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초한지(楚漢誌) 《장량의 계산 착오와 위기극복 》

오토산 2020. 6. 14. 10:02



초한지(楚漢誌) (118) 장량의 계산 착오와 위기극복


항우는 워낙 성미가 급한지라, 30만 대군을 몰아쳐 오기 무섭게

유방의 근거지인 고릉성에  전격적인 공격을 개시 하려고 하였다.
만약 그랬다면 한군(漢軍)을 크게 패하고, 한왕 자신의 생명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늘의 도움이었다고나 할까 ? 항백이 항우의 전격 작전을 반대하고 나섰다.

"폐하 !

우리 군사들은 쉴틈 없이 먼길을 달려오느라고 몹시 피로해 있사옵니다.

더구나 적정(敵情)을 잘 모르면서 무작정 전격 공격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오니,

며칠 동안 여유를 갖고 적정을 정확히 파악한 뒤에 총공격을 퍼붓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래야만 적을 일거에 섬멸시킬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항백이 기습적인 전격 작전에 반대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항백은 일찍부터 장량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사이인데다가,

한왕 유방과는 처남, 매부지간 이었기 때문에 한왕을 최후의 궁지에까지 몰아 넣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숙질(叔姪)간인 항우를 배반하고 한왕에게 돌아 붙을 생각도 없었다.
다만 한왕의 덕망과 장량의 기발한 지략을 평소부터 흠모해 왔기 때문에,

마음만은 전격적으로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항백은 초한(楚漢)간의 강화 조약을 누구보다도 기뻐하였으나,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친구인 장량과 처남인 유방이 절대적인 곤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그만 시간이라도 벌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항백이 전격 작전을 반대하고 나오자,

항우는 항백의 의견을 받아들여 먼저 적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로 하였다.

한편 한나라 군사들은 초군이 30리 밖에 진을 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움직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왕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한신,영포,팽월 중 단 한 사람도 달려와 주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왕이 조서(詔書)만 보내면 <한신,영포,팽월 등이 부리나케 달려와 줄것>이라고

단언했던 장량의 커다란 계산 착오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한왕은 너무도 불안스러워 장량에게 나무라듯 말한다.

 

"나는 선생의 말씀만 믿고 항우에게 선전 포고문을 보냈는데,

한신,영포, 팽월 등은 감감 무소식인 채 항우만이 대군을 몰아쳐 왔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 "
장량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한신,영포, 팽월 등이 대왕의 조서를 받아 보면 즉시 달려오리라고 믿었던 것은 신의 커다란 계산 착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지 아니하면 다만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기가 어렵다 뿐이지,

적을 막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신을 믿어 주시옵소서."
이리하여 한나라 군사들은 수비 태세만 견고하게 갖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모양으로 10여 일이 지나도록 서로간에 움직이는 기색이 전혀 없다 보니,

항우가 몹시 답답함을 느끼며 모든 대장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묻는다.

 

"유방은 우리에게 선전 포고문을 보낸 주제에,

우리가 코앞에 와 있어도 움직임이 전혀 없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 "
그러자 계포가 나서며 말한다.

"유방은 지금 우리에게 둔병지계(鈍兵之計)를 쓰고 있는 줄로 아뢰옵니다."

 

"둔병지계라니 .... ?

그러면 저들은 우리와의 싸움을 회피하고, 우리 군사들이 저절로 지쳐 버리기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오 ? "

 

"예, 그러하옵니다."
항우는 이번에는 종이매에게 묻는다.

 

"장군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
"소장도 계포 장군과 똑같은 생각이옵니다. 둔병지계를 쓰지 않는다면, 선전 포고문까지 보낸 주제에 어째서 나와 싸우기를 회피하겠사옵니까 ?"

그러자 대장 주란이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온다.

 

"두 분의 의견은 크게 잘못된 것인 줄로 아뢰옵니다

한왕은 한신의 군사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싸울 자신이 없어 수비만 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이번 싸움은 시간을 끌수록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니 , 오늘이라도 총공격을 퍼붓도록 하시옵소서."

