴을 내고야 말테니,

아부는 더 이상 말씀하지 마시고 어서 물러가시오."
범증은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서 항우의 앞을 물러 나오며 혼자말로 탄식을 하였다.

 

(아아, 기어코 한신의 계교에 속아 대패(大敗)를 면하기가 어렵게 되었구나 ! )
항우는 범증을 쫒아내고 출동을 서둘렀다.
 
한편, 한신은 항우가 대군을 몰아쳐 올 것을 예상하고 응전 태세를 물샐 틈 없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돌연 장량이 육가와 번쾌등 많은 장수들을 거느리고 야전 사령부로 한신을 찾아왔다.

한신은 장량 일행을 막사 안으로 반갑게 맞아들이며 물었다.

 

"선생께서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별안간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
 장량이 자세를 바로잡고 앉으며 대답한다.

 

"대왕의 어명에 의하여, 한 장군에게 조서(詔書)를 전달하러 왔소이다."
한신은 깜짝 놀란다.

 

"대왕께서 신에게 무슨 조서를 .....? "

 

"대왕께서는 장군을 또다시 대원수에 제수하시었소.

이 조서와 인장(印章)을 받으시오."
장량이 주는 조서를 읽어 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무릇 장수란 나라의 기둥이니,

장수를 옳게 얻으면 그 나라는 흥하고, 장수를 잘못 쓰면 그 나라는 망한다고 하였소.

한신 장군은 경제에도 밝은 뿐만 아니라 병법에 있어서도 천하에 겨룰 사람이 없으니,

경이야 말로 국가의 주석(柱石)이고, 당대의 호걸이오.

지난날 내가 장군을 물리치고 위표를 총대장으로 임명한 것은 나의 일생 일대의 커다란 잘못이었소.

이제 경을 다시 대원수에 임명하는 터이니,

경은 가일층 분발하여 초나라를 정벌하는 데 더욱 분투 노력해 주기를 바라오.

나는 경의 공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한신은 조서를 읽어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황은이 망극하여, 저는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금 곧 선생을 모시고 입궐하여 대왕 전하께 사은 숙배를 올리게 해 주시옵소서."
한신은 예복으로 갈아입고 장량과 함께 입궐하여 한왕에게 큰절을 올리며 맹세하였다.

 

"신 한신은 오늘의 황은에 보답하고자,

천하를 평정하는 데 분골 쇄신할 것을 거듭 맹세하옵니다."
 한편,항우는 한신을 치기 위해 30만 대군을 이끌고 영양성을 향하여 출정하였다.

 

그리하여 영양성 50리 밖에 진을 쳐 놓고 대장 계포와 종이매를 불러,
"그대들은 영양성에 접근하여 적의 허실(虛實)을 소상하게 알아 보고 오라 ! "하고

명령을 내렸다.
 
한나라의 밀정들이 그 사실을 알고 급히 돌아와 한신에게 알리니,

한신은 각급 부대장들을 긴급히 소집하여 명한다.

 

"지금 두 명의 초장(楚將)들이 우리의 허실을 정탐하기 위해 많은 첩자들과 함께 우리 주변에 잠입해 올 것이다.

그러니 모든 병사들은 참호 속에 죽은 듯이 숨어 있으라.

그러면 항우가 안심하고 쳐들어올 것이니, 그때에는 모든 부대가 들고 일어나 항우를 생포하도록 하여라."

이리하여 한나라의 모든 군사들은 수목으로 위장한 참호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겨버렸다.
계포와 종이매는 그런 줄도 모르고 적진 속으로 깊이 잠입해 보니, 한나라 막사는 텅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닌가 ?
계포와 종이매가 본영으로 돌아와 본 대로 보고 하자, 항우는 자신 만만하게 이렇게 말한다.

 

"한신은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겁을 집어 먹고 군사를 몰고 도망을 갔을 것이다.

감히 싸우지는 못하고 영양성 만을 지키려고 할 것이니, 내가 선두에 나서서 적의 본진을 치기로 하겠다.

환초,우영,항장,우자기 네 장수는 나를 따르고, 그 밖의 장수들은 본진에 대기하고 있으라."

항우가 대군을 거느리고 접근해 오자,

한신은 홀연 숲속에서 말을 타고 달려 나오며 항우에게 큰소리로 외친다.

