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초한지(楚漢誌) 《한신의 매복 작전과 항우의 돌파 작전 》

오토산 2020. 6. 16. 09:23



초한지(楚漢誌) (121)

한신의 매복 작전과 항우의 돌파 작전

한신이 이번 구리산 작전에 큰 기대를 갖는 것은 몰고온 병력도 많지만,

세력이 약해진 항우를 때려부술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한신은 장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밤을 새워 가며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골똘히 짜고 있었다.

포진법(布陳法)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러나 구리산 계곡에서는 지형의 특성을 살린 주역진법(周易陳法)을 쓰는 것이 가장 적합해 보였다.
밤을 새워 진법을 연구한 한신은 다음날 아침,

장량과 진평을 비롯한  모든 대장들을 한자리에 소집해 놓고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주상께서 군사를 일으키신 이후로, 우리들은 지난 5년 동안 많은 싸움을 계속해 왔다.

때로는 이기기도 하였고, 때로는 참패의 고배를 마신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항우를 상대로 싸우기를 무려 70여 회, 항우의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가장 약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번 싸움이야말로 우리가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싸움으로 우리가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되면, 이번 싸움에 나선 모든 대장들은

모두가 열후(列侯)에 책봉(冊封)되어 자손 만대까지 영화를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니,

모든 대장들은 심혈을 기울여 이번 전쟁에 임해 주기를 바란다."

모든 대장들은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고 나면 열후에 책봉한다>는 말을 듣고

저마다 머리를 수그리며 이구 동성으로 충성을 맹세한다.

 

"원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저희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워 이기겠습니다."
이같은 대장들의 맹세를 듣자, 마음 든든하게 느낀 한신이 즉각 군령을 하달한다.

"이번 싸움에서는 과거에 전혀 쓰지 않았던 <주역진법>에 의하여,

<십면매복진(十面埋伏陳)>을 펼치기로 하겠다.

8명의 대장에게 각각 부장(副將) 16명과 정병 4만 5천씩을 줄 테니,

구리산의 각각 정해진 임지로 달려가 즉각 매복하고 있다가

초군이 몰려 오면 결정적인 때 들고 일어나 그들을 쳐부수라."

첫째, 대장 왕릉은 구리산 계곡의 서북쪽에 매복하라.
둘째, 대장 노관은 구리산계곡 북쪽에 매복하라.
셋째, 대장 조참은 동북쪽에 매복하라.
넷째, 대장 팽월은 동남쪽에 매복하라.
다섯째, 대장 영포는 동쪽에 매복하라.
여섯째, 대장 주발은 남쪽에 매복하라.
일곱째, 대장 장이는 서남쪽에 매복하라.
여덟째, 대장 장다는 서쪽에 매복하라.
이렇게 친 팔괘진(八掛陳)에, 대장 하후영은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대왕 전하의 뒤를 따르라.
장량과 진평 선생은  방호사(防護使)로써 각각 10만 군사와 함께 대왕 전하를 측근에서 호위하소서.

이상과 같은 명령에 즉각 대장들은 군사를 배당 받아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

대원수 한신의 명령은 간결하고 거침이 없었다.

각 대장들은 명령에 따라 군사를 분류하여 조직을 점검하느라고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한신의 계획대로 항우와 일선에서 처음으로 맞서게 될 한왕 유방이 먼저 출발하게 되자,

공희와 진하가 군사 2만 씩을 데리고 좌우 선발대로 한왕에 앞서서 진군을 시작하였고,

여마통과 여황은 군사 2만 씩을 데리고 그 뒤를 따랐다.

근흠과 자무는 10만 군사를 각각 좌우로 나누어 장량과 진평을 비롯한 중앙의 한왕을 겹겹히 에워싸고 ,

그 뒤를 따라 하후영이 진군을 시작하니 그 행렬의 위용은 땅을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

유방이 3천 기만을 측근에 거느리고, 구리산 지척인 계명산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나자,

한신은 수행하던 장수들에게 새로운 군령을 내린다.

 

"이제 곧 싸움이 시작되거든 유고,박소,손가희,고기,장창,척사 등은

각각 군사 1천 명씩을 데리고  초군의 후방을 크게 교란시켜라.

