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楚漢誌) (116)
태공의 구출
태공이 항우에게 무참히 끌려가는 모습을 본 한왕은
본진으로 돌아오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태공이 오늘은 죽음을 면하셨지만, 언제 항우의 손에 돌아가시게 될 지 모를 일이 아닌가 ?
오늘도 태공을 구출하지 못하였으니 나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불효 막급한 죄인이로다."
한왕은 탄식해 마지 않으며 본진으로 돌아와서 곧 장량과 진평을 부른다.
"태공을 구출할 무슨 방도가 없겠소이까 ?
두 분께서는 반드시 태공을 구출해 올 수있도록 전력을 기울여 주소서."
그러자 장량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태공을 구출해 올 방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옵니다."
한왕은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이는 것만 같아서 장량의 두 손을 덥석 움켜잡으며,
"자방 선생 !
무슨 방법이 계신지 어서 말씀해 주시옵소서."하고 애원하듯 재촉하였다.
장량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초군은 지금 군량 사정이 매우 궁핍한데다가, 군사들도 극도로 지쳐 있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우리가 유능한 변객(便客)을 보내어 태공을 반환해 오는 조건으로 강화(講和)를 제의하면,
항우는 어쩔 수 없이 수락하리라 보옵니다."
그 말에 한왕은 한 가닥 희망을 품으며 말한다.
"태공을 무사히 모셔오는 조건이라면, 항우에게 속히 강화를 제의해 보기로 합시다.
그러면 누구를 변객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소이까 ?"
장량은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말한다.
"글쎄올습니다.
항우를 설득하려면 지혜와 구변이 무척 능해야 하겠는데,
지금 우리 진영에는 그만한 인물이 없는 것이 큰 걱정이옵니다."
그러자 저 멀리 말석에 앉아 있던 노인 하나가 손을 번쩍 들며 장량에게 나무라듯 말한다.
"항우에게 보낼 사람이 없으시다니, 장량 선생은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옵니까 ?
소생을 보내 주시면 소생이 항우를 설득하여 태공 일가족을 무사히 모셔 올 것이니
아무런 걱정을 마시고 소생을 보내 주시옵소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모든 사람들이 시선을 향해 보니,
말을 한 인물은 낙양에 살던 <후공(侯公)> 이라는 노인이었다.
이 노인은 일찍이 한왕이 낙양에 입성했을 때 <동공 삼로(董公三老)>라는 세 사람의 노인들로부터
의제의 국장에 대한 충고를 들은 일이 있었던 노인들의 친구로서,
그 노인들의 추천으로 오늘날까지 한왕을 꾸준히 따라 다니며 매사에 조언을 해 주던 노인이었던 것이다.
한왕은 후공이 자처하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장량은 무척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며 후공에게 말한다.
"후공께서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항우는 성미가 급하고 괴팍스러워서,
자칫하여 말 한마디를 잘못했다가는 후공도 무사하기 어렵겠지만,
까딱 잘못 하다가는 태공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청하여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
후공은 다시 장량을 나무라는 태도로 말한다.
"선생처럼 항우를 겁내기만 하다가는 어느 누구라도 그를 만나 교섭을 못 하게 될게 아니옵니까 ?
지금처럼 걱정만을 앞세워 차일 피일로 시간만 보낸다면 어느 세월에 태공을 모셔오게 될 것이옵니까 ?
소생은 주상(主上)의 후은(厚恩)을 받아 온 지가 오래이오나, 아직 이렇다 할 보답을 못 했습니다.
이번에 소생이 태공을 모셔와서 그동안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도록 기회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한왕이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장량에게 말한다.
"후공의 결심이 매우 고마우니, 후공을 사신으로 보내기로 합시다.
나 자신이 항우에게 직접 강화요청의 서신을 쓸 테니,
선생께서는 후공과 별도로 항우와의 교섭에 임하는 문제를 상의해 주소서."