 

"음 ..... 듣고 보니 과연 장군의 말씀이 옳소이다. 그

러면 내일은 아침부터 한군에게 총공격을 퍼붓기로 합시다."

다음날 항우가 총공세로 나오자,

한왕은 왕릉,번쾌, 관영, 노관등 네 장수로 하여금 적을 막아내게 하였다.
항우가 말을 달려 나와 적장들에게 말한다.

 

"내가 한왕과 단 둘이 담판할 일이 있으니,

그대들은 물러가고 한왕을 내보내라."
그러자 왕릉이 장검을 휘두르며 대답한다.

 

"대왕께서는 그대가 태공을 팽살하려 했던 원한을 푸시려고

그대를 생포해 오라는 명령을 내리시어 우리 네 사람은 그대를 생포해 가려고 나왔다.

그러니 그대는 여러 말 말고 우리의 결박을 받으라."

 

이에 항우가 크게 화를 내며 장검을 휘두르며 비호같이 돌진해 왔다.
네 장수가 항우를 상대로 30여 합을 싸웠으나, 항우를 당해 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제각기 쫒기기 시작하니, 이번에는 근흠,주창,고기, 여마통 등

10여 명의 장수들이 떼를 지어 몰려나와 싸움을 가로 맡았다.
그러자 초진에서도 계포, 종이매 ,환초 ,우자기등 모든 대장들이 총출동하여

양군 대장들간에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기만 할 뿐 끝날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 되자, 초군 진지에서 별안간 요란스러운 철포 소리가 나더니,

그것을 신호로 대장 주란이 대군을 몰아쳐 나와 한군을 사면 팔방으로 때려부수기 시작 하였다.
그러더니만 한나라 군사들을 마치 풀을 베듯 쓸어버리는데 그 기세가 막강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에 한왕은 크게 당황하여,
"모든 군사들은 즉각 성안으로 후퇴하라 ! "하고

긴급 후퇴명령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 군사들은 성안으로 몰려 들어와 성문을 굳게 잠그고 일절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항우는 성문 앞까지 접근해 와 의기 양양하게 전군에 공격명령을 내린다.

 

"적은 이미 독 안에 든 생쥐들이다.

성을 사방으로 포위하고 유방을 당장에 생포하라.

나의 오랜 원한을 오늘 밤에 깨끗하게 풀고야 말 것이다."
그러자 대장들이 입을 모아 아뢴다.

 

"폐하 !

지금은 사방이 캄캄하게 어두워 오니,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내일 아침으로 미루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뭐가 두려워서 내일 아침으로 미룬다는 것이냐 ? "

 

"어둠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함락시키려면 적이 최후의 발악을 하게 되어 우리 측의 피해가 많게 되옵니다.

그러니 밝은 후에 공격하는 것이 우리측의 손실을 줄일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음 ....

그러면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내일 아침으로 미루더라도 오늘 밤에 경계만은 삼엄하게 하라."
한편, 성안에 갇혀 있던 한왕은 불안에 떨며 모든 막료들에게 말한다.

 

"적의 세력이 워낙 막강하여 성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은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 "
장량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초군은 진종일 싸우느라고 무척 지쳐 버려서, 지금쯤은 모두 잠이 들어 버렸을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오늘 밤에 성고성으로 근거지를 옮겨 가시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오.

고릉성을 끝까지 지키지 못할 바에는 지키기가 견고한 성고성으로 옮겨 가는 것이 좋겠소이다.

그러나 적의 경계가 삼엄하여 성을 함부로 빠져 나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 "

 

"그 점은 염려 마시옵소서.