그러면 팽성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이 달려 나와 그대들을 격퇴 시키려고 할 것이니,

그때를 이용하여 진희,유가,부필,오예 등 네 장수는 각각 정병 5천씩을 거느리고 서주(徐州)를 돌아

팽성 근처에 잠복해 있다가, 성문이 열리고 초군이 나오면서 그 행렬이 끝날 즈음

성안으로 밀물처럼 몰려 들어가 성을 점령함과 동시에 항우의 일가족을 모조리 생포하고,

성루에 붉은 깃발을 높이 달아 올려라.

성을 점령한 뒤에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그 점은 각별히 명심하라 ! "

한신은 또 다른 부대에 다음과 같은 군령을 내린다.
"관영 장군은 대왕께서 항우와 싸움을 시작하거든 즉시 달려 나가 싸움을 가로맡으라.

그리하여 항우와 20여 합 접전을 벌이다가, 회해 계곡으로 쫒겨 들어오도록 하라.

그러면 항우는 맹렬히 추격해 올 것이니,

그때에는 양희, 양무,양익,여승 등은 각각 5천 명의 군사를 데리고

오강(烏江) 강변에 미리 매복해 있다가 추격해 오는 항우를 단숨에 생포해 버리도록 하여라.

항우는 워낙 천하 무쌍의 무용을 자랑하는 인물이므로 여간해서 붙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을 각별히 유념하여 각자는 임지로 출발하라 !"

대원수 한신으로부터 임무를 부여 받은 장수들은 각각 임지로 자기가 몰고온 병사들을 데리고 떠나가는데,

왕릉을 비롯한 몇몇 대장들이 한신을 찾아와 묻는다.

 

"원수께서 소장더러 구리산 북쪽에 매복해 있으라고 명령하셨사오나,

구리산은 워낙 넓고 광활하여 그 북쪽은 여기서 2백 리나 떨어져 있사옵니다.

그 사이에는 초군이 가는 곳마다 진을 치고 있어서,

어느 길로 가야 적의 눈을 피하여 매복할 수가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대장쯤 되면 지리(地理)에 정통해야 하는 법이오.

다른 사람도 아닌 왕릉 장군이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소이다."

 

왕릉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제가 아직 미숙하여 패현 지방의 지리를 꿰뚫지 못하였사옵니다."

한신이 웃으며 대답한다.
"병법에 아무리 정통하여도 작전 지역의 지리를 몰라 가지고는 이길 수가 없는 법이오.

구리산은 서주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인데, 계곡이 깊고 많아 군사를 매복시키기에 가장 좋은 산이오.

항우가 이좌거에 속아 패현까지 군사를 몰고 오기는 하였으나,

구리산 계곡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지금쯤은 군사를 몰고 온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것이오.

따라서 항우는 한 번 싸워 보아서 이기지 못하면 팽성으로 되돌아가 버릴 공산이 크오.

그러기에 나는 항우의 근거지를 빼앗기 위해 진희,오예등 네 장수로 하여금

항우가 없는 틈을 타서 팽성을 점령해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소.

 

항우는 한 번 싸워 패하게 되면  근거지를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부득이 강동(江東)으로 쫒겨갈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러기에 강동으로 가는 길목인 오강(烏江)에는 양무,여승 등 네 장수를 잠복시켜 놓았소.

결국 항우는 오강을 건너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손에 생포되고 말 것이오.

그러므로 왕릉 장군은 신속히 임지에 도착하여 매복해 있어야 하오.

장군이 적의 눈에 띄지 않고 목적지에 무사히 가려면 고릉 북쪽으로 황하를 따라가다가,

귀덕군을 지나 우성현으로 가면 구리산 북쪽에 무사히 도착할 수가 있을 것이오." 

왕릉은 한신의 지리의 정통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원수의 말씀을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면 말씀하신 길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자 한신이 다시 말한다.

 

"구리산은 구의산이라고도 부르오.

그곳에는 네 개의 산이 있는데, 동북쪽에 있는 산이 계명산이고,

서쪽에 있는 산은 초왕산, 그 뒤에 있는 산이 성녀산이오.