이리하여 후공은 한왕의 친필 서한을 가지고 항우를 만나러 초나라로 떠나갔다.
항우는 한왕의 사신이 찾아 왔다는 소리를 듣고 속으로는 은근히 기뻤다.
이번에는 한군(漢軍)과 정면으로 싸워 보았자 승리할 가망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우는 찾아온 사신에게 자신의 위세를 보여 주기 위해 모든 대장들을 소집하여 자신의 좌우에
시립(侍立)시켜 놓은 후, 자신은 장검을 차고 용상에 높이 올라 앉아 후공을 자기 앞으로 불러들였다.
후공은 어전으로 가까이 다가와 보니, 항우는 마치 성난 호랑이 같이 눈알을 부릅뜨고
후공을 노려보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
후공은 항우 앞으로 조용히 다가와 아무런 말도 하지 아니하고,
"하하하하하...."하고
소리 내어 웃기만 하였다.
그러자 항우는 발끈 화를 내며 꾸짖는 소리를 한다.
"그대는 한왕의 심부름을 온 자가 아니던가 ?
심부름을 온 자가 어찌하여 나를 비웃는가 ?
나의 칼이 무서운 줄을 그대는 모른단 말인가 ?"
그러자 후공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폐하는 만승 천자(萬承天子: 만 대를 이어 내릴 하늘이 내린 아들)로서
무위(武威)를 천하에 떨치고 계시는 어른이시온데, 누가 감히 폐하를 두려워 하지 않으오리까 ?
소생은 일개 유생(儒生)으로서, 재주에 있어서는 옛날의 관중(管仲)이나 악의(樂毅)같은 현사(賢士)의 명성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촌로(村老)일 뿐이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폐하께서는 소생에게 보란 듯이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폐하의 좌우를 혁
혁한 대장들로써 시립을 시켜 놓으셨으니, 그 어찌 우스운 일이 아니오리까 ?
소생이 실례를 무릅쓰고 웃음을 터뜨린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사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보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음 ....
그대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구려."
그러면서 좌우에 시립해 있는 대장들을 굽어보며,
"한왕의 사신을 단독으로 만날 터이니,
그대들은 모두 물러가 있으라."하고 명하며 ,
자신도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풀어 앞에 내려 놓았다.
후공은 그제서야 큰절을 올리니 항우는 절을 받으며 묻는다.
"한왕이 무슨 용무로 그대를 보냈는지 어서 용무를 말하라."
그러자 후공은 한왕의 친필 서한을 항우에게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며 말한다.
"한왕께서는 초한 양국이 전쟁을 종식하고 구정(舊情)을 돈독히 하시고자 소생을 일부러 보내셨습니다.
자세한 사연은 친필 서한에 적혀 있을 것이오니, 폐하께서 직접 읽어 보아 주시옵소서."
"음,
한왕이 나에게 강화를 요청해 왔다는 말이구려 ?"
항우는 그자리에서 한왕의 서한을 펼쳐 보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왕 유방은 삼가 항왕 폐하께 글을 올리옵니다>
내 일찍이 듣건데,<하늘이 제왕을 보낼 때에는 백성을 위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은 아직 천명(天命)을 받들지 못한채 오늘날까지 70여 회나 싸움을 계속해 오면서
무고한 군사와 백성들을 수십만 명이나 죽고 다치게 하였으니, 이 어찌 하늘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 수 있사오리까 ?
이에 본인은 크게 깨달은 바 있어, 후공을 보내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강화를 맺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리하여 홍구(鴻溝)를 경계로 하여, 서쪽은 한나라의 영토로 삼고, 동쪽은 초나라의 영토로 삼아,
제각기 독립 국가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군사들을 물림으로써
형제의 정리를 옛날과 같이 돈독히 하고자 제의하는 바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피차간에 부귀도 마음껏 누릴 수가 있을 것이고, 백성들도 태평 성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오리까 ?