신이 적정을 잘 알아 보아서 안전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장량은 번쾌,주발,시무,근흠 등 네 장수로 하여금 성밖으로 나가 적정을 면밀하게 살펴 오도록 하였다.
네 장수가 어둠 속으로 잠행하여 적정을 살펴 보니,

북문에는 적이 거의 없어서 북문으로 탈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한나라 군사들이 한왕을 모시고 북문으로 빠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왕을 선두로 군사들이 절반쯤 성을 빠져 나갔을 때,

초장 종이매가 그 사실을 보고 받고 항우에게 급히 달려와 고한다.

 

"폐하 !

유방을 비롯한 그의 군사들이 성을 포기하고 지금 북문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하옵니다."
자다 말고 일어나 그 보고를 받은 항우는 큰소리로 외친다.

 

"뭐야 ? 유방이 도망을 가고 있다구 ?

그러면 당장 군사를 보내 그자를 잡아오도록 하여라 ! "
항우가 급하게 호령을 내리자, 종이매가 조용히 간한다.

 

"폐하 !

적이 도망을 갈 때에는 방비책을 튼튼하게 세워 놓고 떠났을 것이 분명하오니,

함부로 추격하는 것은 삼가시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섣불리 추격하다가 적의 복병에 말려드는 날이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항백이 종이매의 의견에 찬성하고 나온다.

 

"폐하 !

밤도망을 갈 정도라면 유방의 운명은 이미 다 된 판이니, 너무 서두르지 않으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구태여 야간 추적을 하지 않아도, 머지 않아 유방을 완전 섬멸 시킬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항우는 종이매와 항백의 의견을 옳게 여겨, 야간 추적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덕택에 한왕은 남은 군사들을 고스란히 거느리고 성고성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러나 언제 또다시 항우의 공격을 받게 될지 모르므로, 한왕은 장량과 진평에게 걱정스럽게 상의한다.

 

"적이 언제 이곳까지 공격해 올지 모르는데,

나를 도와줄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 했으면 좋겠소 ?"
장량이 머리를 조아리며 차분한 어조로 대답한다.

 

"대왕 전하 ! 그 점은 조금도 염려 마시옵소서.

모르긴 모르되 적은 사흘 안으로 반드시 자진하여 철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항우가 자진하여 철군을 하다니요 ?

그게 무슨 말씀이오 ?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려."
그러자 장량이 기다린듯이 말한다.

"적은 군량사정이 넉넉치 않아, 어림해도 열흘 분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신은 그러한 약점을 알고 있었기에,

수일 전에 장창과 장다 두 장수를 날렵한 병사 백여명 씩을 딸려서

유주(柳州)로 밀파하여 적의 군량고(軍糧庫)를 모두 불태워 버리게 하였습니다.

제아무리  초패왕이라도 밥을 먹지 않고서야 어떻게 싸울 수가 있겠사옵니까 ?

그러므로 적은 수일 안으로 반드시 팽성으로 자진하여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춤이라도 출듯이 기뻐하였다.

한편, 초군 진영에서는 다음 날,

한왕이 쫒겨간 성고성을 공략하려고 전군에 또다시 출동령을 내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유주로부터 비마가 달려오더니,
"폐하 !

유주에 있던 군량고가 어젯밤 화재로 모두 소실되어 전방으로 추진할 군량미가 모두 없어졌사옵니다."
하고 알리는 것이었다.

"뭐야 ?

유주에 있던 군량미 창고가 어젯밤 화재로 모두 불타 버렸다고 ?

그렇다면 경비 책임을 맡고 있는 놈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 "

 

그러나 책임을 따지고 호통을 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초군이 제아무리 사기가 하늘을 찔러도 먹지 않고서야 싸울 수 없는 일이 아니런가 ?

항우는 즉시 참모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러자 모든 대장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이번 기회가 유방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은 사실이옵니다.

그러나 밥을 굶고서야 싸울 수 없는 일이니, 부득이 철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사옵니다."

항우로서도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리하여 모처럼의 승기(勝機)를 잡았던 초군은 눈물을 머금고 자진하여 철군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량의 앞을 내다 보는 전략이 놀라운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한왕은 초군이 팽성으로 철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숨을 쉬며 장량에게 묻는다.