그 주위는 무려 2백여 리나 되오.

항우가 일단 팽성으로 쫒겨갔다가, 성루에서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면,

성을 탈환할 생각을 못하고 반드시 왕릉 장군이 매복해 있는 북방으로 도망쳐 올 것이니

그때에 매복해 있던 군사들이 들고 일어나면, 제아무리 항우인들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것이오.

그런 줄 알고 장군은 준비하도록 하시오."

대원수 한신의 귀신같이 치밀한 작전 계획을 듣고,지켜보던 한왕을 비롯한 대장, 장수들은

모두들 혀를 털며 임지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좌중에 장수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볼멘 소리로 크게 외쳐대었다.

 

"원수께서는 저와는 무슨 원수가 졌다고 소장만은 아무데도 써주지 않으십니까 ?"
그 목소리가 너무도 거칠어서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행했는데,

한신에게 정면으로 항의하고 나선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무양후 번쾌 장군이었다.

모든 장수와 대장들에게 제각기 중책을 맡기면서,

유독 번쾌에게만은 마무런 임무도 주지 않아 크게 노여웠던 것이었다.
한신은 번쾌의 격노하는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내가 번쾌 장군에게 원수질 일이 있겠소 ?

<원수>란 말은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이오."
번쾌는 큰소리로 외치듯이 다시 말한다.

 

"주상이 포중(褒中)에서 군사를 일으키신 이후로,

저는 여러 백번의 전투에서 한 번도 빠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결전이라고 볼 수 있는 이번 싸움에서만은,

하챦은 장수까지 모두 총동원 하시면서 저만은 쏙 뽑아 버리시니, 이런 수모가 있사옵니까 ?"
한신은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정중하게 말한다.

 

"장군의 말씀대로,

이번 싸움에서는 모든 장수를 총동원 시켜 임무를 부여하면서도 장군 한 분만 빼놓은 것은 사실이오.

왜냐 하면, 가장 중요한 임무가 꼭 하나 남아 있는데,

장군에게 특별히 그 일을 맡기려고 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그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기에, 만약 그 일이 실패하면,

백만 대군의 승리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번쾌는 그제서야 엄숙한 자세로 돌아 가며 말한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오나 원수께서 그 일을 제게 맡겨 주시면

소장은 전력을 기울여 기필코 완수하겠습니다.

만약 실패를 하게 된다면 군법에 돌려 참형에 처해 지더라도 원망을 아니하겠습니다."
번쾌의 말을 듣고, 한신이 숙연히 말한다.

 

"지금 우리는 구리산에 군사들을 십면 매복(十面埋伏) 해놓고, 항우를 일거에 때려잡으려고 하고 있소.

그런데 양군이 흩어져서 싸움을 하게 되면,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분간하기가 매우 어렵게 될 것이오.

그렇다면 누군가가 산 위에서 양쪽 군사들의 움직임을 관먕해 가면서,

우리 군이 평소에 훈련을 했던 대로 깃발 신호를 통해 작전을 지시할 기수(旗手) 한 사람이 꼭 필요하오.

그러니까 그 임무야 말로 우리 군의 승패를 판가름 할 수있는 사실상의 실전 지휘관이 되는 것이오.

장군이 그 임무를 맡아 주셔야 하겠소이다."
번쾌는 그제서야 얼굴에 희색이 돌며 간곡히 말한다.

 

"원수께서는 그 임무를 부디 소장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소장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겠나이다."
한신은 그제서야 정식으로 군령을 내린다.

 

"우리가 각 부대에서 모여든 군사를 일사 분란하게 훈련 시킨 효과를 이번 싸움에서 반드시 펼쳐 보여야 하오.

그러니 번쾌 장군은 3천 군사를 거느리고 구리산 산상에 도착하여,

적의 이동 경로를 관찰하여 깃발 하나로써 삼군을 총지휘할 준비를 하고 계시오.

만약 대사를 그릇치는 날이면, 군법에 회부하여 엄중히 처벌할 것이니,

그 점은 미리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하오."
그러자 번쾌가 즉석에서 한신에게 반문한다.