이에 싸움을 멈추고 평화를 제의하오니,
폐하께서는 재삼 숙고하시어 강화에 쾌히 응해 주시기를 거듭 바라옵니다.
<한왕 유방 올림>
항우는 유방의 편지를 읽어 보고 속으로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는 군량이 부족하여 어차피 싸울 형편이 못 된다.
싸워서 승리할 자신이 없을 바에는 차라리 못 견디는 척하고 상대방의 요구대로 강화 조약을 맺어 주고,
팽성으로 돌아가 그리운 우미인(虞美人)과 더불어 즐거운 생활을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겠나 ?)
항우는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후공을 가까이 불러 말한다.
"나는 한왕과 끝까지 싸워서 자웅을 결할 생각이었소.
그러나 지금 이 편지를 읽어 보니, 강화를 맺는 것이 좋을 것 같구려.
그러면 나도 강화에 응하기로 하고 내일 사신을 별도로 보내도록 할 터이니,
귀공은 먼저 돌아가 한왕에게 나의 뜻을 전하도록 하시오."
후공이 한왕에게 돌아와 항우와의 면담 결과를 상세하게 말하니,
한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바로 그 다음날, 항우는 약속대로 한왕에게 사신을 보내 왔다.
항우의 사신은 한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품한다.
"항왕 폐하께서는 강화 조약을 정식으로 맺기 위해,
한왕 전하와 직접 만나시자는 분부이시옵니다."
강화 조약을 맺기 위해서라면 한왕 자신이 항우를 직적 만나야 할 것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한왕은 항우의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화 조약을 정식으로 체결하려면 물론 우리 두 사람이 직접 만나야 할 것이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이 직접 만나는 데는 두 가지의 선결 조건(先決條件)이 있소.
그것만은 반드시 지켜 주어야 하겠소."
"선결 조건이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
한왕이 대답한다.
"첫째는, 우리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에는 무장병(武裝兵)이 단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오
. 강화 조약을 맺고 형제의 의를 돈독히 하는 자리에
무장병이 있다는 것은 서로간에 감정을 소원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소 ? "
항우의 사신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돌아가거든 폐하께 그 말씀을 꼭 여쭙겠습니다.
또 하나의 선결 조건은 어떤 것이옵니까 ?"
"또 하나의 조건이란, 우리 두 사람이 만나는 이 기회에
태공 내외분과 나의 내자(內者: 아내)를 모두 나에게 돌려주십사 하는 것이오.
화목을 도모하면서 나의 양친과 내자를 억류해 두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니,
이 문제도 꼭 품고해 주시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만은 항우의 사신은 대답에 난색을 표하면서,
"그 문제 역시 소생으로서는 지당하신 말씀이신 줄로 아뢰옵니다.
하오나 소생이 직접 품고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오니,
대왕께서 별도의 사신을 보내 주시면 고맙겠나이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알겠소이다.
귀공이 직접 여쭙기 어렵다면, 후공을 귀공과 함께 보내어 직접 청원하도록 하겠소이다."
다음날 후공이 항우의 사신과 함께 초진을 다시 찾아가니, 항우가 묻는다.
"후공은 무슨 일로 나를 다시 찾아 오셨소 ?"
후공이 대답한다.
"한왕은 폐하께옵서 강화 조약을 응낙해 주신 데 크게 감동하고 계시옵니다.
그런데 두 분이 내일 만나실 때에, 무장병을 일체 배치하지 말 것과,
그 자리에서 태공 일가족을 모두 반환해 주심으로써 형제의 정리를 더욱 두텁게 하시자는
한왕의 분부를 말씀드리고자 찾아 왔사옵니다."
"뭐 ?
태공 일가족을 모두 반환해 달라고 .... ?"
항우는 뜻밖의 조건에 적잖이 당황하는 빛을 보였다.
후공이 다시 말한다.