 

"한신,영포,팽월 등에게 소집령을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 "
장량이 면목이 없는 듯 머리를 깊이 조아리며 대답한다.

 

"대왕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그들이 즉시 달려오리라 믿었던 것은 신의 커다란 착오였사옵니다.

신이 커다란 과오를 범하였사오니 대왕께서는 신에게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 말에 한왕은 손을 힘차게 내저으며 말한다.

 

"선생을 처벌하다뇨 ?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선생께서는 어떤 점에서 착오를 하셨는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씀해 주소서."

"황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장량은 머리를 정중하게 조아려 보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한신 장군은 이름만 제왕(齊王)이었다 뿐이지

아직까지 그가 소유할 영토를 하나도 나누어 주지 않으셨사옵니다.

한신 장군은 그 점에 불만을 품고 오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영포와 팽월 장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영포 장군은 항우를 배반하고 우리에게로 왔건만, 아직까지 아무런 작위(爵位)도 내려 주시지 않으셨고,

팽월 장군의 경우도 무수한 전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전공에 걸맞는 포상을 아니 해 주셨사옵니다.

더구나 영포와 팽월은 의리보다는 이해(利害)가 남달리 밝은 사람들이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대왕께서는 그들에게 제각기 영토를 나눠 주시기만 하면,

그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대왕께서 굳이 부르시지 않으셔도,

 저마다 달려와서 대왕을 돕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옵니다.

대왕께서는 그 점을 각별히 고려해 주시옵소서."
한왕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거듭 끄떡이다가 장량의 말이 끝나자 물었다.

 

"내가 우매하여 그 점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소이다.

선생의 충고는 새삼 폐부를 찌르는 것만 같소이다.

그러면 한신을 삼제왕(三齊王)에 봉하고, 영포를 회남왕(淮南王)에 봉하고,

팽월을 대량왕(大梁王)에 봉하여, 그곳 영토와 물산을 모두 소유하게 할 테니,

수고스런 대로 선생께서 인부(印符 : 도장과 임명장)를 가지고 가셔서

그들에게 직접 나의 뜻을 전해 주소서."

장량이 한왕의 명령을 받들고,

우선 제나라에 머물고 있는 한신을 찾아갔다.

그리하여 인부와 한왕의 조서를 내주면서 말한다.

 

"대왕께서는 이번에 장군을 삼제왕에 봉하심과 동시에,

제나라의 영토였던 70개의 성을 모두 장군에게 자치 운영을 할애(割愛)하셨습니다.

인부와 조서를 가지고 왔으니 받아 주소서."

한신은 그 말을 듣고 어쩔 줄을 모르고 기뻐하면서 장량을 상좌로 받들어 모시려고 하였다.
그러자 장량은 자리를 사양하면서 말한다.

 

"장군은 이미 왕위에 오르게 되셨고, 나는 일개의 변객에 불과 하니,

내가 어찌 감히 상좌에 앉을 수가 있으리까."
그래도 한신은 장량에게 상좌를 권하며 말한다.

 

"내 일찍이 선생의 도움이 아니었던들  제가 어찌 오늘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겠나이까 ?

선생은 한왕의 군사(軍師)이시므로, 저 역시 선생을 지난 날과 마찬가지로 군사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장량은 좌석을 사양하다 못해 한신과 동등한 자리에 앉으며 다시 말한다.

 

"항우의 세력은 지금 보잘것없이 약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왕께서는 항우와 화친 조약을 맺었던 것은

태공이 항우의 손에 볼모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태공을 무사히 구출하였으므로 이제야말로 항우를 섬멸시키고 천하를 통일할 때가 되었습니다.

만약 제왕께서 항우를 정벌하는 데 힘을 써 주신다면, 제왕께서는 천하 통일의 일등 공신이 되셔서,

자손 만대에 이르도록 영광을 누리게 되실 것입니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연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선생의 말씀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이제야 말이지, 선생에게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

일전에 대왕께서 항우와 화친 조약을 맺고 천하를 양분(兩分)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크게 실망했었습니다.