 

"대왕을 함양에서 작별한 이후로 오랫동안 못 뵈었소이다."
항우는 한신을 보자 두 눈을 무섭게 부릅뜨며 호통을 친다.

 

"나는 지금 네 놈에게서 받은 수모로 원한이 골수에 맺혀 있다.

네 놈의 머리를 쳐버리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물러가지 않을 테니,

그리 알아라 ! "

이런 소리를 내지른 항우는 장창을 번득이며 질풍같이 한신을 향하여 말을 달려왔다.
그러자 한신은 겁에 질린 사람처럼 대번에 쫒기기 시작하였다.
항우는 그럴수록 맹렬하게 추격을 해오며 외친다.

 

"모두들 달려와 저놈을 붙잡아라 ! "
계포와 종이매가 달려 왔으나, 항우의 추격이 어찌나 빠른지 미처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열심히 항우의 뒤를 쫒아오면서,
"폐하 ! 복병이 있을지 모르니 더이상 따라가지 마시옵소서."하고 숨가쁘게 외쳤다.

그러나 그와 같은 충고가 항우의 귀에 들릴 턱이 없었다.
한신은 항우가 급히 쫒아오면 급히 쫒기고,

속도를 늦추면 자기도 속도를 늦춰 가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꾸만 쫒긴다.
그러니 항우는 더욱 약이 올라 한없이 추격해 왔다.
항우가 끈질기게 추격해 오므로 한신은 마침내 경색강(京索江) 다리를 건너와 버렸다.
항우는 다리를 건너가기에 앞서 후속 부대에 다음과 같은 군령을 내린다.

 

"한신은 독 안의 든 쥐다.

이제는 영양성까지 송두리째 쳐부수겠으니, 후속 부대는 연달아 강을 건너오라."
항우가 강을 건너가고 나서 얼마 후에 후속 부대가 건너가려 하니

어느 새 다리가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
수만 명의 군사들은 어쩔 수 없이 발을 담가 강을 건너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

여러 천 명의 군사들이 일제히 강을 건너가고 있는데,

그들이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무렵에, 별안간 상류에서 해일(海溢)이라도 일어난 듯,

한 길이 넘는 홍수가 밀려 내려오며 강을 건너던 군사들을 모조리 휩쓸어 가는 것이 아닌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한신이 상류의 둑을 막아 놓아

물을 잔뜩 가두어 두었다가 둑을 일시에 터뜨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한신은 항우가 이곳까지 추격해 올 것을 알고, 미리 그와 같은 지시를 내려 두었던 것이다.
 
이렇게 강을 건너던 초군 병사들은 난데없는 홍수로 인해 저마다 아우성을 치며 물살에 떠내려가 물귀신이 되었고,

그나마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은 강 하류에서 가까스로 뭍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초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버렸다.

 

한편, 항우는 추격을 계속 하다가, 어느 갈림길에서 한신의 뒤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차 ! 한신이라는 놈을 놓쳐버렸구나 ! "

 

항우가 절치 부심을 하고 있는데, 장수 하나가 급히 쫒아오며,
"폐하 !

아군이 경색강을 건너오다가 난데없는 홍수로 수천 명의 병사가 물귀신이 되어 버렸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뭐야 ?

강을 건너 오다가 병사들이 홍수를 만나 물귀신이 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 "
항우는 경색강에서 자신을 뒤따르던 초군 병사들이 참변을 당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나서 발을 구르며 분노한다.

 

"한신이란 놈,

어디 두고 보자. 네 놈은 조만간 내 손으로 박살을 내고야 말리라 !"
 어느덧 날이 저물어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폐하 ! 날이 저물고 있으니,

오늘은 돌아가셨다가 내일 군사를 재편성하여 다시 오기로 하십시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항우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음 ... 그러면 오늘은 일단 돌아가자.

그러나 이 원한은 조속히 풀고야 말리라."
 
항우는 호위 군사들과 함께 부지런히 본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숲속을 지나갈 무렵, 별안간 적의 복병들이

사방에서 함성을 울리며 일어나더니 화살을 빗발치듯 쏘아대는 것이 아닌가 ?

 

그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에는 수백 대의 전차(戰車)가 동서 사방에서 포위망을 구축하고 조여오며, 

그들 역시 빗발 같은 화살을 쏘아대는 것이었다.
 