"두 분께서 강화를 맺으시고 태공을 돌려보내 주시면,
세상 사람들은 폐하의 성덕을 크게 찬양할 것이 분명하오니,
폐하께서는 그 점을 감안하시어 이번 기회에 태공 일가족을 모두 돌려주시도록 하시옵소서."
항우는 강화 조약을 맺는 것만은 불감청이언정 고소원(不敢請: 감히 요청할 것은 아니지만,
固所願: 바라던 바))이었다.
그러나 태공을 돌려 줄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한왕이 장래에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까닭에,
그의 부모를 볼모로 잡아두는 것이 자신에게는 매우 유리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대답을 주저하고 있노라니까, 후공이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말한다.
"강화를 맺고 형제의 의를 새롭게 하는 이 마당에,
만약 폐하께서 태공 일가족을 돌려보내 주시지 않으신다면,
세상사람들이 폐하를 얼마나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옵니까 ?
그런 것은 한왕께서도 같은 생각이시어 태공 내외분과 왕후를 돌려받지 못하신다면
강화 조약을 맺는 의미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시옵니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항우로서도 아무리 싫어도 태공을 돌려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잠시 생각한 끝에 항우가 선뜻 말한다.
"좋소이다.
그러면 강화 조약을 맺는 자리에서 태공 일가족을 모두 돌려보내기로 하겠소."
후공은 그 말을 듣고 새삼스레이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한 번 따져 묻는다.
"고맙사옵니다.
그러면 소생은 폐하의 말씀을 철썩같이 믿고 곧 돌아가 한왕께 사실대로 품고하겠습니다.
만약 폐하의 말씀에 추호라도 어긋남이 있게 되면,
소생은 목숨이 살아 남기 어려우니 부디 그런 일은 없으시도록 거듭 바라옵니다."
그러자 항우는 대뜸 나무라는 어조로 말한다.
"대장부의 일언은 천금보다도 무겁게 하라 하였소.
귀공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요 ?
아무려니 내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소 ?
아무런 걱정을 말고 속히 돌아가 한왕에게 나의 뜻을 솔직히 전하도록 하시오."
후공이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고 나자 계포와 종이매가 항우에게 간한다.
"만약 한왕과 강화 조약을 맺으시더라도 태공만은 절대로 돌려 주지 않으셔야 하옵니다.
태공을 돌려주고 난 뒤에 한왕이 강화 조약을 무시하고 공격해 오면,
저들을 제지시킬 방어막을 잃게 되는 것이옵니다."
그러나 항우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한다.
"모르는 소리 그만하오.
강화 조약을 맺은 뒤에도 태공을 그냥 붙잡아 두고 있으면
제후(諸侯)들이 나를 얼마나 비겁한 자라고 비방할 것이오 ?
태공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강화 조약 자체부터가 성립되지 못할 것이오."
그러자 장량과 친분이 두터운 항백이 이때다 싶어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폐하의 말씀은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태공이 비록 우리에게 억류되어 있었다고는 하지만,
요 며칠 한군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태공 일가족에 대한 폐하의 대접이 극진하셨으니,
이제 그들을 고이 돌려보내 준다면, 한왕은 그동안 태공에 대한 폐하의 보살핌을 생각해서라도
감히 다른 생각을 못할 것이옵니다."
항우는 항백의 말을 옳게 여겨, 다음날 태공 내외와 여왕후(呂王后)를 수레에 태워 가지고,
친히 국경지대로 설정한 홍구(鴻溝)를 향해 떠났다.
이리하여 홍구에 도착한 항우는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유방과 회견장(會見場)에서
오랜만에 서로 반가운 얼굴을 하고 만났다.
두 사람은 함양(咸陽)에서 서로 헤어진 이후로 초한 양국(楚漢兩國)으로 나뉘어
싸움을 계속하기를 4년 만에 처음으로 가깝게 만나는 감격적인 상봉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는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워 온 두 영웅이었지만,
서로간에 강화 조약을 맺으려는 이 마당에 와서는 피차간에 옛정을 새롭게 나누며
감격적인 포옹조차 나누었다.