 

"낮에는 깃발로 신호를 보낼 수 있지만, 야간에는 무엇으로 신호를 보내야 하옵니까 ?

혹시 횃불로 신호를 보내라는 말씀입니까 ?"
한신은 머리를 대번에 좌우로 흔든다.

 

"야간 전투에는 누구나 횃불을 이용하니까, 야간에는 그냥 횃불로는 안 되오.

야간에는 이번에 훈련한 대로 등롱(燈籠)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것도 횃불과 혼동하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우리 군의 색깔인 붉은 빛깔의 등롱을 써야 하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 편 군사들이 야간에 싸울 때에는 언제나 훈련한 대로 행렬(行列)을 지어 가면서

싸울 것이니, 횃불이 움직이는 광경을 보게 되면 적과 우리를 식별할 수가 있을 것이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야간에는 등롱의 숫자로써 공격의 방향과 멈춤을 조절하겠습니다."
번쾌는 한신에게 정중한 작별 인사를 고하고 구리산으로 떠났다.

한편, 항우는 많은 정찰병을 보내어 적정을 탐지시켰는데,

그들은 돌아와 이구 동성으로 이렇게 보고하는 것이였다.

 

"한나라 군사들은 백만 명이 넘을 뿐만 아니라,

모두들 사기가 무섭게 왕성하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불안하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냥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기에, 모든 장수들을 불러 놓고 군령을 내린다.

 

"적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우리는 싸우기만 하면 이길 자신이 있다.

나 자신이 20만 군사를 이끌고 선두로 치고 나갈 테니,

종이매 장군과 주란 장군은 각각 좌군 우군이 되어 나를 도우라.

나머지 30만 군사는 여섯 명의 대장들이 각 5만 명씩 나누어 진격하고,

우자기 장군은 본진을 지키고 있으라."
항우는 군령을 내리고 즉시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으로 달려 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한왕 유방은 싸울 용기가 있거든 곧바로 나오라.

한신이란 놈처럼 무장답지 못하게 거짓 도망하는 수법을 쓰면, 이번만은 용서하지 않겠다."

 

유방은 갑옷과 투구로 튼튼하게 무장을 하고 철갑을 입힌 용마를 타고

공희, 진하 두 장수를 좌우에 거느리고 항우가 버티고 소리치고 있는 최일선으로 달려 나왔다.

항우는 유방이 저만치 나타나기 시작하자 다시 한 번 유방을 노려보며 큰소리로 외친다.
"그대는 지난날 나와 이곳에서 싸워서 크게 패한 일이 있거늘,

오늘은 무슨 용기로 이곳에 다시 나왔느냐.

그대와 나는 지난 5년여 동안에 70여 전을 치렀지만, 그대는 한 번도 나를 이기지 못했었다.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오늘 또다시 나타났다는 말인가 ?"
유방이 크게 웃으면서 질책한다.

 

"그대는 혈기를 믿고 호언 장담을 하고 있지만,

그런 것을 어찌 참다운 용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나는 오늘 그대에게 지혜로써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려고 나왔노라.

전쟁은 혈기로써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지혜로써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놈아 ! 싸우는 데는 혈기가 제일이지,

지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
항우가 벼락 같은 소리를 내지르자 유방은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었다.

 

"하하하,

어리석은 자는 아무리 하여도 끝까지 어리석을 뿐이구나."

 

항우는 유방이 자신을 <어리석은 자>라고 하는 말에 화가 치밀어 올라,

장창을  바람개비 처럼 휘두르며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항우와 유방이 단둘이 싸운다면, 유방은 항우의 상대가 결코 되지 못한다.
그러기에 유방이 달려 오는 항우를 옆으로 피하자,

좌우에 대기하고 있던 공희와 진하가 싸움을 가로맡고 나섰다.
항우는 성난 사자처럼 좌충 우돌로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며 큰소리로 외친다.

 

"요, 강아지 같은 놈들아 !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른다는 말이냐 ?"

과연 항우의 창검술은 번개와 같았다.
그러나 공희와 진하도 일당백의 용장이었다.
1대 2로 싸우기를 무려 30여 합. 공희와 진하는 점점 힘에 부쳐 가건만, 항우의 기세는 싸울수록 왕성해 갔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항우는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르며 비호같이 달려들어 공희의 가슴을 창으로 찔러 버린다.