아무려니 이때만은 항우도 당해 낼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어,
"두 패로 나누어 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자 ! "하고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적의 포위망이 워낙 철통 같은데다가,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져서 초군 병사들은 아비 규환 속에서 낙엽처럼 쓰러져 죽고,

항우만이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도망칠 수 있었다.
 
한편, 계포와 종이매는 항우가 적에게 포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군사를 몰고 가다 보니,

경색강 다리가 끊긴데다가 홍수가 범람할 듯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다리도 끊기고 강물이 넘쳐 흐르니,

도저히 그대로 건널 수는 없구나.

남계(南溪)로 돌아가자 !"
 
이렇게 남계를 돌아 어느 산모퉁이를 지나려는데,

이번에는 적장 조덕(祖德)이 한떼의 군사들과 함께 함성을 울리며 앞길을 막아 선다.
계포는 분연히 나아가 20여 합을 싸워 조덕을 쓰러뜨리고 다시 앞으로 달려나가다 보니, 한나라 군사들이 어느 새 계포와 종이매를 겹겹히 둘러싸고 있었다.
 
이제는 사력을 다해 포위망을 뚫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결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20리 가량을 도망치니,

그곳에서는 대장 우영과 환초가 만신창이가 되어 신음을 하고 있었고,

항우만이 가벼운 상처를 입은 채 이를 부득부득 갈며,

 

"한신이란 놈, 어디 두고 보자.

네 놈에게 이렇게 당한 것은 천추의 유한이로다 ! "하고 분노로 떨고 있었다.

"폐하 !

저들이 또 덤벼 올지 모르오니 이곳을 속히 떠나셔야 합니다."

 

"제까짓 것들이 무슨 재주로 여기까지 온다는 말이냐 ?"
항우의 입에서 그 말이 막 떨어지는 순간, 별안간 여기저기서 횃불이 일시에 밝혀지며,

남쪽에서는 적장 시무와 여상동, 부관과 부필이 덤벼 오고,

동쪽에서는 이필과 낙갑, 서쪽에서는 주발,주창과 설구,진패가 나타나고,

북쪽에서는 신기와 조참이 덤벼 오고 있었다.

10여 명의 한군 대장들이 횃불을 밝혀 들고 사면 팔방에서 포위망을 좁혀 오며,
"항우는 죽고 싶지 않거든 즉각 항복하라 ! "하고 이구 동성으로 항우를 향하여 외쳐대는 것이아닌가 ?
그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뒤에는 수백 대의 전차들이 화살을 잔뜩 겨눈 채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오는 것이었다.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의 항우도 이때만은 눈앞이 캄캄해왔다.

 

(항복 할 것이냐,

끝까지 싸우다 죽을 것이냐 ! )

 

항우로서는 최후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죽으면 죽었지, 항복은 안된다.

그것은 죽기 보다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항우는 이를 바드득바드득 갈며 포위망을 뚫어 보려고 적진을 뚫어져라 둘러 보았다.
적들은 횃불을 밝혀 들었고, 이쪽은 어둠에 싸여 있어서 그 점만은 항우쪽이 유리하였다.
항우가 적진을 살펴 보고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신기와 조참이 다가오는 북쪽 부대가 가장 허약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들 듣거라 !

나는 지금부터 북쪽으로 돌진해 나갈 테니, 모든 군사들은 나를 따르라 ! "

그리고 항우는 비호같이 달려 나가며 선봉장 신기의 목을 한칼에 날려 버리니,

조참은 겁에 질려 주춤하고 쫒겨 버린다.
그리하여 항우와 그를 따르는 군사들이 철통 같았던 한군의 포위망을 간신히 뚫고 5리쯤 달려가니,

이번에는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복병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
이번에는 계포가 군도를 높이 휘두르며 비장한 어조로 군사들에게 명한다.

 

"우리가 주공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때는 바로 이때다.

모든 군사들은 총돌격하여 적을 무찌르고 본영(本營)으로 집결하라 ! "
초군은 결사적으로 돌격하여 포위망을 돌파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사태는 갈수록 태산이어서,

포위망을 돌파했을 바로 그때, 비마가 달려와서 급히 아뢰길,

"폐하 ! 우리 본영이 한신에게 점령되어 버렸습니다."
하는 말하는 것이 아닌가 ?
천하의 항우도 이때만은 자지러지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

본영이 점령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

항우로서는 ,한신의 작전 계획이 이토록 치밀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좌절할 항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팽성으로 방향을 바꿔라."
이렇게 팽성으로 급히 달려가고 있었는데,

중간에서 적의 복병들이 또다시 들고 일어난다.
항우는 너무도 화가 치밀어 올라 외쳐댔다.