*글 중간에 붙여...
남자들이 서로 만났을 때 악수를 하는 인사법은 모두가 알다시피,
원시시대 때부터 상대방을 해칠 무기를 손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사례가 있었으니, 그것은 지난해 5월에 있었던 문제인 대통령과 김정은과의
판문점 벙개 회담의 말미에 김정은이 전격적으로 보여 준 문재인 대통령과의 세 번의 포옹이었다.
남자들의 이런 포옹 인사법은 우리에게는 유럽식 인사법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한참 잘못 알려진 것이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남자들의 포옹식 인사법은 이미 기원전인 초한 시대(楚漢時代)의
항우와 유방이 선보인 것을 유럽에서 변형, 발전시켜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서로 전쟁(항우, 유방)과 대치(문재인,김정은 ) 하며 생사를 다투는 입장에서
어째서 가슴을 맞대는 친밀감을 표시할까 ?
나는 이것은 가슴에 품고있는 자신의 진정성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려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선지, 언뜻보기에는 참으로 김정은의 진정성이 보이는 듯 한데....
먼저 선뜻 가슴을 내민 김정은의 속셈이 뒤에 벌어지는 유방과 항우로의 약속 파기와 같은
흉중(凶中)이 숨겨져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이윽고 강화 조약에 서명이 끝나자,
항우는 조약 문서 한 통을 유방에게 나눠 주며 말한다.
"우리가 서로 강화 조약을 맺었으니, 이제부터는 형제지국(兄弟之國)으로서 국경선을 존중하며,
피차간에 싸우지 말기로 합시다.
나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곧 팽성으로 돌아갈 것인데,
그 전에 태공 일가족을 모두 돌려드리기로 하겠소."
한왕은 그 말을 듣고 감격의 머리를 수그리며 말한다.
"대왕께서 나의 일가족을 모두 돌려 주신다니,
이렇게도 고맙고 기쁜일이 없소이다."
이리하여 태공 일가족은 인질로 붙잡힌지 3년 만에 아들인 한왕의 곁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고, 항우는 곧 군사를 거두어 팽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한편, 한왕은 기쁨을 감추지 않으며 태공 일행을 모시고 본진으로 돌아오니
장량,진평 등이 멀리까지 영접을 나와 주었다.
한왕은 희색이 넘치는 시선으로 장량을 보며 말한다.
"이번에 태공 내외분을 무사히 모시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덕분입니다.
선생의 출중하신 계략이 아니었던들 태공 내외분께서 어찌 오늘처럼 무사히 돌아 오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사실이었다.
장량이 항우의 곤궁함과 유방의 절실함을 상쇄시키는 한초(漢楚)간에 강화 조약을
추진하지 않았던들 태공은 결코 항우의 손아귀를 벗어나기는 극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기에 한왕은 장량의 공을 크게 치하 하고 나서 다시 말한다.
"항왕은 강화 조약을 체결하기가 무섭게 팽성으로 돌아갔으니,
우리도 속히 철군하여 함양으로 돌아가기로 합시다."
장량은 그 말을 듣자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우리가 함양으로 철군한다는 것은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인 줄로 아뢰옵니다."
한왕이 깜짝 놀라며 반문한다.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란 무엇을 뜻하는 말씀이오니까 ?"
"대왕께서는 거듭 생각해 보시옵소서.
우리 군사들이 오늘날까지 목숨을 걸고 결사적으로 싸워 온 것은,
오로지 전쟁에서 이김으로써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불타 있었기 때문이옵니다.
그런데 초군과의 강화 조약으로 인하여, 고향을 지척에 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포기하고
함양으로 철수해 버린다면 어느 군사가 우리 진영에 계속 남아 있으려고 하겠습니까 ?