진하가 크게 당황하여 덤벼들려는 순간, 항우는 다시 창을 돌려 이번에는 진하를 찌르는데,

천만 다행하게도 창이 빗나가 진하의 투구만이 땅에 떨어져 버렸다.
진하는 전신이 오싹해 오는 공포감에 본진으로 쏜살같이 쫒겨 돌아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근흠과 자무가 달려 나가 항우와 접전을 벌였다.
항우가 근흠과 자무를 상대로 싸우다가 문득 유방을 찾아 보니,

유방은 저 멀리 언덕위에서 이쪽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한우는 유방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싸우다 말고 그쪽으로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덕으로 달려 올라가는 도중에 하후영이 일군을 몰고와 길을 가로막고 싸움을 걸어 온다.
그러나 하후영은 항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후영은 불과 2,3합을 겨룬 후에 동북쪽으로 쫒겨가는데

어느 사이에 유방의 모습은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다.

"유방이란 놈이 패잔병들과 함께 도망간 것이 분명하니,

추격을 하여라."

 

항우는 좌우 군을 거느리고 앞장서 5리쯤 추격을 계속하니,

어지럽게 쫒겨가던 한나라 군사들이, 거기서부터는 좌우로 정연하게 갈리면서 양분되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계포가 항우에게 급히 간한다.

 

"적들이 좌우로 질서 정연하게 갈리는 것을 보니, 적은 거짓으로 쫒겨 온 것이 분명하옵니다.

이 부근에 복병이 있는 것이 분명하니, 더 이상의 추격은 삼가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항우는 계포의 간언을 옳게 여겨, 말을 멈추고 적진을 관망하고 있었다.

한신의 위장 도주(僞裝逃走)에 여러 차례 골탕을 먹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추격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적진에서는 이좌거가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려 나오는 것이 아닌가 ?
항우는 이좌거를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자기도 모르게 장창을 움켜 잡으며 외쳤다.

 

"이놈아, 잘 만났다.

거짓 항복으로 나를 여기까지 꾀어 온 놈이 바로 네놈이 아니었더냐 ?"
이좌거가 말을 멈추더니 시치미를 떼고 말한다.

 

"지난날 제가 폐하를 찾아갔을 때에는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폐하는 지금 한신의 계략에 빠져 있사오니, 모든 것을 체념하시고 깨끗이 항복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옵니다.

그러면 제가 한왕에게 품고하여 목숨만은 건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항우는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이 우라질 놈아 ! 

네 놈이 아직도 나를 속일 셈이냐 ?"하고 덤벼 들었다.

 

이좌거가 잡힐 듯 잡힐 듯 쫒겨가니, 항우는 더욱 약이 올라 추격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10리쯤 추격하여 어떤 숲속에 다다랐을 때, 돌연 이좌거는 간 곳이 없고,

사방에서 복병들이 들고 일어나 일제히 공격을 퍼부어 오는 것이었다.

항우와 그의 군사들은 불시에 사면으로 기습을 당하는 바람에 크게 패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숨가쁘게 퇴각하고 있는데, 5리도 채 못 갔을 때, 이번에는 한신이 대군을 몰고 나타났다.
계포와 종이매가 항우를 호위하며 가까스로 군사들을 추스려서 본진쪽으로 되돌아 가려는데

이번에는 근흠과 자무가 사방에서 겹겹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것이었다.
항우는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아 결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신이 대군을 몰고 추격해 오는데,

그 기세는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끓어오르듯 요란하기 짝이 없었다.

항우는 그런 기세에 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쫒겨 가는데,

주란이 대군을 몰고와 항우를 구한다.
항우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쉬며 본진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엇다.
그러나 언제 또다시 적의 기습을 당하게 될지 몰라,

항우는 본진을 지키고 있는 우자기에게 말한다.