 

"여봐라 !

여기서 저놈들과 최후의 결판을 내버리자."
그러자 종이매가 항우의 앞을 가로 막으며 말한다.

 

"폐하 ! 여기서 자웅을 결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옵니다.

한신의 계략은 귀신 같으니, 일단 팽성에 돌아가 재출발하는 것이 상책일 줄로 아뢰옵니다."
 
이제는 자신감 조차 없어진 항우는 종이매의 말이 타당하다고 여기고,

다시 도망을 치기 시작하는데,

10여 리를 가다 보니 숲속에서 또다시 한떼의 군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항우는 그들도 적병인 줄 알고,
"이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여기서 최후를 결판내자 ! "하고 비장한 명령을 내리고 있는데,

문득 전방에서 한 사람의 장수가 마구 달려오며 소리를 친다.

 

"폐하 !

놀라지 마시옵소서.

소장은 폐하를 마중 나온 포상(浦尙)이옵니다."
 그제야 보니, 그 사람은 적장이 아니고 아군 대장이었다.
항우는 포상을 만나자 지옥에서 구세주를 만난 듯이 반가웠다.

 

"내가 이리로 오는 줄 어떻게 알고 마중을 나왔는가 ?"

 

포상이 대답하는데,
"범증 군사께서 <주공이 지금 한신에게 곤욕을 당하고

계실지 모르니 급히 가보라>는 명령이 계셔서 이리로 왔사옵니다."
 
항우가 포상과 이런 말을 주고받는 중에,

이번에는 적장 이필과 낙갑이 햇불을 밝혀 들고 군사를 몰아쳐 오고 있었다.
사태가 또다시 급박하게 돌아가자 포상이 항우에게 말한다.

 

"주공은 팽성으로 먼저 돌아가시옵소서.

제가 저 놈들을 혼자서 막아내겠사옵니다."
 그리고 적장들에게 마주 달려 나가며 호통을 질렀다.

 

"이 못난 놈들아 !

너희들은 천하의 맹장 포상 장군도 몰라 보느냐,

용기가 있거든 덤비거라."
이리하여 세 명의 장수가 1대 2로 싸움을 시작하였다.

 

피차간에 횃불을 번쩍이며 맹렬하게 싸우기를 30여 합.

마침내 포상의 칼에 이필의 목이 떨어져 버리니 낙갑은 말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망가는 적을 그대로 내버려둘 포상이 아니었다.

뒤쫒던 포상이 화살을 한 대를 재어 ,

낙갑에게 쏘아대니 낙갑은 뒤통수에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져 딩굴었다.
 항우는 포상과 함께 팽성으로 돌아오며 말한다.

 

"나는 수십 년 동안 싸움을 계속해 왔지만,

오늘처럼 곤경에 빠져 보기는 처음이었네."
그러자 포상이 대답한다.

 

"범증 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 주공께서 한신을 너무도 업신여기고 계신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소장에게 3만 군사를 주시면서 급히 달려가 도와 드리라고 하신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아부께서 자네를 보내 주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네.

그러고 보면, 내가 아부의 충고를 듣지 않고 무리하게 출정한 것은 커다란 잘못이었어."
항우는 그제서야 범증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였다.
 
한편, 한신은 항우를 기어코 생포할 결심으로 사중(四重) 오중으로 항우를 에워싸는 치밀한 작전을 세워 왔었다.

그로 인해 항우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항우의 목숨이 길었던지,

번번히 항우를 놓치고 아까운 장수 세 사람,

신기,이필, 낙갑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한신은 땅바닥에 주저 앉아 땅을 치며 자신의 잘못을 이렇게 뉘우쳤다.
 
"아아, <쫒겨가는 적을 끝까지 추궁해서는 안 된다>고 병서에 분명히 씌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항우를 끝까지 몰아 붙이다가 결국은 아까운 장수 세 사람을 잃어버리고 말았구나 ! "
한신이 얼마나 애통하게 우는지,

이를 지켜 보던 다른 장수들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