그리하여 태반의 군사들이 도망을 가버리면, 대왕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나라를 꾸려 나가실 것이옵니까 ?"
한왕은 유방의 말을 듣고 크게 걱정스러웠다.
고향에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서역(西域)에 그냥 눌러 앉아 버리면
태반의 군사들이 도망을 가 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자방 선생 !
그러면 이 문제를 어찌했으면 좋겠소이까 ?"
장량이 냉철하게 대답한다.
"우리가 항우에게 강화 조약을 요청한 것은
태공을 구출해 오기 위한 일시적인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옵니다.
이제 우리가 태공 일행을 모셔오는 데 성공하였으므로 이제 우리의 성패(成敗)의 여부는
오로지 대왕의 결단에 달려 있사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강화 조약을 액면 그대로 이행하여 천하를 한초(漢楚)로 양분 한다면,
변방의 제후들은 누구를 임금으로 섬기고, 누구의 신하라고 말할 수가 있으오리까 ?
자고로 하늘에는 해가 둘 있을 수 없고(天無二日), 백성들에게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는 (民無二王) 법이옵니다.
지금이라도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능력은 십중 팔구 대왕께서 가지고 계시옵니다.
그러나 초패왕이 지금처럼 팽성으로 돌아가게 되면
분명히 천하 통일의 야망을 버리지 못하고 군사를 부쩍 키우게 될 것이 자명한 일인데,
이것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후일에 호랑이를 키워 커다란 피해를 입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이까 ?"
이론이 정연한 장량의 설득을 듣고 한왕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나는 이미 초패왕과 강화 조약을 맺었는데, 조약에 먹물도 마르기 전에 약속을 배반한다면,
이번에는 만천하가 나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 아니오 ?"
그러자 장량이 즉석에서 반론한다.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시옵니다.
조그만 신의에 구애되어 대의(大義)를 저버리시는 것은 명지자(明智者)가 하실 일이 아니옵니다.
그 옛날 탕무(湯武)는 폭군이었던 결왕과 군신지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하여 결왕을 쫒아내고 새나라를 창업한 일이 있사옵니다.
오늘날 우리가 폭군 초패왕을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하려고 애쓰는 대의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재고하셔야 하는 것이옵니다."
장량이 거기까지 말을 했을 때에 진평, 육가,수하 등등 지낭(智囊: 꾀주머니, 모사)들이
한왕에게 한결같이 머리를 조아리며 이구 동성으로 말한다.
"자방 선생의 말씀은 금과 옥조같이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저희들이 오늘날까지 대왕을 위해 동분 서주해 온 것은 오로지 천하를 통일함으로써
만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옵니다.
대왕께서는 그 점을 거듭 통촉하시어 신속히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장량을 비롯한 모든 중신들이 열화같은 결심을 촉구하므로 한왕은
드디어 최후의 단안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의 생각이 모두 그렇다면,
나는 초패왕과의 약조를 파기하고 여러분들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겠소이다."
이리하여 한나라 군사들은 그날부터 팽성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다시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
*글 끝에 붙여 ..
각별한 남녀간의 인사법은 뭐니뭐니 해도 입뽀뽀(Kiss) 일 것이다.
백주 대낮에 만인이 수시로 들락이는 이곳에서 꺼내어 설명하기는 다소 계면쩍은 일 이지만,
입뽀뽀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자.
이것이야말로 유럽에서 시작되었는데,
외출했던 남편이 집에 돌아온 뒤, 자신이 아껴 마시는 포도주를 마누라가 슬쩍 마시지 않았는지 ?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입뽀뽀>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옛날 기방(妓房)에서 기녀(妓女)가 포도 한 알을 떼어 입에 물고,
배시시 웃게 되면 기둥 서방이나 한량쯤 되는 사내가 입으로 건네 받아 먹었다는 유래로써
<입물림>이라고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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