 

"적의 기세가 워낙 막강하여, 우리는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오늘 밤에 일단 팽성으로 철수했다가, 전력을 재 정비하여 다시 오기로 하자."
그러자 우자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뢴다.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한신의 군사들이 이미 팽성을 점령하고 폐하의 일가족을 모조리 생포했다는 소리가 있었사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팽성으로 가신다한들 대책이 묘연하옵니다."
항우는 그 소리를 듣고 기절 초풍 할 듯이 놀라며 말한다.

 

"뭐야 ?

한신이란 놈이 이미 팽성까지 점령해 버렸다구 ?"
항우가 대경 실색하는 꼴을 보고,

우자기는 얼른 위로의 말을 한다.

 

"폐하 ! 너무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우리에게는 아직 10만 가까운 군사가 남아 있사옵니다.

오늘 밤 그들을 형초호(荊楚湖) 방면으로 후퇴시켜 후일을 기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항우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한다.

 

"팽성이 함락되었다는 소문은, 적의 첩자들이 퍼뜨린 유언 비어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일단 팽성에 들러 가족들을 데리고 가야 한다.

그래서 산동(山東)에 있는 노군(魯郡)을 근거지로 하여 재기(再起)를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대장들은 항우의 의견에 따라, 한밤중에 삼군을 거느리고 팽성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밤을 새워 가며 행군하여 소현(蕭縣)에 도착하였다.

거기서부터 팽성까지는 50리가 남았을 뿐이다.
항우는 그제서야 군사들과 함께 마음을 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문득 여기저기서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 되어 정찰병을 보내어 정탐해 보니,

적병들이 남쪽에서 구름과 같이 집결해 오고 있고,

동쪽에서는 수백개의 붉은 깃발이 새벽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데,

그들 역시 수십만 명이나 되어 보인다는 보고가 들어 오는 것이 아닌가 ?

항우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며 좌우를 돌아보며 외친다.
"적병들이 그렇게나 많다 하니,

천하의 군사들이 모두 유방의 군사들이 되어 버렸다는 말이냐 ?"
종이매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앞에서는 적병이 가로막고, 뒤에서는 한신이 맹렬히 추격해 오는 걸 보니,

팽성이 함락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사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재빨리 산동으로 피신함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팽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곳에서 어물거리다가는 재기의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되시옵니다."
주란도 뒤를 이어 이렇게 간한다.

 

"종이매 장군의 간언은 지당한 말씀인 줄로 아뢰옵니다.

폐하께서는 신속히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러나 항우는 격노한 어조로 외친다.

 

"내 일찍이 수많은 곤경에 봉착해 보았으되, 완패(完敗)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적의 대세가 막강하기로, 나를 당할 자가 과연 누가 있더란 말이냐. 내가 여기서 쫒겨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대들은 나를 따라와, 나 혼자서 적장들을 모조리 때려죽이는 광경을 보고만 있으라.

나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팽성을 빼앗기고 지지리 못나게 쫒겨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항우가 이처럼 완강하게 나오니, 대장들은 싫든 좋든 간에 항우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팽성으로 달려가고 있노라니까, 얼마후에 비마가 달려와 항우에게 아뢴다.

 

"팽성이 적에게 함락되어서 성루에는 붉은 깃발이 수없이 펄럭이고 있사옵니다.

게다가 그들은 사대문(四大門)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사옵니다."

그 말을 듣고 초군 대장들은 크게 낙심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투구 끈을 새삼스럽게 졸라매며 외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팽성만은 탈환하여야 한다."
항우는 팽성 탈환전을 전개하려고 구리산으로 향하여 전진하는데,

문득 산 위에서 커다란 붉은 깃발이 전후 좌우로 펄럭이더니,

사방에서 복병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

서북방에서 왕릉의 군사가, 북쪽에서는 노관의 군사가, 동북방에선 조참의 군사가,

동쪽에서는 영포의 군사가, 동남방에선 팽월의 군사가, 남쪽에서는 주발의 군사가,

서남방에선 장이의 군사가, 서쪽에서는 장다의 군사가,

이렇게 여덟 무리의 군사가 항우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죄어 들어 오니

깊은 산중에는 살기가 등등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항우는 분노가 극에 달하여, 장창을 꼬나잡고 여덟 명의 적장들을 둘러보며 외친다.