통일 천하의 성업을 포기하고 천하를 둘이 나누어 가질 바에야 내가 나서 본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어,

저는 저 나름대로 실속을 차리기 위해 대왕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옵니다.

그러나 오늘, 대왕께서 저를 삼제왕에 봉해 주시면서 천하 통일을 끝까지 완수 하시겠다면,

제가 어찌 전력을 기울여 대왕을 돕지 않겠습니까 ?

그 점에 대해서는 저를 굳게 믿어 주시옵소서."
장량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제왕께서 그와 같은 결심을 가지고 계시다면 신속히 군사를 일으켜 대왕과 함께 항우를 정벌해 주소서.

나는 이제부터 영포 장군과 팽월 장군을 찾아가  제왕과 공동 보조를 취해 주도록 부탁할 생각이옵니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더욱 기뻐하며 말한다.

 

"선생을 모시고 영포,팽월 장군과 함께 힘쓰면

천하 통일을 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옵니다."

 

장량은 한신과 작별하는 길로 곧 회남(淮南)에 있는 영포를 찾아갔다.
영포가 장량을 반갑게 맞아들이자, 장량은 인부와 한왕의 조서를 내주며 말한다.

 

"대왕께서는 이번에 장군을 회남왕에 봉하심과 동시에,

구강(九江) 이남의 모든 군현(郡縣)을 장군께 하사하셨습니다.

장군이 정식으로 왕위에 오르시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영포는 그 말을 듣고 기쁨을 금치 못하며,

한왕이 있는 서쪽 하늘을 향하여 사은 숙배(謝恩肅拜)를 올린다.
장량이 다시 말한다.

 

"이로써 장군은 인신(人臣)으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항우가 건재해 있어 가지고서는, 장군의 지위가 결코 튼튼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한신 장군은 항우를 정벌하기 위해 불일간 군사를 거느리고 성고성으로 대왕을 찾아뵙기로 하였으니,

장군도 한신 장군과 함께 천하 통일의 성업에 적극 가담해 주심이 어떠하겠습니까 ?"
영포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반색하며,

 

"저 역시 불일간 군사를 거느리고 성고성으로 대왕을 찾아가,

통일 성업에 전력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하고 굳게 맹세하였다.

장량은 영포의 확약을 받고, 그 길로 대량(大梁)에 들러 팽월을 만났다.
때마침 팽월은 참모들과 회의를 하다가,

장량이 찾아 왔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달려 나와 정중히 맞아 들인다."
장량은 대량왕의 인부와 함께 한왕의 조서를  내밀어 주니 팽월은 등불을 밝히고 한왕의 조서를 읽어 보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 한왕은 팽월 장군에게 글월을 보내오>
공은 본시 위(魏)나라의 상국(相國)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귀순하여,

초나라의 양도(糧道)를 차단하는 데 많은 공로를 세워 주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포상을 못 해왔기에,

이번에 공을 대량왕으로 봉함과 동시에 50군(郡)을 식읍(食邑)으로 급여(給與)하는 터이니,

자손 만대에 이르도록 길이 영광을 누리기 바라오.
팽월은 한왕의 우악(優渥)한 은총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장량에게 말한다.

 

"대왕께서 신에게 이처럼 커다란 은총을 내려 주셨으니,

신은 신명을 다해 대왕의 은총에 보답하겠습니다."
그 말에 장량이 말한다.

 

"한신 장군과 영포 장군도 대왕의 통일 성업을 돕기 위해

불일간 군사를 거느리고 성고성에서 한왕과 회동하기로 하였으니,

대량왕께서도 동참해 주시면 한대왕께서는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 역시 군사를 거느리고 불일간 성고성으로 대왕을 찾아 뵙겠습니다."

이리하여 한신,영포,팽월 등이 모두 자진하여 성고성으로 군사들을 몰고 찾아오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장량의 탁월한 지략의 결과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