 

"오냐 ! 여덟 놈이 한꺼번에 덤벼 오너라.

나의 장창은 너희 놈들을 한 놈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항우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덟 명의 장수들은 일시에 항우에게 덤벼 들었다.
그러나 항우의 행동은 번개같이 날쌔고 벼락같이 강해서 여덟 명의 적장들의 공격을

귀신처럼 막아내며 공격에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초진에서도 종이매,주란,우자기 등이 총동원 되어, 양군은 격렬하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진 일퇴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한군이 쫒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한군에서는 박소,손가회,고기,장창,척사 등의 제 2진이 파상 공세를 가해 온다.
그러나 항우는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20여 합을 싸우면서 손가회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척사를 장창으로 후려갈겨 죽였다.

 

이에 박소,고기,장창 등이 쫒겨 달아나니,

이번에는 성녀산 계곡에서 진희, 전관,자무,오예 등이 무리를 지어 공격을 가해 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애초부터 항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항우와 부딪쳐 불과 10여 합을 넘기지 못하고,

제풀에 뿔뿔이 쫒겨 달아나고 말았던 것이다.

한신은 <주역 진법>에 의하여 <십면 매복(十面埋伏)>으로 항우를 사로 잡으려고 했지만,

항우는 60여 명의 적장들을 거의 혼자의 힘으로 막아냈던 것이다.
<십면 매복>의 겹겹이 둘러 친 무서운 전법을 혼자의 힘으로 극복해 낸 항우의 위력은

실로 초인적인 위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싸움이 끝나자 모든 장수들은 땅에 엎드려 항우의 위력에 탄복하였다.

 

"폐하는 진실로 하늘이 내리신 신장(神將)이시옵니다.

폐하가 아니면 60여 명의 적장들을 어떻게 혼자서 물리칠 수가 있었겠나이까 ?"

사실 항우는 이날 60여 명의 적장들과 싸웠지만,

창검을 손에서 떨어뜨린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상처조차 한 군데도 입지 않았다.
항우는 장수들의 찬사를 받자 용마 오추의 목덜미를 툭툭 두드려 주며 말한다.

 

"오늘 싸움에서 내가 적의 대장들을 물리칠 수가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 <오추>의 덕택이었다."
그러자 오추는 주인의 말을 알아들은 듯,

두 귀를 쫑끗 세우고 머리를 들어 먼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오호호호호 ! "하고 큰소리로 울어댄다.

이윽고 항우가 장중으로 돌아와 투구를 벗어 놓으니 우미인이 달려와,
"폐하께서 무사하셨음을 축하하나이다."하고 큰절을 올린다.

 

항우는 아리따운 아내의 용모를 보고 흔쾌히 웃으며 말한다.
"당신은 오늘 엄청난 적군을 보고 무척 떨었겠구먼 ! "우미인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신첩은 폐하의 천위(天威)와 모든 장수들의 노력으로 적군을 물리친 것을 무엇보다도 기쁘게 생각하옵니다.

폐하께서는 60여 명의 적장을 상대로 싸우시느라고 얼마나 피곤하시겠사옵니까 ?"

 

"무슨 소리 !

나는 그 옛날 장한과 아홉 번을 싸우면서 여러 날을 굶은 일도 있었지만, 그때에도 피로를 몰랐노라.

오늘 정도의 싸움으로 피로를 느낄 내가 아니로다."

항우의 말을 듣고 좌중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때 주란이 항우에게 아뢴다.

 

"폐하 !

적들은 오늘의 패배를 설욕하려고 야간 기습을 감행해 올지도 모르옵니다.

지금부터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옵니다."
항우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한다.

 

"그놈들이 그만큼이나 혼이 났는데, 설마 또다시 덤벼 올라구."
주란이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자고로 매사는 유비 무환(有備無患)이라 일러 오니,

설사 적이 오지 않더라도 대비만은 꼭 해두어야 하옵니다."

 

"그렇다면 사방에 진을 치고,

중군을 철저히 방비하게 하라."

항우는 군명을 내려 놓고 우미인을 상대로 장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크게 싸우며 적을 모두 물리치고,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마시는 술맛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훨씬 감미롭고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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